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마침내 우리에게 닿은 이야기, 뮤지컬 '브론테'의 성재현 작가

글 입력 2022.10.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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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우리에게 닿은 이야기

뮤지컬 '브론테'의 성재현 작가

 

 

어떤 작가의 삶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길지 않은 생을 살다 간 브론테 자매도 그렇다. 우리 곁에 남은 그들의 글(<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 등)만큼이나 그들 삶의 궤적 역시 한 줄기의 서사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200여 년 전에 완성된 글, 200여 년 전에 끝난 어떤 이의 삶은 '또 어느 곳', 그들과 '닮은 누군가에게' 닿는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19세기 여성 억압적 윤리관이 팽배했던 빅토리아 시대, 브론테가의 세 자매였던 샬럿, 에밀리, 앤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유와 탈주', '욕망과 해방'이 담긴 글을 썼다. 비록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필명으로 책을 내야 했고, 당대에는 소설이 비윤리적이라거나 여자 주인공이 지나치게 독립적이라는 터무니없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삶의 끝자락까지 글에 천착했던 인생과 그렇게 해서 남긴 작품들은 오늘날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야기가 되었다.

 

2022년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브론테>는 브론테 자매의 그 오랜 이야기를 소환한 국내 첫 창작 뮤지컬이다. 2018년 영국에서 초연된 뮤지컬 <웨이스티드(Wasted)>처럼, 브론테 자매의 작품이 아닌 그들의 생애를 다루는 뮤지컬인 것. 뮤지컬 <브론테>의 성재현 작가는 브론테 자매의 작품과 생애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삶을 뮤지컬로 다시 쓰며, 먼 옛날 브론테 자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듯 이야기를 전한다. 자매들의 오랜 이야기의 수신인이자, 뮤지컬 <브론테>의 발신인인 성재현 작가를 만나 그 편지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

이 인터뷰는 뮤지컬 <브론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재현 작가님.jpg

 

 

 

'우린 글쓰기에 미친 인간들'


  

뮤지컬 <브론테>가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며 매진 행렬을 잇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일단 정말 감사합니다. 가끔 공연을 보러 가는데, 커튼콜에서 박수 보내주시고 박수받는 모습을 볼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모두가 정말 아끼면서 사랑으로 만든 작품인데, 진심이 닿은 것 같아서 기뻤어요.

 

 

관객의 입장에서 커튼콜을 봐도 울컥하던데, 작가님께서는 더 그러실 것 같아요.

 

연습하던 중에 PD님께 “이 이야기가 닿을까요?”라고 여쭤봤었는데, 첫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확실히 진심은 닿는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사실 창작 초연은 뼈대만 잘 만들어 놔도 성공일만큼 어렵고 무서운 작업이라, 다 같이 아끼면서 만든 과정이 잘 닿길 바랐거든요. 그 대답을 들은 느낌이라서 기분이 좋았어요.

 

 

브론테 자매의 작품이 극화된 적은 있어도 브론테 자매 자체를 다룬 창작 뮤지컬은 <브론테>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소재가 왜 이제야 뮤지컬화 된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브론테 자매 이야기를 쓰시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브론테 자매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세계 문학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브론테’라는 고유명사가 특별하잖아요. 같은 성을 공유한 3명의 자매이자 작가였던 그 자체가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그들이 겪었던 억압과 어려움들은 현재에도 모습을 바꾼 채로 존재하고 있고 어디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살고자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모습이 현재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해 보자면, 예술가를 다루는 극은 많은데 여성 예술가를 다루는 극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너무 좋은 작품들이 있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거든요. 그들의 삶과 인간 자체를 말하는 극이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브론테들을 만났을 때 “이건 지금 당장 해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죠(웃음).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어떤 커다란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브론테>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어요.

 

 

관객으로서도 반가운 얘기네요. <브론테>를 보고 그런 갈증이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거든요.

 

그래서 연습할 때도 너무 좋았어요. 첫 리딩 끝나고 “뮤지컬 작가가 되길 잘한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였죠(웃음).

 


브론테 자매.jpg
(왼쪽) 브론테 자매 초상화 Wikimedia (오른쪽) 뮤지컬 <브론테> 페어 포스터

 

 

실존 인물을 다룬 뮤지컬인 만큼 실화와 비교하면서 재미를 찾는 관객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방대한 실화 중 뮤지컬에 가져올 내용은 어떻게 판단하셨을까요? 그리고 ‘이건 꼭 작품에서 살려야 한다.’라고 생각하신 실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시간대를 특정하는 게 고민이었어요. 외부의 존재나 사건보다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돼서 (작품을) 끌어가기를 바랐거든요. 황야의 목사관이 자매들의 고립된 성이 되었던 것처럼요. 실제 브론테 자매가 숨을 쉬듯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모습은 꼭 살리고 싶었어요. 낭독회나 합평회 등 그들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서로의 작품을 합평해 주던 문학적 동반자였다는 사실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라는 놀이로 형성되어 온 유대감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매의 이야기를 넘어서 작가들의 이야기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의미에서 ‘언니’라는 호칭 없이 ‘너(You)’ 혹은 이름으로 서로를 지칭하던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자매애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작가로서의 개별 정체성이 더 강조된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초연을 준비하면서 호칭을 확실하게 정리했는데요. 나이 차이에 따른 수직적 관계로 보이기보다는 작가적 동지로서 세 사람의 세계가 대등하게 보여지기를 바랐어요. 

 

 

반대로 작품에 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넣지 못한 실화도 있을까요?

 

삭제된 것 중에 (브론테 자매가) 집안일을 하면서 끝없이 글을 쓰는 부분이 있거든요. 실제로 가사를 돌보는 동시에 계속 글을 썼다는데, 요리하면서 조그만 종이에 글을 쓰다가 감자를 태우기도 하고 그랬대요. 그 모습 자체에서 말해지는 시대상이 있잖아요. 또 자매들이 글쓰기에 미쳐서 (영감이) 떠오르면 옷에다 쓰고 몸에다가도 쓰는 그런 모습을 넣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다음을 기약하게 됐어요. 보이는 모든 곳에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들의 모습도 보여 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브론테>의 샬럿, 에밀리, 앤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지만, 작가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인물들이기도 하잖아요. 각각의 캐릭터성와 이들의 관계성을 어떻게 구체화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각 캐릭터는 역사적 기록과 함께 각각 그들의 소설에서 받았던 인상과 느낌, 문장들을 읽고 얻은 통찰을 많이 반영해서 만들었어요. 세 사람의 관계성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구체화했어요. 서로가 서로의 결핍이자 보완이 되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캐릭터를 움직이는 힘도 다르게 설정했어요. 예를 들면 샬럿의 주된 동력이 심장과도 같은 정서·감정이라면, 앤는 이해와 이성으로 작동하는 머리였고, 에밀리는 가장 먼저 반응하는 본능이었어요. 마치 몸속 장기들처럼 설정한 거죠.

 

그리고 연출님과 배우분들께서는 인물들을 ‘자기만의 열쇠로 푸는 자물쇠’처럼 소중하게 대해 주셨어요. 저조차도 다 발견하지 못했던 활자 속의 캐릭터들을 살아 있도록, 꺼낼 수 있게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브론테] 공연사진.jpg

 

 

 

'내 손을 떠난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여행할까'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장치를 꼽으라면 ‘미래에서 온 편지’일 것 같습니다.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에 이 장치를 가져오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 삶을 나열하기 쉬운데, 그것보다는 변주를 주고 싶었어요. 상상의 폭을 넓혀서 환상적 장치로서 편지를 가져온 거죠. 브론테에 대한 사료로 남아 있는 것 중에 편지가 방대한 양을 차지했고, 당시에는 편지가 주요 소통 수단이기도 했으니까요. 극 초반에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브론테 자매에게 편지를 보낸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끔 중의적으로 기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는 균열과 갈등의 원인이자 사랑이자 위로였던 그 존재는 외부의 누군가가 아닌 그들 스스로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엔딩에서는 그들의 시간도 연결되고, 그들과 현재 우리의 시간도 연결되면서 서로를 위로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장치가 사람들이 미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상으로는 꼬인 느낌인데, 감정적으로는 훅 끌려 들어가는.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곳이 무대잖아요.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연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작품 자체가 작가님이 브론테 자매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했어요.

 

그럴 수도 있어요. 생전에 온전한 평가를 받는 예술가는 드물거든요. 죽고 나서 받는 인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예술가들이 자조적으로 얘기하잖아요. ‘의미 없지 않다.’, ‘우리가 치열하게 뱉어낸 이야기는 어느 미래에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꼭 닿았을 거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술가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에게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거.  

 

그리고 브론테 자매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서 드라마 속에서 슬픔만이 강조되거나, 비극만으로 소모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브론테] 공연사진1.jpg

 

 

그럼 브론테 자매의 실화 말고, 창작에 대한 작가님의 개인적인 고민이 들어간 부분도 있을까요?

 

아무래도 작가 이야기니까 느끼시는 모든 부분에 그런 고민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최대한 그들(브론테 자매)의 말로서 녹아들길 바랐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고 구분되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것 같고요. 글을 쓰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전부 끄집어내려고 노력했고, ‘실화’와 제 ‘독자로서의 자아’와 ‘작가로서의 자아’가 그야말로 지지고 볶고 자진모리장단을 쳤어요(웃음). "미친 말 뒤에 앉아 달렸단 거구나." 같은 소리로 화내다가도, "모든 인간이 천국에 갈 순 없고, 모든 사랑이 숭고한 얼굴을 하지 않아."라고 진심으로 변호하기도 하면서요.

 

 

그럼 작가로서 제일 공감 가는 캐릭터도 따로 있으실까요?

 

세 캐릭터 모두에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요. 샬럿은 뭔가를 좋아하고 잘하기까지 한다면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자기 재능에 대한 믿음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동경했어요. 공감이라기보다는 동경이죠. 앤은 자기 속도나 재능에 대해 솔직한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고민을 계속 안고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들이 현실적으로 와닿았어요. 에밀리의 대사 중에는 “이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여행할까.”라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모든 창작자의 마음일 것 같아요. 작품을 세상에 떠나보내면 더 이상 내 것만이 아니잖아요. 어떤 평가를 받건 간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그런 시도들이 누군가에게 유의미하게 닿길 바라는 마음인 거죠. 

 

 

뮤지컬은 협업 예술인만큼 글을 쓸 때 이렇게 구현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장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넘버 혹은 장면이 있을까요?

 

브론테의 모든 넘버가 그랬어요. 작곡가님 넘버를 듣고 마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닐까 했을 정도였거든요. 작곡가님은 (대본에) 터치도 안 하시고 오히려 가사를 더 넣자고 얘기해 주시는 스타일이셨어요. 특히 예측하지 못했던 건 악기 트레이드 씬이었어요. 자매들의 텍스트가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정점에서 터져 나오는데, 정말 뮤지컬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장면이 되게 놀라웠고 지금도 소름이 돋아요.  

 

연출적으로는 연출님이 연습할 때 그 시대의 명화 사진(그 이후 시대의 명화 사진도 함께)을 공유해 주셨던 게 생각이 나요. 무대를 보니까 그게 연출과 움직임으로 구현돼 있더라고요. 또 마지막에 셋이 추는 왈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앞에 ‘균열’이라는 넘버에서 얘기한 ‘혼자 남아 추는 춤’이 마침내 셋이 다시 만나 추는 왈츠가 됐을 때 정말 감동했어요. 아, 이래서 뮤지컬은 참 멋진 협업이구나 생각했죠.

 

 

연출님이 보여 주신 명화가 무대에 어떤 식으로 구현된 걸까요?

 

커튼콜에서 서 있는 배치, 침대에 앉아 있는 자세, 낭독할 때 조명의 느낌, 흔들리는 커튼 모양이나 색감 등에도 명화가 반영됐어요. 연출님과 안무감독님께서 장면을 디테일하게 그리셨고, 모든 팀원분들도 명화 그리듯이 작업해 주셨어요. 

 

 

 

'넌 내가 아직 꾸지 않은 꿈'

 

일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놀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컬 <더 픽션>이 작가님께 ‘처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는데요. <브론테>는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좀 느려서 그 대답할 때도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작품을 올리고 몇 년 뒤에야 ‘아, 그 작품은 내게 이런 의미였구나’ 생각하게 되거든요. 현재로서 <브론테>는 ‘아직 꾸지 않은 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꿈을 꿔도 된다고, 함께 꿈을 꾸자고 먼 미래로부터 대답을 들은 기분이에요.

 

 

<더 픽션>으로 정식 데뷔하신 이후, <어린왕자> <달과 6펜스> <원더보이> <브론테>까지 꾸준히 뮤지컬 작업을 해 오고 계십니다. 작가님께 뮤지컬은 어떤 의미일까요?

 

더 잘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것? 사실 인터뷰하는 지금도 ‘제 이야기를 사람들이 궁금해하실까?’ 하는 걱정이 커요(웃음). 뮤지컬 작가는 중심을 잡기가 정말 어려운데요. 작품의 가장 처음이자 맨 뒤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작가가 맨 처음에 시작하면서도, 모든 과정의 뒤에 단단히 서 있지 않으면 (작품이) 흔들리거든요. 작가는 창작진들이 최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말랑거리되, 변하지 않도록 단단한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의 말을 가능성으로 여기며 들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명확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믿음을 주는 대본을 쓰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작품에는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작가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실 텐데, 저는 (주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사라지지 않게 애쓰고 있어요.

 

 

뮤지컬 작가는 대본을 쓰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작곡가, 연출 등과 계속 소통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나가야 하니까요. 넘버 작업도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저는 가사 쓰는 게 즐거워서 하고 있어요. 그 작업을 즐기지 않으면 뮤지컬 작가를 못 할 것 같아요(웃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가사한테 양보해야 하거든요. 노래로 표현했을 때 가장 좋을 말의 포인트, 순간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면서도 재밌어요. 그래서 가사 잘 쓰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웃음).

 

 

[브론테] 공연사진3.jpg

 

 

앞으로의 목표 혹은 계획이 있다면 여쭤보고 싶습니다.

 

소박한데, 인간으로서는 건강하고 싶고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낄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돕고, 같이 울어야 할 때 열심히 같이 울어 주고 싶어요.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게 인간으로서 저의 목표예요. 작가로서는 다음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그래도 발전하려고 노력하는구나 하고 믿음을 드리는 작가. 너무 소심한가요?(웃음) 거창한 거 바라지 않아요, 저는.

 

 

마지막으로 작가님께서 과거의 작가님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크게 보이는 것은 사실 아주 작고, 작아 보이는 것은 사실 아주 커다래. 세상에 당연한 건 없더라. 행복에 너무 즐거워하지도, 슬픔에 죽을 것처럼 아파하지도 말자. 안 간다 하셔도 아버지는 꼭 병원에 모시고 가.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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