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뻗기 - 신의 문장술

글쓰기의 시작, 무작정 쓰고 버리기
글 입력 2022.11.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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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실은 가장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약간 자의식 과잉의 자극적인 제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유튜브 영상 제목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여자라면 꼭 있어야 할 필수! 겨울옷’, ‘딱 2가지만 지켜도 자수성가 쉽게 할 수 있어요’. 해당 채널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영상만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알맹이에 비해 대단히 덩치를 부풀리는 컨텐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 컨텐츠에 자꾸만 손이 가는 건 중요한 걸 몰라서는 안 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다. 아마 컨텐츠 제작자들도 이런 제목을 붙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게 먹히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매운 향내 한 스푼을 넣는 것이겠지.


어김없이 매운 향기에 끌려 <신의 문장술>을 집어 들고 말았다. 게다가 글쓰기는 평생의 숙명 같은 과제이기도 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글 잘 쓰는 사람 부럽다.” 맨날 하는 이야기다. 말 잘하는 사람 부럽다고 말하는 빈도수랑 비슷할 정도로 나는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참 부럽다. 특히나 저만의 언어로 색깔 있게 논리적인 글을 쓰는 사람을 나는 곧잘 질투한다.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싶은 걸 넘어서 마음을 건드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도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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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뻗기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이렇게 할 말이 많다. 그렇지만 나는 글쓰기를 기술적으로 잘하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잘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기를 쓰고 에세이를 자주 읽는 편이다. 그렇지만 특히나 틀이 짜인 글쓰기에는 도통 정이 붙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논술로 대학에 가겠다며 국어 학원에 다니면서 배웠던 일은 글의 틀을 잡아주긴 했으나 나만의 글쓰기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책에서 말하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출발 지점이 같은데도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이 나뉘는 건 재능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를 선택하느냐 마느냐(실천)의 문제라고 거듭 이야기한다.

 

 

“나날의 삶 속에서 안테나를 뻗어 글감을 찾고 그것을 자기 말로 구현해보자. 안테나를 뻗는다는 건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행동이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 가치를 느낄 수 있는가? 이것이 인생을 충실하게 만드는 방법이고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쓰고 버리기


 

글을 쓰는 데에는 문장력이 대단히 필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편히 먹고 일기를 쓰다가도 어느 날은 전부 다 찢어서 버리곤 했다. 나의 일기장은 토해낸 감정들로 가득했고 나중에 다시 이를 읽어 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일기를 자꾸만 훔쳐보는 버릇이 있는 아빠에게 일기장을 보여주지 않으려 자꾸 숨겨야 했다. 일기장이었던 종이를 찢어서 버릴 때면 누군가 이걸 읽을까 엄청나게 노심초사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고 지금은 노션이라는 온라인 툴에 일기를 쓴다. 정제된 폰트로 컴퓨터 화면에 쓰인 글은 객관적으로 느껴져서 그렇게까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조금 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시행착오는 맞으나 실패는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줬다. 작가는 쓰고 버리기를 강조한다. 버릴 마음을 먹고 마음껏 쓰라고. ‘메모’와 ‘쓰기’가 다른 까닭은 메모는 다시 보기 위해서 적어두는 것이고 글 쓰는 건 다시 안 볼 작정으로 쓰는 것이라고 한다. 대충대충 일을 한다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나서 이걸 버리면 아깝지 않을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쓰고 버리더라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고는 확장되고 이렇게 뻗어져 나간 생각은 웬만해서는 쪼그라들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쓰려고 생각하다 보면 지난번에 멈췄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한번 써봤던 글에 관해서는 더 깊이를 더해서 쓸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생각을 깊게 만들고 또 넓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세계관이 생긴다. 해상도가 높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쓰는 글은 명확하고 뭔가 다르다.

 

 

 

스킬만 익히지 않기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비교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내내 작가 이슬아가 생각났다. 그는 내가 최근에 가장 질투하는 작가인데 한 편에 500원을 받고 이메일로 매일 글을 보내 준다는 참신한 생각을 해내고 실천한 것도 그렇지만, 그의 문장이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다. 분명 나랑 같은 언어를 쓰는데 어쩐지 그가 쓰는 문장들은 말랑거리면서도 힘이 있었다. 어린 아이 같은 쉬운 단어를 선택한다고 느껴지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적확한 단어로 마음을 무겁게 때렸다. 나는 그렇게 쉽고 단단한 글이 좋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글이 너무 쓰고 싶었다. 가끔 그를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작가가 말하기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글은 그저 멀리 남겨두어야 한단다. 그 사람의 그늘에 있다 보면 아류작밖에 되지 못한다. 이미 내가 좋아한 글은 내 안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 작은 배움을 안고 내 문장을 엮어야 한다. 남의 요령을 따라 하는 일은 일견 빨리 가는 길처럼 보이나 실제 내 실력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좌충우돌하면서 배우는 게 가장 내 안에 크게 남는다. 글쓰기도 공부와 비슷한가 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처럼 너무 잘 쓰고 싶어 하면 정말 한 글자도 쓸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단하고 멋지지 않아서 내 글이 너무 초라해 보일 때면 그래도 써야 한다고 했다. 작가가 말하기를 자기가 예전에 엄청 구린 삼류 좀비 영화들을 봤는데, 그걸 보면서도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아해했다고 했다. 완성도도 떨어지고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할 것 같은데 굳이 왜 끝까지 만든 걸까? 지금 작가가 생각하기를 완성하기 전과 완성한 건 결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삼류 영화를 만들면서 그 사람들은 많이 배우고 성장했을 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 글이 아무리 구려도 내 안에 흔적으로 남아서 조금 나아지게 만든다면 기꺼이 쓰겠다. 쓰는 일이 나를 달리 만들 거라면 기분 좋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선순환의 시작


 

또, 글을 쓰다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인다고 한다. 글을 쓰는 건 세상에 내 세계관을 내놓는 일이라서 남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인지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비난과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게 된다. 어떤 유튜버들은 ‘제 구독자님들은 어떻게 저랑 이렇게 성향이 비슷한지 모르겠다. 이런 얘기까지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 이유는 유튜버가 자신을 대중에게 잔뜩 내놓았기 때문에 닮은 사람들이 주변에 자연스럽게 모여든 거다.

 

이슬아가 이런 면에서 정말 부러웠던 것이 주변에 진짜 힙한 사람들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전형적이지 않은 멋진 20대들이 그의 주변엔 참 많았다. 가수 요조, 양다솔, 장기하 등. 한가락하고 제멋대로 멋진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그가 글을 쓰면서 또 글 외에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모인 거겠지.

 

그렇게 현재 상태를 쓰다 보면 세계관이 구축되고 세계관은 말과 행동, 태도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반응을 보이며 주변 환경은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한다.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글 쓰는 일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문장력이 뛰어난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였다. 평범한 사람도 일상에서 나만의 소재를 얻어서 충분히 공감할 만한 글을 쓸 수 있다. 또 누군가의 공감을 얻지 못하더라도 글쓰기는 자기만족의 성격이 있어서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성장함을 느끼고 내 세계가 넓어진다.

 

글쓰기를 통해 변화된 작가의 삶이 글쓰기에 관해 고민하던 내게 공교롭게 다가온다. 나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꼭 필요하다는 걸 계속 상기하며, 글 쓰는 일을 그만두지 말아야겠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든든하고 단단한 무언가를 계속 내놓아야겠다. 당신도 글쓰기에 빠졌으면 좋겠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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