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은행나무가 들려준 정조와 궐리사 이야기 -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글 입력 2022.11.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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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화성궐리사_포스터-01.png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극을 보러 가기 전까지 궐리사가 공자를 섬기는 사당을 의미하는 일반명사라는 것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게 된 다음에야 ‘화성궐리사’가 어떤 곳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화성’이 붙어 있기에 정조가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중종 때부터 있던 곳으로,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이 세운 사당이 그 기원이다. 정조와의 인연은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후 정조가 이곳에 사당을 새롭게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궐리사가 된 것도 그때부터다.


정조가 어렵사리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면서 화성을 축조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궐리사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없어서 의아했다.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를 둘러싼 익숙한 역사와, 낯선 궐리사의 조합에 호기심이 생겼다. 29일 궐리사에서 진행된다는 현장극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를 보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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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가을날 오산시 궐리사에 도착했다. 주말인 데다가 현장극을 비롯해 궐리사 내부에서 오후 내내 크고 작은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온 방문객이 많았다. 주차장을 지나 궐리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은행나무였다. 계절에 맞게 샛노랗게 물든 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렸다.


공서린이 살아 있을 때 이 은행나무에 북을 매달아 두고 조는 제자들을 깨우며 글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서린이 죽자 나무도 자연스럽게 시들어 죽어갔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나 정조는 죽은 줄만 알았던 이 은행나무에서 싹이 트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무는 그 이후 여러 시련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갖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고, 태어나고 죽는 동안 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을 은행나무를 보니 겸허해졌다. 이 궐리사의 주인은 공서린도, 정조도 아닌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이 나무일지도 모른다.

 

현장극은 오후 2시에 시작되었다. 야외에서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는 극인 만큼 공연을 이끄는 정:지 팀은 복잡한 내용보다 궐리사의 간략한 연원을 다채로운 춤과 음악으로 표현하는 쪽으로 공연 방향을 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이 복잡하지 않을지라도 현장극이 관객의 이목을 끌고, 공연 내내 몰입을 이어 나가기는 쉽지 않다. 당일 날씨나 관객층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공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도 없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공연할 시간이 되면 아직 볼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 앞에서 공연을 펼쳐야 한다. 실제로 공연 5분 전까지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며, 여러모로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정:지가 택한 것은 역시 음악과 춤이다. 정조의 이야기를 한다고 음악이나 무용도 전통적일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첼리스트의 연주와 함께 배우는 가요 같은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맞춰 빨간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독무를 선보이며 현장극의 시작을 알렸다. 애절한 분위기의 음악과 춤은 앞으로 이야기할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의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들려오는 음악에 사람들이 하나둘 착석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하기 시작할 때 즈음 어느덧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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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궐리사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사람들을 위해 '정령'이라는 화자를 내세워 이곳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곳인지부터 밝힌다. 정령이 궐리사의 은행나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입장이라는 게 독특했다. 이번 극은 기본적으로 정조가 궐리사를 세운 이야기이니 화자가 따로 없거나 있더라도 그 모든 걸 지켜봤을 나이 많은 신하 정도겠거니 했는데 뜻밖이었다. 하지만 나무만큼 같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정령이 공서린 때부터 시작된 이곳 궐리사의 이야기를 간략히 마치고 나면 우리가 여러 작품에서 봐 와서 잘 알고 있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대립이 펼쳐진다. 사도세자 역을 맡은 문소연 배우는 야외극에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절절한 연기와 몸짓으로 관객의 순간적인 감정 이입을 이끌어 냈다.


남겨진 정조가 갖은 고생 끝에 왕위에 오르는 모습은 역동적인 격투로 형상화된다.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도 그는 자신을 잊지 말라고 했던 아버지의 뜻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다. 분투 끝에 왕이 된 정조는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선포하고 아버지의 복권에 나선다. 이곳에서 공서린의 죽음과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은행나무가 싹을 틔우는 모습을 발견한 정조는 아버지를 기리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궐리사가 되었다.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다. 시작이 춤과 음악이었듯 끝도 춤과 음악이다. 모든 출연진이 함께 추는 춤에서 특정 세력에 권력이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이 능력을 펼치며 살기를 바랐던 정조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다소 무겁고 지겨울 수 있는 이야기를 정:지는 움직임과 무용, 중간중간 적당한 추임새를 통해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전달했다. 결코 진행이 쉽지 않았을 현장극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던 최규호 배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현장에 앉아 있는 어린이 관객이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애끓는 마음이 이곳 궐리사에 녹아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기억한 채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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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통해 궐리사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추가로 다른 것들을 찾아보니 정조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릴 수 있었다. 시간 관계상 공연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조는 11살에 아버지를 잃은 후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것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시간을 살아야 했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죽고 난 다음 정조는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는데, 사도세자의 배다른 형이자 영조의 맏아들이었던 효장세자가 이미 10살의 나이에 죽은 지 오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사도세자의 존재가 조정에서 얼마나 금기시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원 화성이 단순히 새로 지은 궁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정조의 마음, 그리고 조선을 새롭게 하겠다는 다짐이 담긴 것처럼, 이곳 궐리사 역시 노론 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죽은 지 200년이 지나서 새롭게 싹을 틔운 은행나무를 본 순간, 정조의 마음속에도 새로운 불꽃이 활활 타오르지 않았을까. 2022년 가을, 궐리사 전체를 노란빛으로 물들인 은행나무를 다시 바라보며 그 옛날 나처럼 은행나무 앞에 섰을 정조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했다.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정조가 다 이루지 못한 바람을 생각하면 허망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 바람이 완전히 다 헛되게 된 것은 아니다. 궐리사는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궐리사는 인근 주민들을 비롯해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오산시는 전통예절교육과 같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궐리사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몇 년 전부터는 수원시와 오산시, 화성시가 함께 궐리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가 깃든 장소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는 정조를 생각하면 아쉽지만, 괜찮다. 역사 속 인물 대신 은행나무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옛날부터 그랬듯이 성실한 목격자가 되어줄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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