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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800년대 영국 시인 코벤트리 패트모어가 쓴 시의 제목 ‘집 안의 천사’는 가정을 가꾸고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여성성을 상징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가정은 수많은 ‘집 안의 천사’들이 있었기에 지탱될 수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집 안의 천사’를 죽이고는, 그것이 정당방위라고 말했다. 울프는 어쩌다가 살인자가, 그것도 천사의 살인자가 되었을까.

 

 

 

자기만의 방, <여성과 소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이 말은 그의 대표작 <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문장이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과거에 작성했던 강연 원고 두 가지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인데, 그 강연 원고 중 하나를 다듬어낸 글이 바로 <여성과 소설>이다.


<여성과 소설>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엮은 4권짜리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그중 제1권인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제1권 안에는 울프의 글이 총 16편 실려 있으며 개중에는 울프가 여성 작가들에 관해 쓴 수필도 여럿 포함된다. 그가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 그리고 브론테 자매에 관해 이야기했음은 익히 알고 있었다만, 뜻밖의 인물 또한 등장했으니 바로 메리 셸리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는 대표적인 여권 신장론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울프가 이야기하는 것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이고, 그의 딸 메리 셸리는 역자가 친절히 달아놓은 주석을 통해서 얼핏 언급될 뿐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라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이 SF 고전 명작이기도 하지만 여성주의적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의외로운 만남도 마냥 우연은 아닐 것이다. 메리 셸리가 자라나는 동안 자기 어머니를 통해 보고 들었을 생각과, 당대의 다른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보장받았을 권리 덕분에 <프랑켄슈타인>과 그 ‘괴물’이 탄생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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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성과 소설>로 돌아와서, 울프는 여성들이 소설에 재능을 보이는 이유가 여성들의 열악한 글쓰기 환경에 있다고 보았다. 개인 공간을 갖지 못하는 여성들은 공용 공간인 거실에서 글을 쓰는데, 그곳에서는 수시로 외부 환경의 방해가 일어나기에 그나마 집중력을 덜 요구하는 예술 형식인 소설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프는 여성들에게 여가와 돈, 그리고 자기만의 방이 보장된다면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라 보며 그날을 기대한다.

 

 

 

여성과 편지, <도러시 오즈번의 서한집>



<집 안의 천사 죽이기>를 읽으며 알게 된 새로운 장르로는 편지가 있다. 나는 편지라는 것을 공들여 쓴 적이 별로 없다. 생일이나 어버이날처럼 특별한 날을 기념할 때만 형식적인 편지를 작성했고, 일상과 생각을 주고받는 편지를 쓴 경험은 전무하다. 그러나 의사소통 매체가 지금만큼 발전하지 않은 과거에는 편지가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으며 그 종잇장과 잉크를 타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도러시 오즈번은 만일 1827년에 태어났다면 소설을 썼을 테고 1527년에 태어났다면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테지만, 하필 1627년에 태어났으니 여성이 책을 쓰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던 그 시절에도 편지를 쓰는 것은 전혀 꼴사나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금씩 침묵이 깨뜨려진다.

 

p.85

 


도러시 오즈번이 연인에게 쓴 편지들을 손질해 펴낸 글을 읽은 울프는 그에 관한 서평을 발표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또는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서한집은 들어봤어도 평범한 여인의 서한집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도러시의 편지를 즐거이 읽고 그의 꽃피지 못한 재능까지 엿본 울프의 감상이 흥미로웠다. 울프의 말에 따르면, 도러시 오즈번의 편지는 세상의 모든 잡다한 이야기를 자신의 개성으로 감싸고, 편지를 받는 연인의 성격까지도 가늠하게 한다.


편지 또한 정성과 애정이 들어갔을 때에야 완성되는 글임을 나는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여성의 다른 글보다 여성의 편지에 관대했음으로 미루어보건대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 나 혼자는 아닌 듯하다. 덧붙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에게 붙어온 ‘수다스럽다’는 딱지 또한 이 관대함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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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여성의 편지라고 해서 가벼운 이야기만 다루지는 않는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 실린 글 중 <여성의 지적 지위>는 여러 글의 모음인데, 이는 울프가 ‘상냥한 매’라는 필명을 가진 비평가와 주간지에서 벌인 논전을 엮은 글이다. 여성 비하적인 내용이 포함된 에세이에 관해 상냥한 매가 동의하는 요지의 서평을 쓰자, 울프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해당 서평을 반박한다.


비평에 대한 또 다른 비평을 써내는 게 아니라 편지의 형식을 선택한 것에서 그의 재치가 느껴진다.  편지란 기본적으로 답장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더욱 쟁쟁한 설전의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울프의 많은 에세이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형식으로 쓰였던 터라(혹은 그렇게 번역된 터라) 굳이 그의 편지에까지 호기심을 품지는 않았는데, 진짜 편지를 보고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청자가 분명한 글은 여타 글과 구분되는 그만의 매력이 있어 하나의 장르로 대우받을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성들의 글쓰기 환경이 열악하던 시절에도 그들은 두 가지 장르에서 특출났다. 첫 번째 장르는 소설, 그리고 두 번째 장르는 편지이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 <여성의 직업>


 

버지니아 울프의 살인 고백은 책 <집 안의 천사 죽이기>의 가장 앞에 수록된 <여성의 직업>에서 나타난다.


 

만일 내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내 글쓰기에서 심장을 움켜 냈을 것입니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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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천사를 곁에 내버려 둔다면 여성은 자유롭고 공개적인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없다. 여성으로서의 의무에 방해받고, 사람으로서의 사유는 침해받기 때문이다.


울프는 ‘천사’라는 명칭이 주는 자애로움과 선함의 이미지를 걷어내 그 안에 숨은 위험성을 인지하고 천사를 물리쳤다. 그의 명철함과 단호함이 신기한 동시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누구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느껴지기도 한다. 울프의 글을 읽고 나면 보드라워야 할 순백의 천사 날개가 크나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거운 족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천사들이 없어진다면, 그렇게 했을 때 무너질 수없이 많은 가정은 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실 이 질문은 반대로, 이 천사 하나만의 힘으로 버티는 가정이라면 그 존속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묻게 한다. 울프는 본인이 작가이고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글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이 천사는 글이 아닌 어떤 예술, 그리고 어떤 직업에도 해를 끼친다. 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인구 절반이 좁은 집 안에서만 날갯짓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 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들이 날개를 버리고 집 밖으로 걸어 나올 때에야 그 잠재력이 폭발하고 세상의 가치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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