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 [공연]

글 입력 2022.10.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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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친구와 함께 학교에 남아 밤을 새워 각자의 작업을 하게 되었다. 몇 시간 동안의 집중력의 고갈과 함께 조금만 움직여도 찌릿해져오는 허리에 우린 야심한 시각, 새벽 4시에 함께 산책을 나가기 했다.


산속에 있는 학교를 항상 욕하면서 다녔는데 이렇게 야작 중에 밤 산책할 때만큼은 그 마음이 한껏 사그라든다. 고요한 정적과 희미한 가로등 빛 그리고 무성한 풀 내음 스멀거리는 산속 산책길은 옹졸해진 뇌를 리프레시하기 정말 탁월하다.


거기에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에 뜬 무성한 별들에 그날의 밤길은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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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무성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본 적은 어릴 때 시골에 내려가서 밖에 없으니 앞으로 때마다 꺼내서 돌아볼 귀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무심한 일상 속, 낭만을 가져다준 밤하늘의 별이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오늘은 이러한 낭만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매일 같이 하늘과 달과 별 그리고 우주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한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시데레우스>.


<시데레우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저술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라는 책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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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가 케플러에게 보낸 편지. 1597년 8월 4일에 쓰여졌다.
 

  

그는 많은 천문학자들에게 《우주구조의 신비》를 보내 의견을 구했다. 마구잡이로 여러 곳으로 발송한 책들 중 두 권이 어찌어찌해서 이름 없는 수학 선생의 손에 들어갔다. 그 선생은 케플러에게 "나도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지만, 물리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직 논리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없다."라는 답장을 보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출처ㅣ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 장의 편지로 시작된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별의 소식'은 수학자였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기분 좋은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극을 볼 때 이 만남은 새로 채운 픽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몽글한 서사가 완성되는 기분이다.)

 

 

[ synopsis ]

 

수녀 마리아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방에 숨겨둔 편지들을 불태워 줄 것을 당부하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모든 발신인은 케플러라는 낯선 이름이다.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 믿고 있는 1598년, 수학자이자 이탈리아의 대학교수인 갈릴레오는 독일의 수학자 케플러에게 '우주의 신비'라는 책과 함께 우주에 대한 연구를 제안 받는다.

 

갈릴레오는 단번에 거절하지만 끈질긴 케플러의 설득 끝에 그의 가설이 틀린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하던 중 언급 조차 금기시 되던 지동설을 대입한다면 이 황당한 가설이 맞을 수도 있다는 답을 내리게 되는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뮤지컬 <시데레우스>를 n차 관람을 하게 되면서 다시 보고픈 마음이 들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계속 보고 싶도록 만드는 이 극의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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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매우 딥한 '파멸극'이 많은 대학로 극에서 <시데레우스>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천문학, 우주, 교황청, 성서 등의 다소 어려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어둡지 않게 가져가면서 흐름에 대한 강약 조절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상상을 보여주며 진리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케플러

그의 상상을 가치있게 증명해내 지적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갈릴레오

아버지와 성서 사이에서의 양면적인 마음을 뒤로한채 객관성을 유지하는 마리아


세 사람 각각에 깔려있는 스토리와 사건과 시간은 거듭하며 쌓이는 그들의 서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과 상상을 노랫말과 신비로운 영상으로 대체하면서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의 군더더기를 없애 극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끊김 없이 느낄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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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 주식회사 랑

 

 

또한 극의 주 축을 이루는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공간을 무대의 양옆으로 각각 분리함으로써 동선과 동작을 최소화했으며 서로 상반된 공간에 있던 그들이 갈수록 서로에게 융화되어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관계성을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데,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서로 섞여져 가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관객들이 볼 수 있게 하여 공연의 여정을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의 상상이 섞이기 시작할 때와 완전히 섞였을 때 떠오르는 조명들은 무대 쪽뿐만이 아니라 객석 쪽으로도 쏟아지는데, 케플러의 상상을 함께할 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극에 대한 몰입도를 한껏 높여주었다.

 

극과 관객 간의 인터렉션이 적극적으로 진행된 부분으로 소극장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오직 <시데레우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수 벅참이라 재관람에 대한 욕구가 북돋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



극에서 케플러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답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답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중략)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현상이 단편적으로만 서술되어 있는 이 성서와 다를 때 우리가 의심해 봐야 할 것은 성서입니까 아님 자연현상입니까"

 

- 뮤지컬 <시데레우스> 중 갈릴레오의 대사

 


'진리는 영원한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케플러의 생각이 가장 잘 담긴 대사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장은 케플러가 아닌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을 진행하면서 자신과 연구를 지키기 위해 한 말이다.


초반 케플러의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가설들을 부정하기만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목표가 케플러와 같아졌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어떠한 진리에 대해 다른 생각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된 후 꺼내진 그의 말이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갈릴레오의 간절함이 잘 느껴지는 말이였다.

 

또한 '신'이 절대적이었던 시절, '천동설'에 반하는 '지동설'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종교 재판을 받고 지동설에 대한 연구 및 언급 금지의 내용이 담긴 서약을 한 후에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갈릴레오의 선택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흔히 보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소신을 이루는 그러한 전투적이고 미련한 모습이 아닌, 다소 비굴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가장 현실적이고도 현명한 선택을 한 갈릴레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극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한 덕분에 적당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케플러에게 '더 멀리 보자'라고 말했던 갈릴레오답게, 현실을 살아 그 사실을 널리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과 모두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자신의 꿈을 뒤로한 선택을 한 그의 모습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런 의미에서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시데레우스'는 별을 조사하고 진실을 찾아 어떠한 것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 직접 본 것에 대한 기록과 단지 그것을 전하고자 했던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갈릴레오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 준 단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할 수 있지? 그러엄~!


 

출처) 더뮤지컬.jpg
출처 l 더 뮤지컬

 

 

변화를 두려워하던 이가 자신 그리고 세계의 진리를 틀어 '익숙한 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와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다시 생각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과 함께

 

항상 그 너머를 상상하고 가치를 증명해낸 이들의 낭만을 함께 할 수 있는 극이다.


당신의 일상이 무심하다면, 그들의 상상과 별의 잔상을 보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 뮤지컬 <시데레우스>의 대표 넘버 ⌈살아나⌋는 케플러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별들의 설레임이 가득 느껴지는 넘버이다. 무대 너머로 광활하게 쏟아지는 조명 느껴볼 수 있으니 캄캄한 방안, 침대에 누워 감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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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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