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늘하지만 치밀하게, 은밀한 비밀 속으로 -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글 입력 2022.10.24 11: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_표1 띠지.jpg

 

 

과연 이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공공연하게 솔직하다는 평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미처 공유하기 어려운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대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비밀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일생을 걸기로 약속한 사이인데, 서로에게 티끌 하나도 숨겨선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은 각자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범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이 꽤 중대한 사안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그 비밀을 꽁꽁 숨기다 끝내 발각되고 말았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문제는 가정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일이, 소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주인공 판옌중에게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판옌중은 이혼의 아픔을 겪은 한 아이의 아버지로, 겉으로 보기엔 잘나가는 변호사이지만 실패한 인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던 한 남성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딸 쑹뤼가 다니던 학원의 선생님, 우신핑이 나타났다. 그녀는 무채색에 가까운 여인으로, 화려함을 쫓던 전 부인에게 완전히 지쳐버린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줄 알았다. 판옌중 또한 다시 찾은 일상을 당연하게 느끼던 차였다. 어느 날, 우신핑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갑작스럽게 모든 연락을 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우신핑이 걱정된 판옌중은 손수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결혼 전, 심지어 결혼 후에도 결코 몰랐던 우신핑의 과거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하고 베일에 싸여있던 진실과 마주한 판옌중은 상상치 못했던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돌아가셨다던 어머니가 버젓이 살아있고 빚에 쫓겨 산다던 오빠는 그녀를 걱정한다.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행방을 자신보다 더 걱정하는 친구가 나타나고 한 달에 한 번씩 병원 진료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직장에 휴가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 결코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그 일.

 

대체 우신핑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진실에 다가갈수록 두려움도 커져가지만, 그렇기에 더 알아야 할 것 같다. 우신핑, 사랑하는 아내의 숨겨진 비밀을.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대만의 소설가, 우샤오러의 미스터리 장편 소설이다. 국가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같은 동양권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읽는 내내 이질감보다 익숙함이 더 컸다. 최근 한국에서도 자주 다뤄지고 있는 주제를 자주 접해본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익숙함에 한몫을 더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 전반의 분위기는 분명 독특했다. 무심하진 않은데도 서늘한 분위기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최근 읽은 대부분의 국내 소설들은 담담하고 담백해서 무심한 느낌이 드는 반면, 그 안에 묻어나는 휴머니즘이 차가운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우샤오러의 문장은 자세하고 심리적인 묘사가 많음에도, 이상하게 차가운 느낌을 자아냈다. 개인적으로 서로 각을 재고 간을 보는 이성적인 심리 싸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만을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서로 각을 재고 간을 보는 그 팽팽한 심리적 긴장감에 내가 휘말리고 만 것이다.

 

펼쳐놓고 보면, 소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속 주요 사건은 차가움과는 거리가 멀다. 사라진 아내를 찾는 일,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일이 어찌 뜨겁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심지어 우신핑을 위한 판옌중의 절절한 마음이 서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서늘함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었던 건,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비밀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물 간의 심리적 긴장감 때문만이 아니다.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액자식 구성 역시 비밀스럽기 그지없었다. 분명 판옌중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뜬금없이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저 독자의 능력껏, 독자가 소설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가에 따라 알아서 추리를 해볼 뿐이다.

 

이미 비밀을 찾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을 미궁에 빠트려두었으면서, 소설은 또 하나의 비밀을 추가해두고 있다. 비밀 속의 비밀이라니, 이리도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디 있단 말인가! 분명 제목은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인데, 이리도 비밀투성이인 소설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이 없는 사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숨겨도 되는 비밀과 숨겨선 안 되는 비밀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우신핑의 비밀을 숨겨선 안 되는 비밀이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녀의 비밀은 그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이 사회가 만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이 사안은 예외이다. 함부로 판단할 수도, 판단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열어둔 채로 남겨두려 한다.

 

당신이 판옌중이라면, 우신핑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녀의 선택을, 비밀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대도, 혹은 없대도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사안은 예외이니까.

 

 

[김규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