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웃음을 선물합니다, 통쾌한 풍자와 신들린 호연은 덤 – 연극 ‘스카팽’

몰리에르의 원작을 각색해 선보이는 국립극단의 코미디 레퍼토리, 연극 <스카팽>
글 입력 2023.01.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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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 사진01.jpg

공연 사진: 국립극단 제공

 

 

지난 12월 25일, 성탄절을 맞아 설레는 발걸음으로 서울 명동 예술 극장을 찾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을 기념해 가족과 함께 국립극단의 연극 <스카팽>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 국립극단의 연극을 즐겨 봐왔던 지라 이번 공연 역시 보기 전부터 큰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연극 <스카팽>은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대표적인 코미디 레퍼토리들 중 하나다. 배우들의 우스꽝스러운 몸동작 및 독특한 효과음이 두드러지는 연출과, 동시대성을 재치 있게 반영한 각색을 통해 2019년부터 꾸준히 매진 행렬을 이어왔다.


원작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극작가 몰리에르의 작품인 <스카팽의 간계(Les Fourberies de Scapin)>다. 국립극단은 2019년의 초연과 2020년의 재연에 이어, 몰리에르 탄생 400주년이 되는 2022년을 맞아 세 번째 공연으로 관객들을 다시 찾았다.


기존 초연과 재연에 참여했던 강해진, 김명기, 문예주, 박경주, 성원, 이중현, 이호철 배우들과 함께, 2022년 국립극단 시즌 단원인 김예은, 안창현, 이혜미 배우가 새롭게 합류하면서 익살스러운 호연을 선보였다.


17세기 고전 희곡의 매력과, 관객들과 함께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배우들의 유머러스한 애드리브 및 신랄한 풍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박장대소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포스터.jpg

 

 

<스카팽>의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벌이자 기업의 회장인 아르강뜨와 제롱뜨는 서로의 자식들끼리 정략결혼을 시키기로 약속한 후, 여행길에 오른다. 그 사이 둘의 자식인 옥따브와 레앙드르는 각각 신분도, 나이도, 출신지도 모르는 여인 이아상뜨 그리고 제르비네뜨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정략결혼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옥따브와 레앙드르는 하인 스카팽에게 다급히 도움을 청한다. 평소 훌륭한 기지와 잔꾀를 발휘해 갖은 문제들을 해결해왔던 스카팽은 이번에도 자신 있게 나선다. 젊은이들의 불타는 진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아르강뜨와 제롱뜨를 속이고 재기 발랄하게 상황을 풀어나가기에 이른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스카팽>은 사회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문제를 해결할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바로 좌절하며 하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무능한 옥따브와 레앙드르의 모습이나, 하인의 허술한 잔꾀에 귀족이 속아넘어가고 농락 당하는 모습을 통해 신분이 역전된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정략결혼이라는 구시대적인 제도 아래서 자식의 사랑과 안위보다는 집안의 명예와 권위를 더 중요시하는 재벌들을 통해 화려한 겉치장과 대비되는 위선적인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 사진04.jpg

 

 

특별한 점은 흔하디흔해진 사회 풍자의 주제를 대한민국의 현실에 반영하여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방식에 있다. ‘땅콩 갑질’이라고도 불리는 대한항공 회항 사건이나, 거짓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고위층 인사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언급 및 비판하면서 동시대성을 드러내고 관객들로 하여금 통쾌한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귀족들의 행태를 조롱하기 위하여 SNS 등에서 유행해 다양한 콘텐츠로 파생 및 복제되는 문구, 일명 인터넷 ‘밈(Meme)’이라고도 불리는 구절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동시에, 극 중간중간마다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아’, 지코의 노래 ‘새삥’, 영화 ‘헤어질 결심’ 등 젊은 세대에게 큰 화제가 됐던 매체의 가사나 대사를 인용해 가벼운 웃음을 주는 행위도 멈추지 않는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사진16.jpg

 

 

눈에 띄는 참신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면, 바로 몰리에르가 작가로서 무대 위에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다. 몰리에르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극의 막이 오를 때부터 무대 한편에 서서 자신과 작품 그리고 인물들을 소개하며 관객들과 소통한다.


일종의 극중극 형식으로 연출된 것이다. 그는 스카팽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내레이션을 하기도 하고, 그저 무대 가장자리의 의자에 앉아서 연극을 감상하는 극 외부의 관객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몰리에르가 극이 진행되는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레이션을 하거나 이야기에 간섭하게 되면, 관객의 몰입이 끊기기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결해’라는 재치 있는 대사와 배우의 익살스러운 연기를 통해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네는 몰리에르의 존재 덕분에 무대와 객석 간의 단차 그리고 경계는 어느새 사라진 듯했다. 다른 인물들 역시 이야기 중간중간 장기를 선보이며 박수와 환호를 더 길게 유도하는 등, 수없는 애드리브를 통해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연극을 만들어 갔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사진03.jpg

 

 

<스카팽>을 감상하며 필자를 비롯한 연극, 뮤지컬 등 공연을 애호하는 이들이 같은 극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보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마다 다른 관객석의 분위기에 맞춰 다채로운 몸짓, 눈빛, 대사, 애드리브를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매 회마다 온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국립극단의 <스카팽>은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공연계와,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는 관극 경험만을 기다리던 관객들 모두가 환호할 수밖에 없는 연극이었다. 신랄한 풍자의 메시지와 신들린 연기를 보며 2시간의 러닝 타임 내내 즐겁지 않은 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


배우, 연출, 무대, 관객이 모두 하나가 되어 호흡하는 귀중한 순간과, 쉬지 않고 웃을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 준 국립극단 그리고 모든 관계자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박지연_에디터태그.jpeg

 

 

[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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