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거장에게 느끼는 인간적인 연민 – 슈베르트, 겨울여행

글 입력 2022.12.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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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어렵다’라는 말은 편견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하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편하게 감상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왜, 어떻게 좋은지 분석하는 일은 유독 어렵다. 영화나 연극처럼 명확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가요처럼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감미로운 멜로디만 남아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클래식을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수단은 유튜브였다.

 


 

 

채널의 영상을 보고 미미하게나마 배경 지식을 쌓게 되면서 느낌으로 좋아하는 것과 알고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게 되었다.

 

<슈베르트, 겨울여행> 공연을 앞두고 미리 세트리스트의 곡들을 찾아 들으면서 나름 열심히 예습해보았다. 미리 들어본 덕에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지만, 막상 공연을 보니 꼭 그렇지 않아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베르트, 겨울여행>은 단순히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서 나아가 슈베르트라는 한 사람 자체를 총체적으로 이해시키는 친절한 강의 같은 공연이었다.

 


2022.12.16.-12.31. 산울림 편지콘서트 슈베르트 포스터.jpg

 

 

 

이토록 친절한 클래식 공연



‘산울림 편지 콘서트’는 소극장 산울림에서 펼쳐지는 공연으로, 배우들의 낭독과 연기, 음악가들의 라이브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전달한다. 2019년에는 차이코프스키를, 2020년과 2021년에는 드보르작을 소개했던 ‘편지 콘서트’는 2022년 겨울에는 살아있을 적 600여 곡의 가곡을 작곡하며, <보리수>, <마왕> 등의 명곡을 남긴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과 생애를 들려주었다.

 

공연을 보기 전 처음 정보를 접할 때는 연극과 연주의 조합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기존에 봤던 클래식 공연과 다르긴 다르겠지만, 얼마나 다를지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상태였다.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보다 연극의 비중이 꽤 높아 흥미로웠다. 연주든 연극이든 한쪽에만 치우쳐질 거라 생각했는데, <슈베르트, 겨울여행>은 연주를 위한 연극도, 연극을 위한 연주도 없이 각 장르가 동일 선상에서 어우러져 슈베르트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만 주력했다.

 

연극이든 연주든 각 장르가 개성이 확실해서 애매하게 섞이면 산만하지 않을까, 했는데 슈베르트의 형 역이 해설자 역할을 겸한 덕분에 슈베르트가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수월하게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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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애용하는 편이다. 모르는 음악이 많아 내가 애써 고르지 않아도 한 번에 다양한 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곡의 특성상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고, 멜로디를 외우기가 쉽지 않아 내가 감명받은 그 곡이 어떤 작곡가의 어떤 곡인지 잘 모를 때가 많았다.

 

<슈베르트, 겨울여행>은 무대 뒷면의 스크린에서 곡이 연주될 때마다 제목이 표기되어 감상이 더욱 편했다. 기존 클래식 공연에서도 세트리스트가 미리 주어지지만, 공연 중간중간에 계속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연주와 동시에 그 곡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들을 수 있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이 공연이 특히나 친절하게 느껴졌던 건 세트리스트와 연극의 흐름이 모두 시간순으로 진행돼 슈베르트가 작곡한 곡들의 탄생배경이 그의 생애와 맞물려 차례대로 소개된다는 점이다. 덕분에 삶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 음악도 단순히 듣기 좋다는 감상을 넘어 내재된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음악가에 관한 공연도 이렇게 진행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편지 콘서트’의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었다.

 

 

 

슈베르트, 유약하고 순수했던 거장


 

이 공연을 보기 전까진 <마왕>을 작곡한 천재 음악가 정도로만 슈베르트를 인식하고 있었다. 단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슈베르트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나니 그가 얼마나 음악에 헌신적이었는지, 고독하고 괴로웠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변변찮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작곡에만 매진하는 모습, 뛰어난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인정받지 못한 부분, 형제와 주고받는 편지로 삶의 애환을 토로하는 모습 등등에서 19세기의 또 다른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올랐다.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예술은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림은 부와 명예를 좇는 도구가 아닌 생명 수단이었다. 그날 나는 거듭되는 절망 속에서도 곡을 만드는 슈베르트를 보면서 고흐에게 느꼈던 절박함을 보았다.

 

그가 살기 위해서 작곡했다는 점은 엄청난 작업량에서 드러난다. 바흐와 모차르트와 같이 600여 곡을 작곡한 슈베르트는 대표적인 다작 음악가다. 여기서 그가 특별한 점은 일로써 의무로 곡을 만들어야 했던 바흐와 모차르트와 달리 순수하게 본인의 의지로 그 많은 가곡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작곡이 그저 취미에 그쳤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또한 그는 동시대 예술을 순수하게 사랑했다. 공연에서 해설자 역할의 페르디난토 슈베르트(슈베르트의 형) 역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했던 슈베르트에게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문학들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창구와 같았다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 <마왕>은 널리 알려졌듯이 괴테의 시에서 감명받아 탄생했다. 이외에도 슈베르트의 수많은 가곡이 당시 그의 심금을 울린 문학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해설에 따라 음악을 들으니 정말로 곡 하나하나에 당시 슈베르트의 감정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았다. 그가 희망에 부풀었을 때 만든 곡, 절망에 빠졌을 때 만든 곡의 결이 모두 완전히 달랐다. 기복 없이 늘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프로페셔널한 예술가도 좋지만, 나는 작품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예술가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넘어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을 탐구해야 하는 학문


 

우연의 일치로 <슈베르트, 겨울여행>을 보는 당일까지 김겨울 작가의 피아노에 관한 에세이 <아무튼, 피아노>를 읽었다. 김겨울 작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즐겨 보면서 그가 클래식과 피아노 애호가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절박한 느낌으로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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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소극장에 있는 산울림 카페에서 <아무튼, 피아노>를 마저 읽었다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을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던 그녀였기에 이렇게 애절한 문장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슈베르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참여했던 그의 열정은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음에도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날 산울림 소극장에서 슈베르트라는 한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클래식을 탐구하는 과정은 어쩌면 한 사람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최근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이데거vs레비나스>라는 책을 읽은 경험까지 떠올랐다. 철학 역시 철학자의 생애부터 파악해야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학문의 시발점은 사람일 것이다. 음악과 철학은 물론 문학, 미술, 과학, 수학까지 사람에게서 탄생하지 않은 학문이 없다. 그동안 내가 클래식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당연히 인식해야 했을 사람의 존재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명곡도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지금 즐기는 클래식 한 곡이 한 예술가가 온몸을 던져 참여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슈베르트가 일깨워줬다.


공연 전 예습 목적으로 들었던 슈베르트의 음악과 공연을 보고 난 후 집에 가는 길에 들었던 음악이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 더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슈베르트가 아닌 다른 음악가의 작품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듣고 싶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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