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리조차 없었던 사람들 [영화]

평범할 기회는 평범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글 입력 2022.10.2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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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2020)

홍의정 감독 | 유아인, 유재명 주연


시골 장터에서 계란을 파는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 그들은 투잡을 뛴다. 그들의 또다른 직업은 범죄 조직의 시체처리다. 언제나 그들에게 일을 맡기던 조직의 실장은 어느 날, 유괴한 어린아이를 맡아 달라고 의뢰한다. 탐탁치 않은 일이지만 갑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 하청의 신세. 그렇게 아이를 맡았는데, 아뿔싸. 의뢰자인 실장이 살해당한다. 졸지에 위험한 애물단지를 떠맡은 창복과 태인.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되는 법. 이들은 아이의 몸값을 직접 받아내기로 한다.

 

*

 

범죄영화다. 조폭영화다. 그러나 유혈과 폭력이 난무하는 마초이즘은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직원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고 박카스를 갖다바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조폭의 끄나풀이라기보단 '갑'을 상대하는 중소기업 하청업체 직원 같다. 극중 말단 조직원들이 유괴한 여자아이를 창복과 태인에게 넘기기 위해 통화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만사가 귀찮은 회사원의 허술한(그래서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수인계 그 자체다.
 
"여보세요, 예~ 선생님. 네~ 저희가 방 안에 데려다는 놨는데, 저희가 10분 뒤에 가봐야 해서~ 예~ 열쇠는 문 앞에 화분이 하나 있는데 그 아래 두겠습니다. 네~"
 
하와이안 셔츠에 금목걸이, 왕버클에 배꼽까지 올려입은 흰 바지로 치는 대사가 이렇다. 코미디다. 그것도 아주 잘 짜여진 블랙코미디다. 유쾌함과 불쾌함, 흐뭇함과 쎄함, 웃김과 심각함의 기묘한 밸런스가 일상과 비일상을 뒤섞고 비튼다. 영화는 잔악하고 악랄한 범죄를 평화롭고 수고로운 업무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웃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자꾸 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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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일까. 이 영화를 논하는 여러 글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이 거론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그리 적합한 용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banality of evil'이라는 표현에서 방점은 banality에 찍힌다. 악은 예상보다 시시하다. 별 것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적하고자 한 바는 시시하고 별 것 아닌 그 행위가 바로 악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히만은 근면성실한 군인이었다. 그리고 그 근면성실함이 대량학살을 초래했다. 한나 아렌트는 한마디를 더 얹는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 뿐이다." 한 마디로 남일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평범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행위가 악인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사유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자문하라.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행위는 악인가, 악이 아닌가?
 
하지만 이와 달리 <소리도 없이>는 초장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이건 뺴도박도 못하게 '악'이다. 간신히 숨만 붙은 채 거꾸로 매달린 채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실장의 몸뚱아리는 결코 시시하거나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불쾌상쾌한 블랙코미디 사이로 번득이는 폭력성을 내비침으로써, 주인공 콤비와 관객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이 필요 이상으로 좁혀지지 않게 유도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실장님, 어제 그 아이 문제는 어느 분에게 인수인계가 되셨을까요?"라고 묻는 창복의 태연자약함은 영화를 다시 일상성의 궤도로 돌려놓는다. 영화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간극을 소리도 없이 오간다.
 
요컨대 이 영화는 마치 아이히만처럼 겉보기엔 평범한 인간이 실은 사악한 악인임을 폭로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소리도 없이>는 양파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코미디와 폭력의 교차를 통해 사악한 악인을 평범한 인간처럼 연출한다. 나쁜 놈도 평범할 수 있다. 평범함이 악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악도 평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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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발적인 연출은 '악인'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지평에 데려다 놓는다. '악인'이란 무엇인가. 사악하고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 폭력적인 시스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한 사람? <소리도 없이>는 조금 다른 결의 대답을 제시한다. 악인이란, 평범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이라고.
 
태인은 말도 하지 못하고,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어수선하고 불결하게 산다. 옷가지와 이불더미 속에 파묻혀 자는 동생 문주의 꼬질꼬질한 모습은, 태인의 유년시절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란 사실을 예감하게 한다.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비도덕적인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태인에게, 악이란 탈선이 아니라 관성이다.
 
유괴된 초희가 태인의 집에 살게 되면서 태인과 문주의 삶은 변화한다. 전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집에서 깨끗하고 말끔한 옷을 입은 문주의 발랄한 모습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초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느 새 평범한 시골청년 같아 보이는 태인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태인에게도 평범할 기회가 있다면 어땠을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거꾸로 초희에게도 적용된다. 초희에게 평범할 기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태인의 집을 찾아온 경찰이 태인과의 몸싸움 끝에 돌에 머리를 찍혀 쓰러지자, 말없이 삽을 들고 오는 초희의 모습은 그러한 가능성의 섬뜩한 미래를 점치게 한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태인은 초희를 원래 살던 곳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도착한 초희의 학교에서, 담임교사를 만난 초희는 태인의 손을 뿌리치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초희의 말을 들은 담임교사는 태인을 향해 유괴범이라 소리치고 태인은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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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를 데려다 줄 때 태인이 입은 옷은 그가 증오하면서도 동경하던 실장의 양복이다. 나름대로 격식을 차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짠하고 어수룩한 예의에도 불구하고, 태인의 옷차림의 초희를 데려다 주는 그 순간에도 그가 악에 대한 지향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그간의 입체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 태인이 '유괴범'이라 일축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태인을 향해 보내던 연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영화는 태인에게 손쉽게 면죄부를 쥐어주지 않는다. 그는 비극적인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유괴범'이다. 악이다. 그는 이미 선로에 올라탄 열차다. 그가 지나온 레일에는 수많은 이들의 피가 뿌려져 있다. <소리도 없이>는 그 지점을 예리하고 분명하게 짚는다. 그래서 영화는 태인의 선처를 호소하는 대신 비극을 배태한 사회를 암묵적으로 겨냥한다.

 

평범할 기회는 평범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삼시세끼를 챙겨 먹고,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가끔 사치를 부리고, 타인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급여를 저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그 모든 일들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중산층으로의 진입 혹은 세습을 위한 노력은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바람직하게 여겨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먹고 쉬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교묘하게 감춰져 왔다. 우리가 평범하게 영유해 온 시스템이 그들을 쥐구멍 속으로 떠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태인의 악은 바로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소리도 없이.

 

 

 

 

[유인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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