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이준형의 UTOPIA

글 입력 2022.11.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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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꿈으로 시작한 대화는 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가기가 어렵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잠처럼, 그날 있었던 사건부터 아주 오래전의 기억까지 무작위로 소환해 때때로 당혹스러운 아침을 맞게 하는 꿈처럼, 잠과 꿈이라는 주제 또한 살갗에 닿아있는 현실과 미지의 상상 세계 사이를 폴짝 뛴다.

 

과학과 심리학에서 잠과 꿈은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었듯 비밀처럼 은밀한 영역이면서 비어있는 퍼즐 조각에 대한 호기심처럼 잠과 꿈은 그 자체로 다양한 이야기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리하여 이준형의 ‘UTOPIA’를 듣고 또 쓰면서 자꾸만 삼천포로 새어나가려는 말과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튀는 생각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잠을 잠이라고 쓸 때마다, 꿈을 꿈이라고 쓸 때마다 먹이를 발견한 잉어떼처럼 수많은 비유가 동시에 튀어올랐고 끝내 뭐부터 잡아야할지 몰라 이들을 질서 없이 데리고 간다.

 

잠과 꿈이 악기 사운드와 멜로디와 가창과 가사라는 또 하나의 틀로 한 번 더 확장되었다. 이준형의 음악을 매개로 잠과 꿈의 세계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건져올리고 느껴보기를 바란다. 잠과 꿈의 수많은 빈칸에 여러 답을 넣어보는 즐거움을 경험하길. A블럭 칸에 H블럭이 들어맞는 재미를 경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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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첫 번째 정규 앨범에 담긴 열두 곡은 ‘잠’이라는 키워드로 관계를 맺는다. 그중 앞부분에 위치한 2번 트랙 ‘Sleep’과 3번 트랙 ‘아침’은 가장 직접적으로 잠에 대해 노래하는 곡이다.

 

두 곡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다 동이 트는 푸른 새벽까지 지켜본 뒤 해가 뜨며 아침이 밝아오고 창밖으로 새 하루를 시작하는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쯤에야 억지로 눈을 감고 잠에 들려고 노력해본 기다란 시간과 경험을 길게 펼친다.

 

불면을 그린 두 곡은 재미있게도 줄곧 잠을 생각한다. ‘this broken night’, 잠들지 못하는 밤의 피로와 고독함, 초조함이 느껴지는 ‘부서진 밤’이 있는가 하면 ‘어디든 날 수 있을 것 같’고 해가 뜨고도 ‘잠에 잡히기 전까지 춤을’ 추겠다고 말하는 태도에는 잠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대목에서 반대로 잠에서 내리지 못하는 한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강성은의 소설집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속 「겨울 이야기」는 다섯 페이지의 아주 짧은 소설이다.

 

인물 L은 P를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하는 L은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다 잠에 들어 버스가 종점에 다다를 때 눈을 뜬다. 다시 반대편으로 출발하는 버스에서 L은 자꾸만 잠에 든다. 싸락눈이 함박눈이 될 때까지, 버스에 탄 오후 6시에서 9시 반, 10시가 될 때까지. “잘 모르겠어. 버스에서 계속 잠이 와.” “버스가 너무 따뜻해서······”

 

잠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물과 잠에 들지 못하는 화자가 동일하게 보이는 건 왜일까. 어느 쪽이든 ‘lonely and infinite world’로 사라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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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허구지만 그 안전한 세계는 때로 가장 잔인하다. 나는 그곳에서 혼자이기도, 타인과 함께이기도 하다. 좋은 꿈을 꾸기도, 나쁜 꿈을 꾸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꿨던 좋은 꿈은, 예전에 대외활동에서 알고 지낸 사람과 유럽에 가는 꿈이었다. 그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꿈을 꾸고 일어나서 나는 ‘그렇지, 나는 그 사람을 어떤 이유로 동경했었지’ 생각했던 사람이다. 꿈속에서도 그 사람은 내가 동경할 만한 말들을 내게 했고, 왜인지 유럽 여행을 함께했다.

 

나쁜 꿈이라 하면, 뭐가 있을까. 내게 악몽이란, 대부분 내가 나에게 붙잡히는 꿈이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놀이공원에서 입장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저 멀리 기다리는 친구를 바라만 보며 30분, 1시간이 되도록 이런저런 이유에 발목이 잡혀 입장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꿈, 보이지 않는 힘에 발이 묶여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인 꿈, 울음에 말이 묶여 무수한 억울함을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는 꿈. 그런 것들이 내가 악몽을 꾸는 방식이다. 공통적인 건 꿈은 모두 허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잔인하다. 거짓이면서도 가장 진실인 무엇이다.

 

그런데 꿈을 꾸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잠과 꿈은 결국 찾아가는 대상이라기보다 불쑥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꾸고 싶은 꿈을 자기 전에 오래 생각하면 정말로 꿀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양을 세듯 잠에 들기 전까지 생각하고서도 나는 내가 꾸고 싶은 꿈을 꾸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반갑지 않은 꿈들, 반갑지 않는 사람들이 꿈에 나온다.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뇌리에 심어둔다.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묵은 상처를 소환해 해결시켜주는 꿈은 오히려 더 아픈 꿈이다.

 

그럼에도, 실현하지 못할 꿈을 왜 자꾸만 꾸게 되는 걸까. 꾸고 싶은 꿈은 어째서 실현하지 못할 것만 같을까. 왜 자꾸 그런 꿈을 꾸게 되는 걸까. 그런 꿈은 왜 자꾸 초라한 현실을 짓누르는 쪽으로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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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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