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we're aliens somewhere - 노매드랜드 2편 [영화]

우리는 어디선가 이방인이다
글 입력 2022.12.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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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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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담론


 

펀은 2008년 금융위기 사태로 인해 내몰리게 된 처지이나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그를 기억하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자처한다. 비록 처음에는 펀의 노마드 생활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은 펀의 의지이다. 길 위의 불안정한 생활이 사회적으로 보장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단면을 드러내지만, 펀이 찾고자 하는 안정은 사회에도 자본에도 집에도 없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Nomad”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유목민(遊牧民)’으로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떠돌며 생활하는 사람 혹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중앙아시아, 몽골 등 건조한 사막 지대에 분포하는 이들은 주로 목축업을 하며 물과 풀을 따라 거주지를 옮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동한다는 점에서 고대의 수렵 채집인을 떠올릴 수 있으며, 근대의 행상인과 같은 소요형 유목민도 포함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질 들뢰즈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새로운 인간형으로, 기존의 가치와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마드’를 의미한다. 세 번째는 들뢰즈의 ‘노마드’의 철학적 개념이 확장되어 나타난 것으로 실제 삶에서 고정적인 주거 공간 없이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활동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노마드 앞에는 디지털(digital), 유로(euro), 잡(job)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이 중 영화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노마드를 다루고 있으며, 이에 따라 촉발되는 담론은 세 번째 의미로 팽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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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체성 담론을 이끈 노마드의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자본과 물자의 이동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시공간의 개념이 확장된 현대에서 ‘전 지구화(globalization)’는 상호작용과 다차원적인 연계를 기반으로 한다. 국지적인 것과의 보편화와 특수화, 동질화와 차별화를 통해 타자의 문화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가 가능한 상호존중의 태도를 갖게 된다.

 

그러나 전 지구화를 개념화하면서 역설적으로 지역성을 강화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세계화의 수단으로 사용하던 ‘민속지학(民俗誌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이에 지역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소 특정성을 강조하기보다 그 위를 이동하는 노마드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이동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고정된 지역성에서 벗어나며, 탈영토화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지구화와 지역적 전통 사이에서의 간극을 체화한다. 즉, 노마드는 이동 경로에 들르는 다양한 장소들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번역을 통해 전통적인 가치관을 탈피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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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은 자신과 같이 길 위에서 생활하는 노마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생의 가치를 배운다. 장소성에 기반하지 않는 공동체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마드’라는 범주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생존을 위해 타인을 돕거나 도움을 받는다.

 

때로는 홀로 남겨진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타인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와 조언을 건네받는다. 폐의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스왱키가 노마드 생활을 하며 얻은 삶의 가치를 펀에게 들려주고, 이를 실천하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펀의 모습을 통해 일시적으로 맺어지는 공동체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밥 웰스는 자본과 노동, 진보의 빈곤을 비판하면서 마지막으로 “이 사회가 우릴 벌판으로 내쫓으면 우린 함께 모여 서로를 돌봐줘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전 지구화의 헤게모니 문제에서 시장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의 차이를 넘어 상대적 타자성의 마찰을 줄이면서 혼종적인 성격을 갖는 ‘노마드’가 이행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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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노마드는 장소의 물질화에서 벗어나 물리적인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이들은 자본이 교환 과정 중의 부일 뿐이며, 자본이 노동자의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실제적인 노동을 통해 생산물을 얻으며 노동의 가치를 성취하여 절대적 장소와 자본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로써 전보다 자유롭게 소비하고 수용하는 주체적인 삶을 얻게 된다. 노마드는 삶의 궤도가 타자와의 인력으로 자리를 잡으며 외부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마드족의 탄생과 특징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허무적 낙관처럼 보일지라도 미래에 대한 단서 발견의 가능성을 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다.

 

 

 

집의 의미


 

“집은 허상인가? 아니면 마음의 안식처인가?” 

 

펀이 아마존 포장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만난 안젤라가 팔꿈치에 문신한 가사를 보여준다. 거처 없이 떠도는 노마드가 주인공인 영화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지금까지 노마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와 본질적인 담론을 살펴보았다면, 안젤라의 질문은 노마드가 정의하는 집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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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에겐 노마드 삶의 방식이 곧 집이었다. 가족을 만나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데이브에게 함께 살자는 제안을 받았음에도 지붕 아래 안락한 침대를 뛰쳐나와 밴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에게 허상은 자연 앞에 주인 없는 땅에 뿌리 내려 영원성을 담보하는 인간 사회의 부동산이었다. 따라서 영화가 보여주는 집의 의미는 개개인의 자기 인식에 기반한 심리적 안정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펀은 “homeless”“nomad”는 다르다고 말하며, 담담하고 사실적인 일상의 반영물을 통해 ‘집’의 장소적 특성을 무화 내지 약화시켜 노마드의 의의를 다양한 층위에서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보여준 노마드는 사회에서 자본의 억압을 받는 하층민인 동시에 자연에서 물질적 노동을 통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고정불변하지 않는다. 전통적 사회의 요구를 비껴가며 계급적, 사회적, 구조적, 인종적 이데올로기를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내어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변화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보여준다.

 

“떠난 이들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라는 이치와 함께 말이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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