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600미터 상공에서 탈출하기 - 영화 '폴: 600미터'

글 입력 2022.11.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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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 때 어려운 것은 이미 이것이 가짜임을 알고 있는 관객이 그것을 잊어버리게끔 만드는 일이다.

 

무서운 놀이기구와 비슷하다. 안전장치는 필수이지만 그 안전장치를 한 탑승자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스릴을 선사해야 훌륭한 놀이기구라 할 수 있다. 기술은 점점 발달하지만 관객의 눈도 그만큼 점점 높아지기에, 영화적 재미를 주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 앞에서 관객은 또 한 번 속아 넘어간다. 그렇게 본 영화를 우리는 ‘재밌다’고 느낀다.


<폴: 600미터>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재밌는 영화다. 진짜 600미터 위에서 찍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는 내내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손에 땀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600미터 상공 위 겨우 두 사람만 간신히 서 있을 만한 공간에 고립된 두 여성의 탈출기를 그린다. 이들이 올라간 티비타워 주변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허허벌판이고, 송신기의 방해로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두 사람은 무사히 살아서 타워를 내려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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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600미터>는 장르의 관습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인 베티는 남편 댄, 절친 헤더와 암벽등반을 하다가 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1년 후, 슬픔에 잠겨 집에서 술로 시간을 보내던 베티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헤더의 권유로 600미터 높이의 티비타워에 올라 남편의 유골을 뿌리기로 결심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600미터 타워를 오른다는 게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이는 헤더가 유튜브 조회수에 집착한다는 설정과 뭐라도 해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고픈 베티를 강조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허허벌판에 우뚝 선 600미터짜리 티비타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낡고 앙상하다. 두 여자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서로를 로프 하나로 연결해 사다리로 타워를 오르기 시작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도 이 티비 타워에서 사고가 터질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느슨해진 나사, 흔들거리는 사다리. 앞으로의 일을 예고하는 불길한 복선은 인물은 눈치채지 못한 상황에서 관객 눈에만 보인다.


공포영화를 볼 때 가장 무서운 때는 무서운 게 튀어나오는 순간이 아니라 무서운 게 언제 나올지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는 시간이다. 영화는 이러한 관객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인물이 티비타워를 올라가는 동안 느껴지는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두 사람이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는 가운데 언젠가 사고가 나고야 말 이 타워에 언제 문제가 생기는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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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모두가 기다리던 사다리가 무너지는 순간이 닥치고, 두 사람은 600미터 상공 위 좁디 좁은 판 위에 고립된다. 망원경과 조명탄을 발견한 것도 잠시, 기회는 허망하게 날아가 버린다.

 

허허벌판 티비타워 위 고립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극한상황인데, 영화는 여기에 한 가지 상황을 추가해 몰입감을 높인다. 바로 이 타워에 오르자고 권유했던 절친 헤더가 남편 댄과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베티가 알게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기 편이라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사실을 알고 나자 이 위험한 공간에는 또 다른 긴장감이 감돈다. 타워에 올라갈 때는 600미터라는 아찔한 높이를 강조하며 공포와 스릴을 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서자 심리 갈등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둘 사이는 급격하게 어색해지지만, 600미터 위에서 의존할 수 있는 건 서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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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상황에 처한 인물을 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간의 생존력이다. 이런 종류의 탈출영화에서 탈출을 쉽게 포기하는 주인공이란 있을 수 없다.

 

상황이 생존본능을 강화한 것인지, 본래 그런 힘이 숨어 있는 인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상황에서 탈출하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오랫동안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던 문제가 분명해진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일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으리라 예감한다.


[폴: 600m]의 주인공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타워에 올라가는 본래 목적은 남편의 죽음을 부정하며 1년간 집 한구석에 방치해 둔 남편의 유골을 600미터 공중에 뿌려 남편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올라간 곳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뚜렷해지는 것은 이미 죽은 남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이다. 초반에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하던 주인공이 어떻게 점점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는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살아 돌아오는지 그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뿌듯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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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탈출 과정과 반전도 흥미롭다. 초반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복선과 힌트가 후반부에 진면목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유념해서 본다면 후반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집중력이 떨어져 긴 영상을 보지 못하고 웬만한 이야기에는 흥미를 못 느낀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107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시계 볼 생각을 못 했다. “가장 큰 화면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해외 매체 평이 크게 와닿는다.

 

타워를 오르는 둘의 모습이 터무니없이 무모해 보여서 답답하다가도,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위험한 모험을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헤더는 말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까, 늘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렇다고 우리가 맨손으로 타워를 오를 수는 없는 노릇.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체험을 대신해 준다는 게 영화라는 매체의 기능이라면 그 기능을 십분 활용한 영화, <폴: 600미터>를 보는 것도 좋다. 우리 대신 타워를 올라가는 베티를 지켜봐주자.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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