[Opinion] 취향의 발견 (2) 아이유 [음악]

사실은 나도 모른다고요
글 입력 2023.01.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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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 향 의 발 견 

 

-내가 수집한 이야기들-


 

더 노골적으로. 내가 은폐하고 있는 속마음을 발가벗겨 눈앞에 선명히 들이밀어줘.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걸 모르는 척하지 않게 해줘. 세상이 숨기고 있는 것들을 다 까발려줘. 모든 것의 양면성을 보여줘. 우리 안의 미움, 질투, 이기심, 속물근성, 허영, 욕망 그 모든 게 괜찮다고 해줘. 거짓말이어도 넘어가 줘. 무례해도 좀 귀엽게 봐줘. 어린아이같이 하잘것없어도 사랑스럽다고 해줘.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해줘. 그리고 모든 게 그럴 수 있다고 해줘.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줘. 계속 정답에 의심을 품게 해줘.

  

 

호기심은 많지만 동시에 게으르고 겁 많은 나 같은 부류는 아무래도 예술 쪽으로 눈을 돌리는 듯싶다. 예술은 내 일상을 훼방놓지 않으면서, 새로운 삶의 영역을 모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며 안전했다.

 

내가 사는 방식에 의심을 품게 할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진지하게 머리 싸매고 풀던 난제도 한없이 가벼운 넌센스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 진리처럼 귀하게 여기던 성서가 사실은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잔잔하던 세상에 질문을 던져 혼란을 부르는 이야기. 솔직하고 통쾌하며 발칙한 이야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더라.

 

오늘은 아이유의 이야기다.

 

 


 

 

[2]

아이유

 

#스물셋



[크기변환]스물셋_물음표.JPG



'직장인'이라는 신분은 여러 정보를 내포한다. 이를테면, '제 밥그릇은 잘 챙기고 있어요, 성실하게 살고 있어요,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에요' 와 같은 정보들. 


반면, 백수 신분은 그 어떤 것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 때문에 직업 한 마디로 나를 소개했던 직장인 시절과는 달리, 백수가 되니 자기소개가 길어진다. 찾아보니 백수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손’이란다. 에잇. 이렇게 텅텅 빈 뜻을 가진 단어였다니. 어쨌든 백수 기간 동안, 나는 그 단어의 공백을 촘촘한 설명으로 메꾸는데 열심이었다.


여러 수식어로 나를 소개하다 보면, 가끔 말을 뱉음과 동시에 그 문장을 의심하게 될 때도 있었다. 전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탓이다. 나는 모순 투성이다. 어떤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게다가 변덕스럽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데, 되려 나는 변하는 나를 더 자주 마주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론, 아직도 나는 날 잘 모르겠다는 말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데, 나는 계속 변화하는데,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세상은 나를 정의하길 요구한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매일 쓰는 요즘, 스스로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일이 꽤 골치 아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세상의 요구가 가끔 버거운 건 나뿐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이유의 <스물셋>을 다시 듣게 되었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노래는 그녀의 모순적인 욕망과 속성을 나열하며 전개된다. 지금이 좋다고 확신하다가, 금세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을 바꾼다. 갑자기 깨달은 듯 사랑 타령을 하다가, 이내 세속적인 가치를 대표하는 돈이나 좇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아이유는 자기 안의 여러 모순을 주르륵 나열하고는 질문한다. ‘어느 쪽이게?’ 질문을 던져 놓고는 ‘사실은 나도 모른다’고 영 시원치 않은 답변을 내놓는 그녀. 아이유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사실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허심탄회한 고백을 한다.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지금껏 스스로에 대한 여러 사실을 열거한 아이유는 마침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답을 주지 않고도 자신은 진실만을 말했다며 당당한 태도다.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확답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저 당당함은 다소 뻔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노래는 계속 비슷한 형식으로 흘러간다. 아이유의 정체성을 정의하길 유도하는 가사 (난 수수께끼, 뭐게요 맞혀봐요)와 그녀에 대한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가사(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의 연속이다. 질문을 던지던 아이유는 모순된 자아 중 어느 한 쪽도 선택하지 않고 노래를 종결해버린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답을 끝까지 내지 않는다. 


정체성을 설명하려 애쓰던 내게 <스물셋>은 일러준다. 자신은 극단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고, 그래서 유연하게 그 모든 곳에 속할 수 있었다고. 정체성을 확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기선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얼마 전, 새로운 모임에서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질문이다. 나의 모순적인 속성과 갈대같이 쉬이 휘청이는 욕망을 몇 문장으로 축약해서 말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떤 명료한 단어로 그들에게 나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쉽사리 정리가 안됐다. 결국 난 좋아하는 것들만 정신없이 열거하다 시간이 다 되자 황급히 자기소개를 마쳤다. 절대 불변하는 함축된 나의 정체성을 세련되게 답하지 못한 스스로가 약간 실망스러웠다.


<스물셋>을 여러 번 들은 지금, 누가 다음번에 같은 질문을 물어온다면 이렇게 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나도 아직 날 잘 몰라요.’ 이것이야말로 거짓 없이 솔직한 고백이다. 왜냐면 진짜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아트인사이트_권기선.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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