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연극이 있어야 할 곳을 고민하다 – 연극 '축제' 박근화 연출

글 입력 2022.12.2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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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축제를 잃어버린 5학년 3반 아이들의 이야기다.

 

마음껏 달릴 수 없는 옥상 위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건 즐거운 운동회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생존의 전쟁이다. 운동회 당일, 꼴찌가 되지 않으려 다른 아이를 밀치는 건 기본이고, 다리가 불편한 정호는 당연히 경기에서 빠져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가 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어른들이 들려준 말을 따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연극 중간 중간 정호는 관객석을 보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만, 연극을 보는 어른들은 명쾌한 답을 줄 수 없다.


<축제>의 작/연출을 맡은 박근화 연출은 2015년부터 창작공동체 ‘단디’를 이끌며 <달맞이>, <들리나요>, <어느 날> 등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박근화 연출이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 어떤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더 먼 곳까지 전한다. 그는 연극이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이고 향해야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늘 잊지 않으려 한다.

 

<축제>를 마무리하며, 연극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계속 고민하는 사람, 박근화 연출을 만났다.

 

 

 

동시대를 그리기 위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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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얼마 전 <축제>가 막을 내렸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년 동안 잡고 있었던 작품은 처음이라 공연이 끝난 지금은 진공 상태 같아요. 후련한 마음도 있지만 서운한 느낌이 좀 더 큽니다. (웃음)

 

 

<축제>는 '차세대 열전 2022' 선정작입니다. 1년 동안 작업하며 다양한 분에게 피드백을 들었을 텐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게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대본 작업을 하며 피드백 받은 적은 처음이라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동시대에 필요한 이야기인지, 이 이야기가 왜 하고 싶으며 어떻게 할 건지 질문을 받았어요.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정말 우리 사회를 잘 읽고 작업을 하는 건지 아니면 어디서 주워들은 것으로만 작업하는 건지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때론 날카로운 피드백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피드백과 함께 1년 동안 작업을 이어오며 작품에서 처음과 다르게 수정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작과 결말 부분은 처음과 똑같은데 그 안에 있는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아이들과 교장의 대립을 중심으로 하며 권력과 민중의 대립 구도를 그려내려 했거든요. 그런데 실제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게 ‘나쁜 권력’ 대 ‘착한 민중’의 구도인가 질문하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고민 끝에 교장에게 맞서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끼리 갈등하는 이야기가 더 동시대성이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고, 내용을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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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만족하시나요?


만족도는 80퍼센트 정도예요. (웃음) 첫 장면과 끝 장면을 보면서 그래도 제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배우들과 함께 잘 그려냈구나 싶었어요. 나중에 20퍼센트를 더 채워서 다시 공연을 해보려 합니다. 

 

 

그럼 20퍼센트에 해당하는 건 어떤 부분인지도 궁금해요. 


등장인물이 아홉 명이다 보니 세심하게 다듬어주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대본상으로는 비어 있는 부분들을 배우님들이 노력해서 채워주시곤 했어요. 다시 공연을 올린다면 인물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싶습니다. 


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강해서 대중이 원하는 재미를 놓치는 건 아닌가 고민도 돼요. 이건 이번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작업할 때도 늘 하는 고민이에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잘 드러나는 것 같은데, 재미도 있을지 궁금한 거죠. 다음번에는 그런 부분도 더 신경 써서 관객이 보기에 충분히 재미있으면서도 그 안에 든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임지지 않는 기득권의 모습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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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리가 불편한 정호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인물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누가 주인공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등장인물이 꽤 많은데, 각 인물을 만들며 영향을 받았거나 도움이 되었던 게 있나요?


일단 정호의 경우 전장연 시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에요. 그리고 정호를 비롯해 <축제>의 모든 인물에게는 저에게서 파생된 특징들이 하나씩 담겨 있기도 해요. 10대, 20대 때는 민준이처럼 뭐든 잘해야 한다는 마음, 나 혼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품기도 했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건우처럼 사회와 현실 사이에서 제 신념을 고민하기도 했죠. 


초등학교 5학년인 인물들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실제 그 나이대 아이들이 보는 유튜브나 그들 사이에 유행하는 아이템도 많이 찾아봤어요. 이 부분은 저보다는 배우들이 연구하고 찾아내며 각자가 맡은 인물을 더 실감 나게 만들어 갔습니다. 

 

 

저는 여러 인물 중에서도 건우가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에서 건우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의식의 제물로 바쳐진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저에게도 건우는 복잡 미묘한 인물이고, 생각하면 가장 마음이 아픈 인물이기도 해요. 신념이 무너지면 죽음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건우를 통해 하고 싶었어요. 이야기의 중심축은 정호지만 사실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건 건우거든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 대신 결국 혼자 살아남는 길을 택하죠. 건우 같은 인물이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 교실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했어야 했을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건우의 대사 중 “근데 (아빠는) 죽었잖아”라는 말이 기억나요. 건우는 아버지처럼 죽지 않으려 신념을 무너뜨리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건우가 살아남은 것도 아니거든요. 신념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신념을 버리는 것이 과연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지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연극 마지막 장면은 그 운동회날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인데, 다른 아이들의 근황은 이야기되면서 건우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게 묘하게 현실적이었어요. 


맞아요. 우리 사회에서도 시간이 흐르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죠. 어쩌면 건우가 아니라 잘 사는 집 아들인 민준이가 죽었다면 학교가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일 가난하고 아버지도 안 계신 건우가 죽었기에, 그 일은 누군가의 마음에만 남고 학교 전체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사회, 죽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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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자 역을 맡은 송승규 배우님이 이 작품에서 어른을 상징한다고 느꼈는데요, 연출님이 보는 어른은 어떤 존재일까요?


남자는 공연 직전까지도 속을 썩였던 인물이에요. (웃음) 너무 담고 싶은 게 많아서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어요. 저는 남자에게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모습이 다양하게 담기기를 바랐거든요. 자신의 힘만으로 성공한 것 같은 일타강사와 멘토, 쇼를 하듯이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말은 전혀 하지 않는 정치인… “나는 잠깐 진행하는 사람이지 책임지는 사람은 아니야”라는 남자의 대사를 통해서도 그럼 도대체 이 교실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인지 질문해보고 싶었죠. 남자에게서 책임지지 않는 기득권의 모습이 보였으면 했어요. 

 

 

그럼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장면도 남자가 나오는 부분이었을까요? 


맞아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은 다 어려웠어요. (웃음) 어떻게 해야 제가 의도한 남자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지 고민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옷만 해도 양복을 입혀야 할지 무대 의상 같은 반짝이 옷을 입혀야 할지 고민이었죠. 남자의 존재가 그저 공연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좀 웃기는 인물 정도로만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변화에 기여하는 연극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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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연출님이 이끄는 단디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처음 단디를 만들 때만 해도 돈 못 버는 극단은 되지 말자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가을이나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다른 연극을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가던 길에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시위 현장을 지나갔어요. 그 순간, ‘연극은 따뜻하고 안락한 곳에 있는데, 저 사람들은 찬 바닥에 있구나. 연극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원래 저는 연출로서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날 그 시간을 기점으로 내 연극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통해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내가 당사자가 아닌 경우, 이야기를 만들며 실수를 할까 봐 불안할 때도 있지 않나요?


작업을 할 때마다 그런 불안은 있는 듯해요. 그래도 예술가가 자기가 아는 문제, 자기가 처해 있는 문제만 다룰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문제를 다루는 것도 제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다소 겉핥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해야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저는 먼저 작업을 하고 보는 편이에요. 어떤 문제의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내 자리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작업을 할 때면 택한 주제를 중심으로 나는 어디에 서 있으며 그걸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어떻고, 또 그런 시선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며 이야기를 만듭니다. 

 

 

단디의 여러 작품을 늘어놓고 본다면 훗날 <축제>는 어떤 작업으로 기억될 것 같나요?


단디가 초창기에 만들었던 작품은 연극의 만듦새보다는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다소 거칠고 투박하기도 했죠. 시간이 좀 더 흘러 작년과 재작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넘어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축제>는 그 고민의 과정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연극적인 장면도 잘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축제>는 그 시작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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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드라마 연출을 꿈꾸셨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봤어요. 연극의 길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연극을 계속하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연극이 그나마 자본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는 자본이 많이 들기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면 누군가의 동의를 얻고 투자를 받아야 하잖아요. 연극은 누군가에게 자격을 부여받지 않아도 할 수 있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저에게 잘 맞아요. (웃음) 

 

 

내년에 작업이 예정된 작품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내년에는 <축제>를 좀 더 큰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싶어서 지원서를 쓰는 중이에요. 또 저는 꾸준히 아동학대 문제 관심을 가져왔는데, 관련해서 한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어서 대본 작업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단디의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작품의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사람들의 일상 속 어느 순간에 갑자기 생각나면 좋겠어요. 그게 자신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요. 저는 얼마 전 밤늦게 집에 돌아가다가 어느 집에서 부부싸움을 크게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몸싸움까지 하는 것 같은데, 어린아이가 막 울더라고요. 그냥 지나가려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뤘던 제 작품이 떠올랐어요. 거기서 아동학대를 둘러싼 이웃들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그렸거든요. ‘정말 그냥 가도 돼? 극장에서는 안 된다고 말해놓고 너는 그냥 가려고?’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파출소에 신고했어요. 


관객분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작품이 사람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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