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망도 추격도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간절한 달리기 - 패닉 런

글 입력 2022.12.28 15: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공포, 혹은 스릴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숨 가쁘게 달린다면 대체로 도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추격일까? 추격이라고 하기에도 어폐가 있다. 이 추격의 대상은 제자리에 있을 뿐이며 심지어는 주인공이 보복이나 응징을 가할 상대도 아니다.

 

그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아들이다.

 

 

 

목을 조여오는 숲속 조깅, <패닉 런>



티저 포스터.jpg

 

 

깊은 숲속까지 들어가 조깅하던 주인공 ‘에이미’는 수시로 걸려 오는 지인들의 전화에 잠시 방해 금지 모드를 켜고 달리기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이 짧은 평화는 아들 ‘노아’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총격 테러가 일어났다는 긴급 경보 문자로 인해 깨지고 만다.


영화 <패닉 런>의 러닝 타임은 84분. 대부분의 영화가 2시간 내외이고 3시간이 넘어가는 영화도 심심찮게 보인다는 걸 생각하면 꽤 짧은 상영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더 길지 않음에 안도할 것이다. 시간 편집이 최소화된 <패닉 런>은 에이미가 영화 속에서 홀로 감당하는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한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그 덕에 관객도 에이미의 감정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

 

한껏 몰입해 영화를 본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야 정신을 차렸더니 그새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으니, 이보다 길었으면 얼마나 지쳤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02.jpg

 

 

노아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자 잔잔한 힐링의 공간이었던 숲속은 숨 막히는 오지로 변해버린다. 단순히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가 아닌, ‘숲’이라는 장소를 선정한 것이 인상적이다.

 

숲이 배경이 됨으로써 고립된 것은 노아가 아니라 에이미와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이다. 에이미의 곁에는 아들도 없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도, 심적으로 의지할 사람도 없다. 에이미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익스트림 롱 숏이 보여주는 숲의 웅장함은 압도적이다.

 

 

 

유능하지만 무능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숲속에 홀로 떨어진 에이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랬다면 에이미가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테니. 에이미는 쉼 없이 달리는 중에도 핸드폰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절망하는 대신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내는 그를 보고 있으면 엄마의 강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달음과 동시에, 에이미에게 핸드폰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느낀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성가신 존재였던 핸드폰이 지금은 에이미에게 도움을 주는 유일한 존재로 변한다.

 

특별히 대단한 기기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쓰는 핸드폰이라 더 현실적이다. IT 기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영화 <서치>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동시에 그 배경이 대자연의 한가운데라는 아이러니가 재밌다.

 

 

04.jpg

 

 

에이미가 노아와 떨어져 있었기에, 그리고 의지할 것이 핸드폰밖에 없었기에 오히려 이렇게 많은 행위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에이미는 무력해진다. 핸드폰은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모든 곳에 닿을 수 있으나 단 하나, 아들에게는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장면은 노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던 순간, “…”으로 나타난 ‘메시지 작성 중’ 화면이다. 그 장면에서는 영화관에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탄식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평소에 그 화면을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스크린에서 이 화면이 등장할 때는 차마 못 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에게도 이럴진대 에이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줄임표였을 테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



과대 해석일지는 몰라도, 에이미와 노아가 서로 간 소통의 부재로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 줄임표가 더욱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엄마와의 사이도 나빠진 아들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어 답답해했던 에이미는 그 절실한 순간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줄임표가 정말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에이미는 “…”가 뜨는 순간에, 그리고 노아는 “…”에 가려진 문자를 입력하는 순간에 지난 시간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건이 이 둘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앞으로는 에이미가 이토록 두려운 “…”를 마주하지 않아도 될지 궁금해진다.

 

 

 

아트인사이트 태그.jpg

 

 

[김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