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11.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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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나 봉사 가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 유명인들의 화보를 본 적이 있는가. 잡지 인터뷰에서 한 원로 여성 배우는 ‘아이들이 저기서 저러는데 혼자 고급 호텔 가서 자는 게 미안해 울었다’는 틀에 박힌 ‘착한’ 말씀을 하신다.

 

읽어내려가던 나도, 『별것 아닌 선의』의 저자, 이소영 교수도 반발심이 솟아 어느새 냉소의 웃음을 흘린다. 그러자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분이 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불평등과 빈곤은 단발성 봉사로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인데, 잠시 동안의 선의는 어떤 면에서 무책임하지 않겠냐’고. 그러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맞아요. 이걸로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거, 당연히 맞죠. 그렇게 되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요. 근데 그건 제가 지금 당장 어떻게 못해요. 오늘 한 명 더 먹고 입게 하는 데엔 뭐라도 하나 보낼 수 있으니까 일단 저는 한 명 더 먹이고 입힐래요." (102쪽, 『별것 아닌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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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는 제주대학교 이소영 교수가 2017년부터 '경향신문'에 기고한 50여 개의 칼럼을 엮은 책이다. ‘선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거나 선함의 효용을 설파하기보단 어떤 따스한 찰나들을 포착하고 기록하여 사람들과 나누고자 사소하지만 반짝였던 순간, 고민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누군가의 상처에 귀 기울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을 만큼의 위로를 건네는 것'. '그런 방식으로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고 믿고 그 선의의 동심원을 넓혀가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들이 다정한 빛을 내고 있다.

 

위 에피소드에서 그분의 말은 이소영 교수, 그리고 나의 차가운 심장에까지 더운 물을 끼얹는다. 이소영 교수는 말한다. 빈곤과 부조리를 미담으로 덮으려는 것이 ‘분노 없는 연민’을 낳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 또한 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 (104쪽, 『별것 아닌 선의』)
 

 

위선과 냉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이고 후인지 가르는 것이 어떤 면에선 중요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저 찰나의 선의일지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더하여 완벽한 선함만이 진정한 선함이라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도 의문이 든다. 완벽하지 못함에 모두가 냉소해야만 한다면, 차가운 공기만이 주위를 둘러싸지 않을까.


사실 세상을 바꾸는 히어로 또는 성자가 될 수 없다고 온기를 저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그저 내 변명과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의 완벽에 대한 강박, 집념을 버리고 그저 내 자리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별것 아닌 선의’를 건네는 것. 그것은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는 가닿지 않을까.

 

이후 범위를 넓혀 구조적인 개선 운동, 직접적인 봉사 등 더 많은 이들에게까지 뻗어나갈 수도 있고, 혹 어쩌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이후의 일이고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모래알만 한 선의'일지라도 그것조차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니까.

 

작고 취약한 개인들이 서로 자그마한 호의를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다는 진부하지만 그래서 더 잊기 쉬운 말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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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이준
    • 많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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