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함께 고민하는 젠더와 뇌 과학 - 연극 '뇌까리다: 젠더탐구'

글 입력 2022.12.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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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남성 대신 새로운 젠더 분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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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까리다’ 시리즈로 ‘친일탐구’, ‘권력탐구’ 편을 선보인 이지영 연출이 ‘젠더’라는 뜨거운 감자 같은 주제와, 그에 걸맞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돌아왔다.

 

연극의 배경은 2050년, 젠더갈등이 심화되다 못해 실제 전쟁으로까지 번진 상황에서 최초의 퀴어 대통령 메디아가 탄생한다. 뇌과학자 이아손과 손잡은 그는 젠더 전쟁을 끝낼 파격적인 정책을 선포하니, 바로 기존의 젠더인 ‘여성’, ‘남성’을 폐지하고 사람을 12개의 젠더로 분류하겠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부여받은 성별에 따라 내면화된 기존의 젠더와 달리 새로운 12개의 젠더는 여러 단계의 뇌 검사를 거쳐 ‘판정’받는다. 단순히 새로운 젠더 유형을 부여받는 것만이 아니라 각 유형에 속한 직업군으로 이직까지 해야 하니, 사회적 혼란과 사람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다.

 

메디아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젠더 분류법이야말로 이미 불평등과 갈등의 온상인 기존의 젠더를 넘어서 ‘젠더리스 사회’로 향하는 첫 단계라고 주장한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편견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와 달리 뇌 과학을 근거로 만들어진 젠더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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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엘리시온 시민들의 혼란을 ‘아리’네 가족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아들’의 혼란은 크다. 그는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기 전부터 여성으로 성 전환을 하기로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국가에게 부여받은 지정성별을 바꾸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그는 다시 한번 국가에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젠더를 일방적으로 부여받게 된 셈이다. 가족과 갈등하며 오랫동안 굳혀 온 결심은 새로운 정책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그의 상황은 뇌 과학을 근거 삼아 일방적으로 젠더를 ‘부여’하는 메디아의 정책이 개개인에게 폭력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메디아의 정책은 오늘날 태어나자마자 부여받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지정성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연극 속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젠더를 부여하는 것이 폭력적이라면, 현실에서 간성(間性)의 존재를 무시한 채 둘 중 하나로만 지정되는 성별, 자신의 성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 성별을 평생 앞세워 살아야 하는 것은 괜찮은가?

 

 

 

여성성은 어떻게 열등한 것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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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네 가족 중 새로운 젠더를 혼란스러워하는 게 아들만은 아니다.

 

평생 아기라고 안아본 적 없고 집안일을 하찮게 여기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리’는 아기를 돌보는 일이 천직이라는 검사 결과를 받고, 집안일만 해온 어머니 ‘유모’는 하루아침에 구청장이 되어 출근한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딸’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게 된다. 유모와 딸은 새로운 젠더 유형에 만족하지만 아리는 그렇지 않다. 급기야 아리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시위가 일어난다.


사람들이 불만을 품는 이유는 앞서 새로운 젠더 분류법 자체에 거부감을 가졌던 아들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그들은 자신이 부여받은 젠더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 그 젠더가 속한 직업군이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임금도 낮다는 것에 분노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모’와 ‘딸’이 새롭게 갖게 된 직업(구청장, 군인)과 달리 불만을 갖는 이들의 직업은 보육교사처럼 원래 여성이 주로 갖는 직업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새로운 젠더 분류법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젠더가 내재한 불평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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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은 메디아와 이아손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새로운 젠더 분류법은 대외적으로는 뇌과학자 이아손의 성과로 홍보되지만 사실은 메디아의 것이다. 메디아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여기고 연인인 이아손과 손을 잡아 이아손의 이름으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아손은 메디아에게 피해망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기에 차별받는 일이 실제로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메디아 개인의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아손이 이 극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상사이자 연인인 메디아의 명령을 듣는 것에 계속 거부감을 표할 뿐만 아니라 메디아 밑에 있는 꼴이 “계집아이 같다”라는 크레온의 말에 크게 분노하기 때문이다.

 

이아손은 메디아가 여성이라 차별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사회에서 여성성이 열등하게 여겨지는 게 사실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메디아의 생각은 정말 피해망상일 뿐인 걸까. 이아손의 모습은 앞서 시위를 하던 이들의 목소리와 겹쳐지며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예정된 실패, 메디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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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메디아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메디아가 맞는 결말이 파국이라는 것도 짐작할 것이다. 이 연극 속 메디아의 비극 역시 예정되어 있었다. 젠더리스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뜻 자체는 정의로웠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전 대통령 크레온에게 사적인 복수를 시도했고, 복수를 위해 뇌 검사 결과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메디아는 크레온과 손을 잡은 이아손에게 배신당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비난을 온몸으로 받는 메디아와 달리 이아손은 자숙하고 오겠다고 고개를 까딱 숙인다. 우리는 이다음 이야기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아손은 돌아오고 메디아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다.


메디아가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게 알려지며 새로운 젠더 분류법은 무산되지만, 그것의 허점은 조작이 아니더라도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드러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극중 크레온은 정치인이 아닌 예술인에 적합한 뇌라고 판정받는데, 그 근거는 뇌의 특성, 시상하부의 패턴, 뇌 호르몬 수치, 커넥톰 등을 종합한 결과 그의 뇌가 거짓말에 능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여기서 관객은 검사 결과의 수치 자체는 객관적일지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일은 객관적일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뇌 검사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정하고 그 결과를 해석, 판단하는 것 역시 결국 기존의 사회 통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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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하는 주체도 사람이라는 것.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뇌 과학의 허점은 여기에 있다. 과학은 불평등의 해결사가 되어줄 수 없다. 어떤 뇌 과학은 성차(性差)가 타고난 것보다 후천적 영향이 더 크다고 말하지만, 다른 뇌 과학은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를 주장하며 젠더 이분법에 힘을 싣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뇌 과학과 젠더 사이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뇌 까리다 – 젠더탐구> 역시 뇌 과학의 특정한 관점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뇌 과학과 젠더의 여러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뇌 과학이 젠더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뇌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개개인, 연극을 보는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관객은 공연 시작 전 받은 QR코드로 자신의 젠더 검사를 해볼 수 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인물들은 관객에게 자주 말을 걸고, 관객은 관객에 머물지 않고 이 연극 속 세계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이 이 복잡다단한 문제의 한중간에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유도한다.

 

젠더란 무엇이고 사회에서 젠더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각자는 거기서 얼마나 자유롭고 또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그 과정에서 누가 피해를 보며 무엇이 폭력이 되는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엘리시온을 번갈아 보며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봐도 좋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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