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앤틀러스 홀스트와 김동인의 ‘무지개’ [영화]

영화 <놉> (2022)
글 입력 2022.11.0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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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 자연, 다윗과 골리앗, 계란으로 바위 치기


 

영화 <놉>의 주된 갈등 구도는 비인간(자연) 대 인간이다. 영화에 나타나는 외계 생물은 자연과 같다. 구름 뒤에 숨어 있고, 엄청난 양의 비를 내리는 존재이고, 그것을 마주하면 인간은 무력하게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이만큼 문명을 이루고 사는 지구촌에서도 각각 지진, 해일, 기상이변으로 죽어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자연, 그러니까 '진 재킷'을 이기겠다는 것은 영화에 나오는 인간들, 즉 주요 인물들의 유일한 목표이지만, 너무나 무모하고 절대로 불가능한 과제이다.

 

아마 인간들도 자신이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기는 것'의 정의를 다시 한다.

 

1. 진 재킷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것, 2. 그것을 촬영해 다시 볼 수 있도록 남겨둘 것.

 

첫 번째 조건이야 생존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끝나 버리니 당연하다고 해도, 두 번째 조건은 참 흥미롭다. '촬영'은 사실상 상대방에게 물리적으로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The Great, Great, Great Grandfather of Filming


 

조던 필 감독이 이야기하는 '찍는 것', 촬영, 그러니까 '영화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독이 연출한 <환상특급 3>의 '리플레이'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조던 필은 미국 경찰의 흑인 대상 과잉 진압 문제를 시간 여행과 촬영이라는 소재를 통해 독특하게 엮는데, 이 에피소드의 엔딩에서도 촬영하는 행위에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지난 차별과 억압에 항거하는 것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놉>에서는 그러한 정치성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여전히 촬영에 대한 감독의 애정과 집착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영화 전체가 어느 정도는 촬영과 영화 현장에 대한 헌사라고도 할 수 있다.

 

헤이우드라는 흑인 기수이자 초기 영화배우의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해서, '말을 탄 흑인 남성의 이미지', 즉 최초의 영화의 이미지로 끝낸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작에 대한 감독의 경이와 애정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촬영' 감독인 앤틀러스 홀스트가 진 재킷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주요 인물이 된다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 부분에서 조던 필은 촬영이라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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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놉> 스틸컷 ⓒ유니버셜픽쳐스

 


 

앤틀러스 홀스트



영화에서 촬영 감독으로 나오는 앤틀러스 홀스트는 다른 '인간들'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존재이다.

 

깡마르고 머리는 하얗게 셌으며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하지만 매우 낮은 목소리 때문에 느껴지는 카리스마. 과거에 촬영 감독으로써 찬사를 받을 만큼 훌륭했지만, 시시한 광고 촬영이나 하는 인생. 살아온 세월 때문에 세상에 대한 지혜가 있는 것 같지만 세상만사를 귀찮아하고 어딘가 부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냉소적인 태도.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그의 모순적인 특성은 그를 오제이나 에메랄드, 엔젤과 같은 '진 자켓 프로젝트'의 나머지 인물들과 분리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한결같이 자연과 대적하려는 인간, 인류의 한 전형을 대표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촬영과 관련해 지식을 많이 축적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디지털의 단점을 보완할 아날로그 카메라를 가져왔고, 방해받지 않고 촬영을 할 만한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낼 줄 알았다.

 

또한 주프의 행방물명에 관해 '진 재킷을 길들이려다 죽었을 것, 동물을 길들이려다 죽는 사육사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는 인류가 역사를 걸쳐 이룩해 놓은 문명을 상징하는 인물로 생각되기도 한다.

 

 

 

무지개


 

에메랄드가 제안하는 진 재킷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채 듣기도 전에, 앤틀러스는 '그 꿈은 헛된 것'이라며 딱 잘라 말한다. 이 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역시 에메랄드나 오제이의 나이와 비슷했을 때 '그런 꿈'을 이루려고 시도를 했고, 실패한 경험이 있음을 슬쩍 드러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동인의 단편 소설 '무지개'에서는 어린 소년이 아름다운 무지개를 손에 넣고자 평생에 걸친 여정을 보내는 과정을 묘사한다. 소년은 결국 무지개를 찾는 것에 실패하고,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음을 깨닫자마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되고 만다.

 

앤틀러스 홀스트의 말과 행동에는 '소년'의 그런 지난한 여정이 그려지게끔 하는 서사가 있다. 그렇기에 그가 진 재킷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시도하는 인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진 재킷을 촬영하는 데 성공한 듯할 때 무모하게 진 재킷에 빨려 들어가는 관점에서 본 장면을 찍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린다.

 

앤틀러스의 이 마지막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이를 '좋은 샷을 얻기 위해 영화 크루를 위험에 빠트리는 무리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비유하여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돈이나 명성을 위해 진 재킷을 찍으려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이루지 못했던 것을 찍고자 함이었고, 이는 에메랄드와 같은 젊은이의 활기라기보다는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에 한 번 내보내는 발악과도 같다.

 

진 재킷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촬영'한다는 것. 그 사실 외에 더 중요한 것은 없기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것이다.

 

 

 

영화의 엔딩에 관하여


 

영화는 해피 엔딩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이 자연을 드디어 이겨낸 이야기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진 재킷이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한 필름은 소실되었지만, 에메랄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오빠에 대한 열등감을 떨쳐내고 역사에 남게 되었고, 진 재킷의 존재를 증명할 사진 한 장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앤틀러스의 관점에서도 평생 이루지 못했고, 이룰 수 없을 줄 알았던 컷에 대한 꿈을 이룬 셈이니 인간의 관점에서 영화 <놉>은 '닫힌 해피 엔딩'이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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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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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ngyu
    • 놉 영화를 봤을 때, 앤틀러스 홀러트 라는 인물이 왜 있는지 이해가 안갔었어요. 좀 뜬금 없다고 했어야하나.
      조던 필 감독의 촬영에 대한 애정을  '이기는 것'의 정의 + 앤틀러스 홀러트라는 인물로 녹여냈다고 받아들이면 되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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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yunayoon
    • 2022.11.11 13: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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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쇼리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앤틀러스 홀스트라는 인물을 저는 조금 추상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감독이 촬영에 대한 애정을 담아낸 인물로 해석했지만, 북미권의 리뷰어들 대다수는 할리우드 시스템의 폭력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더군요.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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