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락욕구에 대하여 [사람]

글 입력 2022.12.1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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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이라는 단어를 지능과 자각이 있는 상태에서 마주친 것은 대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끝내 한 학기를 못채우고 나왔던 영문학 동아리에서 존 쿠체의 '추락'을 읽을 때였다.(원문은 'disgrace'였는데 이걸 추락으로 번역한 것도 흥미롭다)

 

그러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추락욕구'라는 단어를 읽었다. 테레사는 바닥을 보며 그대로 추락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현기증에 사로잡히곤 했다. 분명 발로 땅을 딛으면서도.

 

그때부터 '아하, 이 느낌을 추락욕구라고 부르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씩, 아주 강하게 이 말이 나를 불렀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지나간 칠 년을 단번에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현기증이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극복할 수 없는 추락욕구."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추락이라는 이 말이 이토록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스스로가 그 욕구에 깊이 공감하곤 했기 때문. 담배를 피고, 좋지 않은 음식들로 몸을 채우고, 길가에 붙은 성형수술 포스터들에게 키스하며, 가장 저열한 것들을 찾아 어깨동무하며, 몸뚱아리를 팔아버리고 싶은 이 욕구.

 

이 욕구는 마음속에서 깊이 사랑하는 평화를 돌연 박박 찢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며 소소하고 행복한 내 작은 것들에 돌을 던지고 싶은 욕구와 멀지 않다. 한없이 저열해지고 싶고, 한없이 개처럼 바닥을 기길 동경하며, 한없이 추락하고 싶은 이 욕구가 가끔 마음에서 발딱발딱 만져진다.

 

이렇게 물렁물렁 이랬다 저랬다 이해할 수 없는 자아의 횡포에 주물러지는게 싫어, 드물게 찾아오는 이 요상한 욕구로 일상을 상처주기는 더더욱 싫어 이 욕구에 자기객관화를 시전하며 연구거리로 삼아겠다 생각한지도 꽤 되었는데. 진전은 없다. 추락하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

 

모순적인 것은, 스스로는 이렇게 비참하게 절여진 날들을 온몸을 다해 끌어당기는 이 욕구를 이해하면서도, 평화로운 일상을 망치지 않고는 못배기는 영화 아넷트의 주인공 애덤 드라이버(극 중 '헨리 멕헨리')를 보며 생각한 것은: '아, 애덤드라이버 (멋진 초록 가운을 입은), 이제 심연을 그만 들여다보오,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보오.' 헨리는 열등감에서인지, 무엇이 동기가 되었는지 계속해서 뭔가를 밀어붙이고, 눈이 장님이 된 듯,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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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네트 중]

 

 

오 베티, 베티. 영화 베티블루에 베아트리스 달 (극 중 '베티')는 남들보다는 조금 더 뜨겁다. 그녀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것은 예쁜 망아지. 베티는 장 위그 (극 중 '조르그')와 사랑하는 연인관계이지만 베티는 점점 조르그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간다.

 

조르그는 베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주려 하지만 베티는 점점 미쳐간다. 베티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베티ㅣㅣ.jpg

[영화 베티블루 37.2]

 

 

아넷트의 헨리가 추락욕구로 인해 서서히 심연에 침전되는 것이라면, 베티는 원심력에 결국에는 구 밖으로 튕겨져나가고 마는 것이다.

 

어렸을적 몸이 붕붕 나는 이 뺑뺑이 같은 세상속, 차가운 쇳기둥을 꽈악 붙잡지 않고 붕붕, 훨훨, 날라가버린것. 아넷트의 헨리가 추락했다면, 베티는 비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상은 비슷했다. 아넷트를 볼때는 '헨리, 제발, 헨리..', 베티블루를 볼때는 '베티, 제발, 베티'. 그러나 다 보고 난 뒤의 감상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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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을 욕구하는 만큼 누군가(스스로의 것을 포함하여)의 웃음, 행복, 그리고 평안을 원하는 욕구도 생생히 있다.

 

일어나 걷고 또 일어나 걷고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추락욕구만큼 나를 끌어당기는 또 다른 욕구. 주어진 삶을 'complicate oneself'(스스로 복잡하게 만들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상의 리듬. 마음에는 저어 멀리 날라가고자 하는 베티와 '자! 이 땅에도 이렇게 예쁜게 많아! 봐!'하는 조르그가 둘 다 있다.

 

이렇게 삶을 길주욱히 늘여놓고 나면 각각의 사람은 하늘과 땅만큼 이중적이고 또 인간은 심연과 지성소를 드나드는 미치광이 동물로 보인다. 평안했다 날고 싶었다 걸었다 낭떠러지로 데굴데굴 굴러버리고 싶었다 와글와글 거리는 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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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끝과 끝을 맴도는 조울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욕구를, 땅을 딛으면서도 더, 더, 더 추락하고 싶은 추락욕구를 어떻게 해야할까.

 

난 완전히 추락하지 못할 용기가 없음을 알면서도, 베티처럼 미쳐버릴까, 헨리처럼 침전될까, 이 주인없는 욕구에 일상과 사랑들이 다치지 않을까, 내심 두렵다. 이런 날들도 있는거지, 큰일이 아니라는듯, 물 흐르듯 떠나 보내는 것으로 추락을 떠나 보내려하며.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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