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했을 휴양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사람 [여행]

글 입력 2022.10.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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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짧은 연휴 동안 부모님이 계신 경상남도 하동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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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은 ‘여행’보다는 ‘휴양’에 더 가까웠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구경하기보다 엄마의 집밥을 얻어먹으며 하릴없이 빈둥거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준비하는 태도와 휴양을 준비하는 태도는 꽤 다르다. 여행은 가기 몇 달 전부터 사전 조사를 하고 계획도 철저히 세우지만, 휴양은 아무런 긴장감 없이 계획을 세우는 일마저도 자꾸 미루게 된다.


이번에 하동으로 내려가는 것도 그러했다. 바쁜 업무로 인해 내려가는 날짜를 마음대로 바꾸었고, 교통편도 게으름을 피우다 늦게 예약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일정은 2박 3일에서 1박 2일로 변경되었고, 마땅한 교통편은 이미 매진되어서 내려갈 때는 값비싼 비행기를, 올라올 때는 느린 무궁화호를 예약했다.

 

누가 봐도 완벽한 휴양 계획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곁에서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음에 의의를 두며 하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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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으로 내려가는 날은 비가 왔다. 아무리 부담 없는 휴양이라도 날씨가 맑으면 좋았겠다만, 며칠 꼬박 준비했을 여행만큼 아쉽지는 않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하고, 기사님은 웃으면서 버스에 올라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중충한 날씨여서 그런지 해사한 인사말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나 또한 가라앉은 목소리를 다듬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버스는 빈자리로 가득했고, 라디오도 틀지 않아 버스 안은 조용했다. 대화를 나누면 우리들의 목소리만 두드러질 것 같아 각자 말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들린 것은 가야금 연주곡이었다. 드디어 기사님이 적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노랫소리가 줄어들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버스의 도착지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었다. 그뿐 아니라 외국인 승객들을 위한 영어 버전도 방송되었다. 유창한 영어 발음은 아니지만 모든 승객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또박또박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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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떠올려 보니 버스를 탈 때 승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버스 기사님의 목소리였다. 버스들은 대체로 이번 목적지와 다음 목적지만 알리는 녹음된 기계음을 사용하는데, 이 버스만은 기사님이 직접 녹음한 음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체 제작 안내 방송을 하는 버스는 처음 타봐서 언니와 나는 눈이 동그래진 채 서로를 쳐다봤다. 신기하다는 말을 입 모양으로 주고받는데, 이어서 또 새로운 노래가 시작되었다.


마치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에서 들릴 법한 아름답고 낭만적인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과장을 조금 섞어 순식간에 삭막하고 어두웠던 버스가 동화 속 세상처럼 느껴졌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노랫소리가 잦아들고 기사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해달라는 말과 함께 '매일같이 출근하는 여러분들이 진정한 애국자'라며 직장인들을 향한 응원의 말도 덧붙였다.


메시지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상투적인 말들이 아니라 승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을 담은 말들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 수 없겠지만, 이 버스를 타는 승객 여러분들만큼은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신기한 마음과 감동적인 마음이 뒤섞였다.

 

고요했던 버스 안이 기사님이 직접 준비한 녹음 방송으로 가득 찼다. 기사님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졌고, 정성을 다해 준비했을 메시지에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바쁜 업무로 인해 여정도 번거롭게 느껴질 무렵 기사님은 그 시간마저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훈훈해진 마음을 안고 하동에 도착하면 부모님께도 이 따스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리. 지루함이 기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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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손님을 태우고 손님을 내려놓으며 매일과 같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이별이라는 정해진 결말에 마음을 나누는 일 따위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며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버스 기사님은 허무한 결말을 잘 알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일을 서슴지 않았고, 전해 받은 마음의 크기와 성질은 이별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마음은 더 커지고 따뜻해져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세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씩 변화하지 않을까. 마치 손수건 돌리기 게임처럼 누군가의 등에 살포시 놓은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말이다. 버스 기사님은 알까. 당신이 전한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전한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무사히 전달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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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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