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300평의 공간을 누리는 사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공간]

서울여행가(旅行家), 비워내는 용기
글 입력 2022.11.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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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근처에 있는 역인 서울역

 

 

 

여행준비 : 여행가(旅行家)와 여행자(旅行者)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여행가(旅行家)는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고 여행자(旅行者)는 ‘여행하는 사람’이다. ‘가’와 ‘자’ 사이는 작대기 하나 차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나에게 전문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될까 망설였다. 여행을 누구보다 좋아하지 않지만, 꽤 좋아하는 편이다.


 

‘It is not what you look at that matters, it’s what you see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철학자 소로의 말처럼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여행에 맞게 바꿔본다면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나에게 여행은 매일이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만 여행이 아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된다. 매일 보는 나무가 단풍이 물들고 떨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도 여행이다. 버스를 타고 무심코 지나친 장소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공간의 의미가 달라진다.


나는 여행에 ‘자’가 아닌 ‘가’를 붙임으로써 약간의 책임감을 부여한다. 영화 <콜럼버스>에서 진이 번역하는 책 문장처럼 “노력과 비용을 들여 보이지 않는 것과 항상 보이는 것을 보고자 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가까운 도시, 서울을 생활인의 시선이 아닌 여행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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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서울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8분을 걸어가면 한 공원이 나온다. 여기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표지판이 보였다. 낮은 경사가 있는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면 입구가 나온다. 나는 당연히 지상에 위치한 건물일 줄 알았는데,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지하로 파인 건물이었다.

 

 


조선시대 국가 공식 참형지, 천주교 순교성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터는 천주교의 중요한 성지였으나 최근까지 공용주차장, 재활용센터로 이용했던 곳이었다. 공간을 아예 뒤바꿔서 2019년에 개장했다. 천주교의 중요한 성지가 된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 공식 참형지였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사법기관인 형조·의금부와 가까웠다. 처형을 집행하기에 용이한 장소였다. 처형장은 보통 물이 흐르는 곳에 있는데 이곳은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장소다.


서소문 밖 네거리 참형지는 조선시대 천주교도를 박해가 시작된 장소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와 성리학 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천주교를 탄압했다. 신유박해(1801년)를 시작으로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1873년)까지 98명의 천주교인이 목숨을 바친 장소다. 이후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단일 장소에서 최다 성인과 복자를 배출한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가 되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오면, 장소에서 풍기는 엄숙한 분위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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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나서 조명을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간다. 내리막 길 중간에 위치한 경당에서는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건물 안의 엄숙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내리막 길은 마치 순례자의 길 같았다. 검은 상자를 중심을 두고 빙글빙글 돌아 내려간다. 내리막 길 끝에서 정체를 알게 된다.

 

 

 

빛과 어둠의 압도,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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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레이션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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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레이션 홀

 


길의 끝에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이 있다.

 

먼저, 돌아내려 온 검은 상자의 정체는 바로 콘솔레이션 홀의 벽이었다. 내부에 들어가면 검은 벽에 미디어 아트와 노래가 흘러나온다. 천주교 순교자의 유해가 정중앙에 모셔져 있다. 가만히 앉아 변하는 벽을 바라보면 신비함에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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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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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광장

 

 

수십 개의 문 중 하나를 열고 처마를 지가면 빛이 쏟아진다. 하늘광장에 이름에 걸맞게 빛과 하늘을 품고 있다.

 

가로 33m 세로 33m, 약 300평 규모의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평일 오후에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300평을 점령하는 사치를 누렸다. 서울같이 인구가 밀접한 도시에서 파란 하늘을 방해물 없이 보기 힘들다. 오랜만에 공간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하늘광장의 모든 모습이 궁금하다. 눈이 올 때, 비가 올 때, 날이 흐릴 때는 느낌이 다를까? 그리고 가만히 여기에 앉아서, 그림자의 변화를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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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간은 완벽하게 대조된다.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의 관계는 어둠과 빛, 내부와 외부, 채운 공간과 비운 공간, n모양과 u모양으로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 대조가 극명하기 때문에 방문객의 몰입을 극대화시킨다.

 

신기했다. 공간을 보고 벅찰 수 있다니. 처음으로 겪는 감정에 낯설지만 설렜다. 특히 콘솔레이션 홀의 어둠에서 하늘광장의 빛으로 향할 때, 희열이 몰려왔다. 공간은 용기를 선물한다. 나는 '어둠에서 빛으로' 혹은 '빛에서 어둠으로' 어떤 길이든 무심코 밟고 싶다.

 

 


비어있는 공간



맥시멀리스트에게 비어있는 공간을 찾기 어렵다. 삶 속에서도, 물건에도, 말속에도, 마음속에도 어느 하나 비우려고 노력할 줄 몰랐다.


무의 상태,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은 상태를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다. 무가 아닌 결핍이라고 주장하고 채우려고 애쓰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불안해서 소유하기 위해 애썼다. 채우고 또 채우면 비워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채웠다.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고,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 말이나 문장으로 가득 찼다. 정리하고 비워내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 그럴수록 비어있는 공간의 열망을 커졌다.


내 삶, 물건, 생각은 비우지 못했지만, 하지만 비어있는 공간이 지금 여기 있다. 그것만으로 나에게 충분한 위로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비워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신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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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길, 미디어아트<좁은문>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성지 소개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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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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