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소 불편한 식사 - 끼니 [도서]

유두진, 《끼니》, 파지트, 2022.
글 입력 2022.10.1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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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를 처음 펼쳤을 때, 작가의 말에 적힌 아래의 질문을 읽고는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음식을 드셨을 때 가장 맛있었나요? 

- 잘 안 떠오르신다고요? 거창하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 답이 안 나왔나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맛있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독자님은 충분히 행복하셨을 테니까요. (pp.5~7)

 

특히 ‘어떤’ 음식이냐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오랜 기간 동안의 재택근무로 불규칙이 관성으로 자리 잡은 생활을 이어가면서, 나는 점점 밥을 챙겨 먹을 때 주로 맛보다는 식사 시간에서 오는 해방감을 만끽하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다. 압박감에 시달려 이제는 일부러 무언가를 챙겨 먹는 강박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와’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그토록 무미건조했던 식사에 대한 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내게 식사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비로소 감각이 살아 있고 감상이 묻어나는 총체적인 경험이 된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머금는 순간 절로 나오는 콧소리는 맛이 배가 되는 조미료다. 함께 먹는 사람과 ‘이거다!’ 하는 시선을 교환하고, 성공적인 식사를 축하하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실컷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끼니’에 대한 이야기가 맛있게 익어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 모두가 만날 새도 없이 점점 바빠지는 시기에 돌입해 밥 먹을 시간 맞추는 것조차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에 허기가 져 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더욱 “그저 밥을 먹다 생긴 에피소드들과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에 대한 책”이라는 맛깔나는 책 소개에 이 책을 읽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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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격적으로 읽게 된 본편에서는 경쾌하던 도입부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었다. 주로 한껏 기대한 식사에서 목격한 비위생적인 순간들, 예상치 못하게 진상을 만나 떨떠름해진 순간들, 식사를 같이하는 사람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던 경험들에 대한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작가의 감상들이 주를 이뤘다.

 

소개에 적힌 대로 확실히 《끼니》는 음식을 향한 세레나데도, 요리 비법이 담긴 요리책도 아니다. 음식 이야기이지만 맛집을 소개하는 책도 아니었다. 그러나 음식 맛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 책이라는 소개는 조금 의아하다.

 

책에서 작가는 가감 없이 자신의 소신을 내비치며, 음식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평가적 어조의 서술을 일관하고 있다. 물론 부당한 상황에서 마땅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가끔씩 자신의 신조와 어긋나거나 자신이 행한 일에 보상이 따라와 주지 않았다고 일순 괘씸하고 얄밉다는 감정을 내비치며 시시콜콜한 복수극을 꾀하는 대목에서는 작가를 마냥 두둔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일부 일화에는 앞서 떨떠름해진 순간들을 묘사한 것과 모순되게, 어떨 땐 작가 본인이 무리한 요구를 밀고 나갔던 경험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이 생각한 그림으로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시원섭섭함을 느끼며 아쉬웠던 일화 정도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조금 당혹스러운 인상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한순간 마주한 안쓰러운 사람들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취하고 교훈을 얻기도 하는데, 섣부르게 당사자의 나머지 삶을 상상하며 동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태도일지 비판적으로 읽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47편의 이야기에 대해, 출판사 서평에서는 작가가 《끼니》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음식보다는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 일련의 이야기들 속에서 작가는 삶의 의미와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포착해 냈다고 말한다. 나는 어쩌면 작가가 포착해낸 그것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둘러대는 우리네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표지에 적힌 ‘별난’이라는 말이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의 뉘앙스에 조금 더 가깝게 읽힌다.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삶에서 종종 자연발생하곤 하는 억울한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마냥 밝은 《끼니》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예상과는 다른 맛의 다소 불편한 식사를 겪은 것일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사실은 이것이 진정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것만은 틀림없이 존재하는 사실일 것이다.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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