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 예술, 인생이 담긴 공무도하가 [도서/문학]

글 입력 2022.12.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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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無渡河(공무도하)

公竟渡河(공경도하)

墮河而死(타하이사)

當奈公何(당내공하)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기어코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님을 어찌할꼬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대가요로, 고조선 시대 뱃사공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인 여옥(麗玉)이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최표(崔豹)의 『고금주』에 기록된 이 노래의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다.

 

 

〈공후인〉이란 노래는 조선 땅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란 여인이 지은 것이다. 자고가 새벽 일찍이 일어나 나루터에 가서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때 난데없이 머리가 새하얗게 센 미치광이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술병을 끼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늙은 광부(狂夫)의 아내가 쫓아오면서 남편을 부르며 말렸으나 그 늙은이는 깊은 물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기어코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때 그 아내는 들고 오던 공후를 끌어 잡아타면서 ‘공무도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노랫소리는 말할 수 없이 구슬펐다. 노래를 마치자 그 아내 또한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고 말았다.

 

자고는 집에 돌아와 아내인 여옥에게 자기가 본 사실을 이야기하고 또한 그 노래의 사설과 소리를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여옥은 눈물을 흘리며, 공후를 끌어안고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 보았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눈물을 금할 수 없고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는데, 여옥은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 여용(麗容)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또한 노래 이름을 〈공후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古今注

 

 

이 노래의 흥미로운 점은 이 짧은 곡의 탄생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이 네 명이나 된다는 점과, 고조선 당시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곡이 현대까지도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존재 전 인간의 존재. 더 나아가 그들이 만든, 그들 존재에 대한 예술의 실존을 확증하는 노래는 그 자체로도 신비롭지만, 그것이 현재까지 연구되고 있다는 것은 그 노래 자체에 탈 시대적인 어떠한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뜻한다.

 

누군가에겐 학교 국어 시간에 ‘죽음에 대한 슬픈 정서’ 혹은 ‘이별의 노래’쯤으로 주입되고 잊혔을, 이 짧은 노래가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그 다양성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다만, 공유하는 어떤 해석들은 학문적 권위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이 작품을 문헌보다는 시라는 점에 주목하여 감상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공무도하가



 

이 人物의 모습은 머리털이 하얗게 센 노인이고, 게다가 미친 사람임을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노인은 아무런 두려움도 생각도 分別도 없이 마치 땅 위를 걷는 것처럼 물속으로 걸어서 들어갔다고 되어 있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예사로운 생각으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곧 生과 死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이같이 생과 사를 구별하지 않는 인물, 즉 死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은 生死를 초월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생사를 초월한 존재란 곧 비인간적인 존재, 즉 神을 의미한다고 보아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정병욱, 「공무도하가<공후인>」

 

 

먼저, 〈공무도하가〉를 조금 주술적이고 거시적인 시선으로 조망해 보자. 백수광부는 술병을 들고 어딘가 예사롭지 않은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주신으로, 즉 초월적 존재로 보인다. 그가 미친 사람처럼 강에 뛰어드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이를 황홀경에 든 무당과 유사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백수광부를 초월적 존재로 본다면, 그 당시 시대에 비추어 새로운 사회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백수광부의 자살을 무당의 전락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 전체는 무당이 신성함을 매개하는 중요한 위치에서 그 권위가 쇠락함으로써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비애로 읽힌다. 무당, 주술적 존재, 초월적 존재의 위력이 상실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인간의 사고가 합리화됨에 따라, 신화 시대에서 합리화 시대로의 이행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합리화 시대란 상대적으로 집단적 주술 행위가 상실되고 개인적 정서를 담은 작품이 나오는 시대를 의미하지, 지금처럼 과학으로 그 공백을 극복한 시대를 뜻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여 이 노래는 누군가에겐 단순히 이전 시대의 그리움에의 정서일 수도 있고, 무당의 처지에 대한 연민일 수도, 기어코 그 물을 건넌 것(시대를 건넌 것)에 대한 한탄과 분노가 될 수도 있다.

 

 

 

예술로서의 공무도하가




 

이 곡은 가수 이상은이 1995년 발매한 정규 앨범 『공무도하가』의 <공무도하가>이다. 이상은은 고등학교 2학년 고전 문학 수업 때 고전 시가를 배우며, 멜로디가 휘발된 채 글자로만 남아있는 이 시를 소생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여 그는 일본에서 앨범 구상을 할 때 이 기억을 토대로 잃어버린 <공무도하가>의 멜로디를 훌륭하게 재현해 냈다. 이상은은 변형을 최소화한 원 텍스트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접목시킴으로써 고조선 시대의 <공무도하가>를 소환하여 한층 격조 높은 감상의 기회를 안겨 준다.

 

예술가적 자아를 지닌 그가 본 <공무도하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 자체이다. 기어코 물을 건너는 백수광부는 광기에 휩싸인 예술가 같다. 그의 입수는 영감을 찾아 헤매는, 혹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이상 속을 배회하는 퇴보한 예술가의 고뇌, 처연한 고군분투를 연상시킨다. 혹은 피안의 것을 좇기 위해 유랑하는 자 같기도 하다.

 

그런 예술가의 곁에는 그의 몸부림을 보며 슬퍼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와의 거리에 따라 고통이 꿰뚫고 지나가는 양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가까운 누군가는 그에 의해 기어코 자신의 인생을 내놓기도 하는데 <공무도하가>에서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그랬다. 그리고 이것을 전해 듣고 노래로 만든 여옥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자, 또 다른 예술가이다.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광기에 휩싸인 예술가, 그를 지켜보며 슬퍼하는 주변인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또 다른 예술가. 우린 이 중 한 명일 수도, 혹은 세 사람 모두일 수도 있겠다. 예술의 시각에서 본 <공무도하가>는 자신을 발견케 하며, 예술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자신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진다.

 

한편 이렇게 보니, 바다에 뛰어든 노인은 초월적 존재나 미치광이가 아니라, 지독한 범인(凡人)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지독하여 더 가련한 범인 말이다.

   

 

 

인생으로서의 공무도하가


 

 

公無渡河(공무도하)

公竟渡河(공경도하)

 

여기서 ‘무’와 ‘도’의 한 자의 차이는 사건을 전후로 나눈다. 가지 말라는 애원과 가고 나서의 좌절. 여기서 ‘기어코’에 집중해 보자. 아내의 애원을 뒤로 하고 기어코 가버린 노인. 혹은 기어코 일어나버린 사건.

 

이것에 주목하면 <공무도하가>는 아내의 임을 잃은 슬픔을 초월한, 보다 근본적인 무언가를 노래한 것처럼 들린다. 아내의 뜻대로 되지 않는 남편. 뜻하지 않게 재난을 목격한 곽리자고. 그 뜻하지 않음에 통감하며 노래를 부르는 여옥. 아내의 외침은 어쩔 수 없는 인생에의 한탄과 그에 대한 애수로 확장되며, 결국 여옥의 공감은 인생에의 통렬한 비애가 된다.

 

즉, 의지와 다르게 일어나는 인생사에 대한 비감. 처연한 멜로디로 이를 읊는다면 슬픔과 개탄의 색이 짙어지겠지만, 덤덤한 멜로디로 말하듯이 읊는다면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자포자기 및 ‘어찌할꼬’가 강조되는 체념의 색이 짙게 느껴질 것이다. 무의미하여 거대한 인생 앞에 무능하게 무릎 꿇어야 할 때, 과거의 그들은 <공무도하가>로 한숨을 대신하곤 하지 않았을까.

 

*

 

이 외에도 백수광부를 따라 죽은 바람직한 아내의 상에 주목하여 그 불합리함을 읽어내는 해석, 죽음의 묘사를 길어내는 해석, 백수광부를 자유인으로 보는 해석 등등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또, 이상은의 노래 <공무도하가>를 포함하여 김훈의 소설 『공무도하』, 문정희의 시 <술 마시는 남자를 위하여> 등 현대적 변용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고조선 시대의 <공무도하가>는 현대의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남아, 그들의 정서에 맞게 그들의 것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 엄청난 세월을 뚫고 그들에게 ‘감히’ 공감하여 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귀하고 벅차지만 또 어딘가 씁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과거의 노래를 현재에 소환함으로써 나는 현재임을 확인하지만, 동시에 이 행위가 후대에도 반복되리라는 걸 예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연함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공무도하가>를 보며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속성을 미리 배우고 감응한다. 한탄과 감탄의 변용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인생의 속성임을 익히고 연습하고 경험한다. 종국엔 모든 게 처염해지도록.

 

 

참고

1995년 KBS2 ‘밤과 음악사이’ 이상은 출연 방송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2022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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