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송년 파티 [미술/전시]

Helen and Jae Gallery ”Rhythm in Color”
글 입력 2023.01.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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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는 ‘음악’과 ‘미술/전시’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어느 카테고리에 올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전공의 뿌리가 미술이고 이벤트가 열린 장소도 공연무대가 아닌 갤러리인 점을 감안해 ‘미술/전시’ 카테고리에 포스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다고 음악과 ‘헤어질 결심’을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오늘 글은 음악이 주연이고 그림과 전시가 조연인 것처럼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나도 이 글이 어떻게 갈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2022년을 사흘(‘문해력’ 운운하며 이슈가 됐던 단어라 쓰기가 좀 꺼려지지만) 남긴 12월 28일 저녁, 처음엔 지하철로 광화문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여유가 있고 그렇게 춥지 않아서 바뀐 광화문광장도 구경할 겸 삼청동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경복궁 본전을 향해 종종걸음 하면서 ‘조선 5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서울의 중심과 상징성을 생각하면 광화문광장은 진즉 이랬어야 옳았다’,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걸어 지금은 주인을 잃고 용도와 위상이 어정쩡해진 청와대 옆 삼청동의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오늘 이벤트 장소는 소박하고 아담하지만 내실을 갖춘 단단함이 느껴지는 갤러리 ‘헬렌앤제이’. 넓지 않은 공간 가운데 간이무대가 마련돼 있고 그랜드 피아노 하나가 거만한 모습으로 저녁을 뚫고 달려 온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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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URICH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피아노 옆에 붙어 있는 브랜드가 유독 눈에 띈다. 우리나라 클래식 공연장의 피아노 중에 미국 스타인웨이가 90%가 넘는다는 얼마 전에 본 뉴스가 생각났다. ‘스타인웨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좋은 피아노지만 공연장들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소리를 표준화하고 음악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의 기사였다. 실제로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헝가리 태생의 영국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는 “바흐를 연주할 땐 스타인웨이를 많이 사용하지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때는 뵈젠도르퍼를 주로 이용한다. 스타인웨이가 산문적이라면 뵈젠도르퍼의 음색은 시적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스타인웨이를 표준어, 뵈젠도르퍼를 사투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결국 모든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를 닮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 그의 악기에 대한 철학이 좋은 피아노라도 연주곡에 따라 각각의 장점이 다르게 발현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 날 본 피아노는 ‘포이리히’다. 스타인웨이와 뵈젠도르퍼 외에 일본의 야마하나 이탈리아의 파치올리는 워낙 유명해서 알지만 포이리히는 생소하다. 물론 내가 몰라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찾아보니 ‘1851년 설립된 유럽 명품’이라고 나온다. 

 

어쨌든 오늘 연주는 이 녀석이 맡나 보다. 피아노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는 걸로 봐서 페이지 터너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헉, 그런데 연주자가 두 명이란다. 피아니스트 정소영과 소현정. 이른바 ‘포 핸즈’. 얘긴 들었지만 공연을 실제로 감상하는 건 처음이다. 더구나 두 연주자는 팀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이번 전시와 공연의 설명을 듣고 꾸려진 프로젝트 팀이라고 했다. 

 

정소영은 인사말을 통해 “하나의 악기를 두 사람이 동시에 연주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가능한 악기는 피아노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 핸즈는 연주자에겐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피아니스트는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게 아니고 페달도 밟아야 하고 음역대가 넓기 때문에 연주할 때 온 몸을 사용한다. 그러기에는 ‘포 핸즈’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 그렇지만 그런 안 좋은 조건 또한 연주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도전의식이 생긴다. 그래서 독주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도 공연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두 피아니스트는 연주곡을 고르기 위해 갤러리에 전시된 네 명 작가의 작품을 먼저 보고 그림에서 받은 영감과 떠오르는 느낌, 그리고 추가했으면 하는 상상 등을 정리해 전시 디렉터와 수차례 회의를 하고 의견을 조율했다. 그렇게 해서 곡이 선정됐다 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그 곡들을 놓고 두 피아니스트는 다시 역할을 나누고 연습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처음부터 ‘포 핸즈’용으로 만들어진 곡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곡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전시 작가 각각에 연주곡을 연결해 스토리를 만드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최형섭과 드뷔시


 

최형섭(1985~)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 최형섭의 작품 센티모그라피(Sentimographie)의 첫인상은 단조로웠다. 센티모그라피(Sentimographie)는 느낌이나 감정을 뜻하는 ‘Sentiment’와 단어, 말을 뜻하는 프랑스어 ‘Mot’, 그리고 ‘철자법(Graphie)’을 합한 말이라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한방에 와 닿지는 않는다.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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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ographie  e N.2208.11/캔버스 위 아크릴, 혼합재료/145*112cm/20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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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ographie  e N.22-06.11/캔버스 위 아크릴, 혼합재료/41*32cm/20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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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ographie  e N.22-07.11/캔버스 위 아크릴, 혼합재료/41*32cm/2022년작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는데 최형섭의 작품에서 비슷한 반전이 느껴졌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생긴 기록하는 습관이 곡선으로 변형됐고 모든 작품의 모티프가 됐다는데 최형섭은 내면의 느낌과 감정의 파장을 ‘반복되는 곡선’으로 표현했다. 

 

반복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데 재료의 변화와 다채로운 색의 조화로 보는 사람의 지루함을 덜어줬다. 정색하고 하는 노동이나 일, 오늘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미션이 아니라 하다가 싫증나면 ‘딴짓’ 하고 놀다가 생각나면 다시 와서 즐기며 그린 듯하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갖고 놀 듯 곡선을 반복적으로 터치했지만 자세히 보면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을 통해 다른 감성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른 곡선으로 변주하고 파장을 늘여 어울려 함께 노는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최형섭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수많은 흔적을 남기고 또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처럼 선을 긋는 행위가 내 작업의 수단이며 목적이다. 작품도 일상처럼 반복적인 행위를 이어가는데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반복이라고 해서 매번 똑같이 그리는 건 아니다. 미세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가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주고 내면을 정화시킨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정하지 않고 다음 번 반복으로 보완하고 그게 다른 선과 조화를 이룰 때 뜻밖의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작품의 완성보다 작품을 완성시키기까지의 과정에 무게중심을 둔 듯한 설명이다. 

 

정소영 소현정 두 피아니스트는 최형섭의 작품을 위해 프랑스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Petite Suite)을 골랐다. 처음부터 ‘포 핸즈’로 쓰여진 악보는 조각배(En Bateau), 행진(Cortege), 미뉴엣(Menuet), 발레(Ballet) 이렇게 네 개의 피스로 구성됐는데 각 피스마다 독립적인 성격이 강한 게 특징이다. 화음이 몽환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느낌이 규칙에 개의치 않는 최형섭의 자유로운 곡선의 터치와 비슷한 정서를 느꼈나 보다. 조각배는 베를렌의 [우아한 축제]에 수록된 시를 모티프로 썼고 3/4박자의 미뉴엣은 경쾌한 장단을 부르며 발레는 유럽의 어느 화려한 궁전을 상상하게 한다. 절제된 듯 자유로운, 희극인 듯 비극미를 조화시킨 최형섭의 작업 과정과 함께 하면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추친 쿠티에레즈와 그리그


 

추친 쿠티에레즈(1978~)는 콜롬비아의 다섯 번째 큰 도시 부카라망가에서 태어나 지금은 칠레 레퀴노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추친의 작품은 한눈에 보기에도 자유로운데다 신랄하고 과감하다. 그러면서도 그래픽적인 규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어떤 프레임을 염두에 둔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보는 내내 자동차 소음, 공장의 기계소리, 각종 도시소음, 빈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흔적 등이 뒤섞여 요란하고 시끄러운 혼돈의 소리가 진짜로 들리는 것 같다. 복잡한 세상과 그보다 더 복잡한 인간관계 그리고 그들을 힘겹게 지탱하는 사회현상과 문화적 혼란이 추친으로 하여금 또 다른 케이오스(Caos) 세상을 그리도록 도발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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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in World / Mixed media on Canvas/88*166.5cm/201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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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zled face / Mixed media on Paper/29*39cm/2018년작

Face #7 / Mixed media on paper/20.5*27cm/2017년작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다시점에 기초한 얼굴 모습은 입체주의를 연상시만 잘 보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인디헤니즘(indigenism 토착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그 옛날 평화로운 대륙을 침략한 유럽인들에게 피해를 당하면서 문화적 혼란과 정체성이 분열되는 아픔의 시기를 겪었다. 그렇게 받은 의식의 피해는 공식적으론 거의 사라졌지만 삶과 생활 곳곳에, 그리고 정신의 아득한 곳에 깊이 뿌리박힌 라틴아메리카 자신들만의 전통을 회복하고 자기 민족의 자긍심을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을 드러냈다. 

 

추친이 탄생시킨 인물은 현재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사회현상, 그리고 문화구조 속에서도 나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라틴 특유의 낙천성을 확보했다.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상실과 슬픔, 이를 극복내기 위한 위로와 풍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회복에 대한 희망과 꿈을 담고 있진 않은지. 결과 색은 좀 다르지만 양반들에게 농락당하던 서민의 애환을 가면 속에 가리고 춤과 놀이로 승화시킨 남사당패 광대의 모습을 추친이 봤다면 동질의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편 추친 쿠티에레즈는 자기 작품을 현대 표현주의와 ‘한계 예술’로 정의한다. 그의 작품은 생생한 그래피티에서 영감을 받은 흰색 바탕과 다색 팔레트, 그리고 모티프로 사용한 눈을 포함해 불규칙한 추상의 역동적인 덩어리를 특징으로 한다. 거기다 신표현주의 초상화는 다차원성이 넘쳐나는 현대의 복잡성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인간적’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이 난해한 그림에 정소영 소현정 피아니스트는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라르드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을 입혔다. 친구이기도 한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의 유명한 희곡 [페르 귄트]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희곡은 전체 5막38장의 대작으로 상영시간만 5시간 가까이 된다. 극음악은 모두 23곡. 그 중 연주곡으로 선정한 다섯 곡은 [페르 귄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침 감상(Morning mood), 오제의 죽음(The death of Aase), 아니트라의 춤(Anitra’s dance), 산 속 마왕의 동굴에서(Dance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그리고 솔베이의 노래(Solvejg’s song)다. 나처럼 클래식 음악을 잘 몰라도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곡들이라 피아니스트의 자상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디에고 티리갈과 거슈윈


 

디에고 티리갈(1976~)은 전시 작가 네 명 중 나이가 가장 많은데도 아직 40대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활동무대는 스페인이다.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마다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인스턴트를 대표하는 통조림은 음식에 대한 정성이나 영양보다는 편의성만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대표적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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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ipe for disaster / Enamel, Acrylic, Pastel, Oil pastel, Oil stick on Canvas/70*100cm/20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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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Verso Que Meta / Enamel, Acrylic, Pastel, Oil stick on Canvas/130*162cm/20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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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5/ Enamel, Acrylic, Pastel, Spray paint, Oil stick on Canvas/100*81cm/2022년작

 

 

실제로 디에고 자신도 ‘소비주의의 편의성은 악마와의 계약이다. 달콤하지만 빈 깡통과 같다.’고 주장한다. 어찌 보면 한 때 악명 높던 뉴욕 지하철의 수준 낮은 낙서를 연상하게 한다. 알파벳 철자와 드로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붓의 터치는 동네 ‘양아치’ 같은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그건 위악(僞惡)이다.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 예술가의 낙서화가 떠오르기도 하고 팝 아트, 스트리트 아트가 생각나는가 하면 교양 없고 회화적이지도 않은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아트 브뤼(Art brut)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또 있다. 앤디 워홀, 장 미쉘 바스키아, 키스 해링. 물론 돈만 밝히는 자본주의적 앤디 워홀을 따라가기엔 너무 꿈이 작고 키스 해링의 ‘정돈된 자유’를 추구하기보다 마음 가는 대로 툭툭 그려낸 듯한 직감적인 터치는 생각보다 거칠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혼합하는 과정에서 디에고의 의식은 현실과 꿈꾸는 세상을 왔다갔다 하면서 어쩌면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저항하고 반대는 하지만 굉장히 소극적인, 그러면서 시대적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비주류지만 모범생 같은 느낌이랄까. 

 

음악은 조지 거슈인의 ‘서머타임’과 ‘I got rhythm’ 두 곡을 붙였다. 두 곡의 성격은 너무 다른데 이상하게 어울린다. 음악만 들으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서머타임은 원래 자장가였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페기와 베스]는 1920년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사는 흑인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오페라다. 서머타임은 바로 그 [페기와 베스]에 나오는 곡인데 대중적이며 아름답지만 애잔한 슬픔을 간직한 선율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거슈윈은 알다시피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킨 혁명가다. 그래서 지금도 거슈윈을 ‘모든 재즈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그 배경에는 그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그런지 ‘I got rhythm’은 클래식인지 재즈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클래식처럼 연주하면 클래식, 재즈처럼 연주하면 곧바로 재즈가 되는 것처럼 디에고 티리갈의 작품도 정통 회화로 보면 순수 예술로 보이지만 허름한 동네를 주름잡는 골목대장이 정성들여 낙서했다고 우겨도 그렇다고 믿을 것 같다.

 

 

 

대니얼 밀리토니언과 브람스


 

앞에 설명한 디에고와 비교하면 대니얼은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된 편이다. Dunkees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대니얼 밀리토니언(1980~)은 러시아 출신이지만 현재는 미국 LA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니얼의 영감의 원천은 산타모니카 비치와 함께 LA를 대표하는 베니스 비치다. 베니스 비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 젊은 예술가들과 보헤미안들의 작은 공동체 역할을 한다. 대니얼은 아마도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작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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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made / Acrylic Paint Markers on Canvas/91*61cm/20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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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Tunes / Acrylic Paint Markers on Canvas/128*128cm/20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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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6th / Acrylic Paint Markers on Canvas/112*162cm/2022년작

 

 

베니스 비치의 그래피티 아트나 히피문화, 에니메이션 같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적 소재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드로잉으로 풀어냈다. 그러다 보니 예술의 순수성보다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쾌감, 미술관 담 너머의 소통에 관심을 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유쾌하고 장난스러우며 유머가 넘치는, 받아들이는 모든 게 즐거움의 대상이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즐거운 클리셰 같은 느낌도 있지만 키치적이라고 불러도 시비할 사람 없는 키덜트가 프레임을 가득 메운다. 팝과 초현실주의가 혼재한 팝 쉬르레알리즘(pop surrealism)이 현실이 지닌 삶의 무게를 잠시 잊게 해주는 한편 인간과 삶에 대한 초현실적인 판타지로 몰아간다. 마치 놀이동산의 환상의 집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눈을 돌리고 이왕이면 부정보다 긍정과 희망을 선택하겠다는 작가의 낙천적 의지도 보인다. 실제로 대니얼은 한 인터뷰에서 “나의 작품세계는 베니스 비치와 비슷하다. 거기에서는 누군가도 될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심지어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나의 세계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다.”라며 캘리포니아 해변의 자유분방함을 예찬했다. 

 

세상의 관점은 딱 두 가지다. 긍정과 부정. 선택은 자유지만 이미 세상의 현실은 무겁고 어렵다. 그렇지만 즐기며 관조하는 태도로 삶을 긍정하자는 분위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인이 됐지만 천진난만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는 따뜻한 키덜트가 진정한 예술이자 힐링이고 치유라고 대니얼이 주장한다면 그냥 수긍할 것 같다. 

 

대니얼이 꿈꾸는 세상에선 춤도 빠질 수 없다. 영리한 피아니스트들은 대니얼의 작품에 어울리는 곡으로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을 골랐다. No.1 Allegro와 No.5 Allegro molto 두 곡. 브람스도 대니얼처럼 자기가 태어난 독일 함부르크를 떠나 주로 빈에저 활동했다. 헝가리 춤곡은 모두 21곡인데 유명한 곡들이 많지만 1번과 5번이 가장 대중적이다. 특히 5번은 100% 창작이 아니고 연주여행에서 만난 연주자들의 작품과 민요 등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어서 대니얼 영감의 원천인 베니스 비치의 보헤미안적이면서 ‘섞임과 어울림’과도 맥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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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핸즈

 

 

그러고 보니 이번에 전시를 구성한 네 명의 작가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타국에서 자리잡고 작품활동 중이다. 네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는 아마도 한국어와 프랑스어, 러시아어와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일 것이다. 그렇지만 언어를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온라인 세계가 펼쳐지면서 국경의 의미가 없어졌듯이 작가들은 국적을 넘어 영혼의 경계마저 흐뜨러트리는 대신 상상력에 날개를 달았다. 그리고 서로 어울리고 섞이며 즐겁게 ‘놀았다’.

 

앙상블(Ensemble)은 어울림과 조화, 그리고 통일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2022년이 저물어가는 어느 저녁, 음악과 음악, 미술과 미술, 그리고 음악과 미술이 어울려 놀았다. 이번 송년 파티의 테마인 ‘Rhythm in Color’처럼 서로를 감싸안고 보듬으며 응원하면서 앙상블을 완성했다. 두 피아니스트가 ‘포 핸즈’를 이뤘고 그림과 음악이 연대했다. 그리고 나도 그냥 ‘놀았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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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아라아라
    • 헬렌앤제이? 첨 들어보는데 함 가 보고 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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