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에 드러난 소외와 고립의 흔적

영화 미나리 Minari (2020)
글 입력 2022.10.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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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한국 개봉 전부터 물 건너 들려오는 엄청난 수상 소식에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영화다. 사실 <미나리>의 감독 정이삭은 '아이작'이라는 영문 이름이 더 자연스럽게 불리는 이민 2세대 미국인이다. 그래서 줄곧 영화 활동도 미국에서 했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는 이번에야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감독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민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민자와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가 외부인을 향한 사회의 차별을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내거나 제도적 차원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의 모습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르게, <미나리>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영상 회고록의 느낌이 강하다.

 

윤여정 배우가 할머니 '순자' 역할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감독이 자신의 할머니 '순자'에 바치는 영화로 오해할 수 있지만 영화를 감상하면 의외로 할머니에게 전부 포커싱하지 않고 가족 전체를 덤덤한 시선으로 보여주어, 관객의 경험에 따라 공감을 깊이 일으킬 인물이 각각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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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직접적으로 이민자와 외부 사회의 갈등을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낯선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이민자의 내부적 갈등을 자극적이지 않게, 영화가 가족을 묘사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덤덤하게 나타낸다. 따라서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채 장기간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사소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민과 고립 경험이 없다면 영화를 다소 밋밋하고 루즈하게 볼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봤던 고립의 요소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교회'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교회나 성당과 같은 종교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만든다. 이런 커뮤니티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주민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민자들이 타지 생활 중 필요한 여러 도움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화의 초반에도 모니카(한예리)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시골 아칸소에 막 도착한 뒤에 '교회'를 찾는 모습을 보인다. 일 하는 곳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한인 교회에 대해 물어보고 '한인 교회 때문에 시골로 온 한국인들도 많다'는 아주머니의 의미심장한 말에 현지 교회라도 꾸역꾸역 찾아 나가고 마는 것은 고립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이민자들은 현지 사회에서 타인과의 교류를 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의미심장한 말이 암시하듯 해외의 한인 커뮤니티는 이민자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령, 커뮤니티의 규모가 작아 구성원들의 사소한 일 하나도 모든 사람이 공유하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작은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치열한 권력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화에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이민 사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아주머니의 대사 하나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다.

 

주인공 가족은 결국 인근의 현지 교회 (심지어 그것도 셔틀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에 방문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칸소에 도착하자마자 교회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모니카는 현지 교회에 처음 방문한 이후로는 '교회에 가지 말아야겠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이후에는 종교 커뮤니티 참여에 스스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에 방문한 첫날의 풍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교회 첫날 목사는 '이 교회에 처음 방문한 분들은 일어나 주십시오'라고 요구한다. 당연하게도 데이빗 가족만이 일어서고, 목사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입니까' 하며 교인들에게 박수를 유도한다. 이를 단순한 '환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현지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움을 안겨주는 경험이다. 예배가 끝난 뒤 모니카는 현지 교인들과 호의적인 대화를 나누지만 언어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에 금방 대화를 종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할머니 순자는 영화에서 가족의 이야기에 생동감을 주는 존재이다. 아칸소에 도착한 가족은 아직 정착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본다는 이유로 순자가 아칸소에 도착한 이후에야 비로소 가족은 표면적으로나마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일상이 생기고, 식탁은 푸짐해진다. 가족 중에 가장 '한국적인' 할머니가 이주민 가정에 생기를 주는 것이다.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빗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조금 더 독특한 역할을 한다. 데이빗은 한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영어를 한국어보다 더 잘 한다. 그리고 아마도 (감독의 삶을 생각하면 역시나) 앞으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 데이빗에게 순자는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는 방해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에게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고, 친구 앞에서 망신을 주는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순자는 결정적으로 데이빗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데이빗의 짧은 (그렇지만 강렬한) 유년시절 기억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데이빗은 어린 나이에도 가족이 처한 상황 때문에 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하고, 부모님의 이혼을 가정해야 한다. 또한 건강하지 못한 신체 때문에 자신의 생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불안한 데이빗을 순자는 다시 그 '이상한' 방식으로 달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일어난 결정적인 화재 역시 순자의 실수로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일이 잘 풀리려던 바로 그 때 모든 것은 다시 불에 타 버린다. 순자는 절망하며 가족을 벗어나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만 아이들은 끝내 자신의 할머니를 다시 모셔온다. 그 다음에 데이빗과 제이콥은 순자가 심고 제멋대로 잘 자라난, 바로 그 미나리를 캐러 간다. 그리고 제이콥은 풍성한 미나리를 보며 심심한 위로를 얻는다.

 

미나리.


미나리는 영화 중반에서 이미 그 의미가 등장한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풀. 잡초이지만 만인이 먹을 수 있는 좋은 풀. 원더풀. 마지막에 화재로 모두 잃고 새로 시작해야되는 상황에서 아빠와 아들은 미나리를 캐러 간다. 여기서 미나리는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와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다만 스칼렛이 내뱉은 비장한 다짐이라기 보다는, 모든 것을 잃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래도 살아가야지'와 같이 덤덤히 자라나는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회고록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을 때, 모든 것이 다 지난 현재 회상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화재를 나타내는 이야기의 표현은 마치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쩌겠나'라고 말 하는 것과 같다. 그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수용하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민자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낯선 땅에서 무언갈 시도할 때마다 악재는 겹친다. 운이 좋은 이주민은 흔치 않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자다.

 

영화의 주제가 소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작 감독은 영화를 통해 '보편적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미국의 여러 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다. 많은 이들이 데이빗의 가족에서 보편적인 이주민의 얼굴을 본 것이 아닐까. 그래서 타인이 되어 본 사람에겐 깊은 울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한 가족의 이야기다. 한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사당동 더하기 33> 중에서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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