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그림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 - '기울어진 미술관' 이유리 작가

글 입력 2022.09.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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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림이 가진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출 수도, 화법을 중점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유리 작가는 그림에서 사회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내며 그림을 매개로 당대 사회를 돌아보고 우리가 사는 사회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전작인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에서 남성 중심 미술사에 가려진 여성들을 주목했던 그가 2년 만에 신간 『기울어진 미술관』을 내며 더 확장된 이야기로 돌아왔다. 제목처럼 ‘기울어진 판’에서 여러 권력 관계를 읽어내고 다양한 소수자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유리 작가가 소개하는 그림은 과거에 박제되어 있지 않고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까지 환기한다. 흑인,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동물 등 그림 속에서 그저 타자로 다뤄지던 수많은 ‘마이너’들이 목소리를 갖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기울어진 미술관』을 출간하고 한창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 책을 두고 “작가로서 한 단락을 완성한 책”이라 말했다. 그만큼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의 총체인 셈이다. 그러나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앞으로도 그림에 대해 할 얘기가 많고, 벌써 새로운 책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저런히 공부하며 새로운 그림 이야기를 찾아내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리 작가를 지난 9월 23일 만났다.

 

 

 

“『기울어진 미술관』은 작가로서 한 단락을 완성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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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내셨지만, 새로운 책을 내실 때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출간하신 소감도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한 단락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첫 책인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역시 예술로 우리가 사는 사회의 단면을 읽어내는 시도였는데, 지금 보면 제가 어렸고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죠. 그때부터 생각을 꾸준히 발전시켜 『기울어진 미술관』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이제 할 만큼 했다 싶고, 만족스럽습니다.

 

 

이번 책은 어떻게 보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의 확장판 또는 후속편인 듯해요.


네, 맞아요.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이 여성의 이야기였다면 『기울어진 미술관은』 그 외연을 살짝 넓혀나가는 이야기예요. 소수자가 여성만 있는 건 아니기도 하고, 한 사람에게 여러 소수자성이 겹쳐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장애인, 어린이, 성소수자, 동물 등 다양한 소수자의 눈으로 봤을 때만 보이는, 주류의 시선이 놓친 것들을 찾아내서 한번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가 보통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주가 되는 데 비해 이 책에는 우리가 뉴스에서 마주치는 사회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개성이 강하다, 인문학 서적에 가까운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곤 해요.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는데, 사실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제가 원해서 진심으로 쓴 책이기에 자부심이 있고, 좋은 책을 냈다는 기분이 들어 충만합니다. 제가 원하지 않으면서 유행을 따라간다고 일부러 말랑한 느낌으로 책을 썼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면 자괴감이 생겼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방대한 참고문헌과 인용에 놀라기도 했어요.


되게 힘들었어요. (웃음) 원고를 쓰는 동안에는 다른 데 관심을 못 가지고 책만 읽었을 정도로. 물론 다 관심 분야고,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즐겁기도 했어요. 원고를 쓸 때마다 공부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KBS에 갔는데 거기 진행자분이 제가 낸 책들을 언급하며 세상을 바꿨으면서 화가의 출세작이고 동시에 『기울어진 미술관』에도 언급된 화가가 있느냐고 질문을 주셨어요. 생각해보니 없더라고요. 의식한 건 아닌데 새 책을 쓸 때마다 매번 새로운 걸 찾으며 중복을 피해 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글을 쓰실 때는 그림 선정을 먼저 하시나요, 주제 선정을 먼저 하시나요? 원고를 쓰시는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뭘 먼저 할지 의식하며 쓰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일종의 창고처럼 쓰는 비공개 블로그가 있는데, 생각날 때마다 거기에 그림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포인트, 사회에 대한 제 관심사, 역사와 관련된 내용 등을 스크랩해둬요. 글을 쓰려 하면 그것들이 떠올라서 서로 연결돼요. 샤워하다가, 요리하다가 갑자기 ‘팟!’ 하면서, '이 그림을 이런 얘기와 연결해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어떤 그림이 불편하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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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회, 피에트로 롱기, 1751년경, 캔버스에 유채,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예술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저는 고갱이 타히티에서 어린 여자들을 현지처로 뒀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그의 그림이 예전처럼 안 보이더라고요.


논쟁적인 부분이라 섣불리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너무 칼같이 분리하려는 건 만용 같아요. 위험하기도 하고요. 오히려 예술가의 이런저런 부분을 알게 되면서 작품을 다면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작품을 판단하는 새로운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말씀하신 고갱 얘기처럼, 작가를 알고 나서 그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과 모른 채 보는 건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해요.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또 다른 채널이 생기는 거죠.

 

 

책을 쓰기 위해 공부하시다가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인상이 크게 바뀌기도 하시나요?


글쎄요, 옛날부터 피카소나 고갱의 그림은 별로 안 좋아했어요. 무슨 촉이 있는지. (웃음) 그리고 저는 예전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화가, 익숙한 그림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발굴해보고 싶었어요. 세상은 넓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많으니까요. 처음 책을 쓸 때부터 지금까지 그 태도는 계속 유지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인상이 바뀌기보다는 새롭게 좋아하는 작품이 계속 생기는 듯해요.

 

 

책에서 소개하신 그림 중 작가님께 가장 의미가 큰 건 어떤 그림일까요?


PART. 4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 중에 동물권과 관련된 챕터의 그림들이요.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회’와 ‘푸줏간’이라는 작품을 소개했는데요, 해당 챕터를 쓰기 위해 공부하다가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었어요. 공장식 축산업의 여러 부작용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계속 실천을 미루고 있었거든요. 책을 쓰기 위해 다양한 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니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먹고 1년 넘게 실천 중입니다.

 

 

저도 그 챕터가 인상적이었어요. 몇몇 그림은 충격적이기도 했고요.


맞아요. 책을 읽다 보면 불편한 그림들도 있죠. 어떤 그림이 불편할 때는 화살을 자기한테 돌려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특정 이슈가 담긴 작품이 불편하다면, 자기 자신이 그 이슈에서 ‘갑’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저도 앞서 말씀드린 그림을 보며 인간과 동물의 구도에서는 제가 갑이기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남성이 페미니즘 메시지가 드러나는 작품이 불편하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그림은 우리가 어떤 사안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봐요.

 


혹시 직접 그림도 그리시나요? 글쓰기 외에 그림과 관련된 다른 활동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초중고를 거치며 글 잘 쓴다는 얘기는 자주 들어도 그림 잘 그린단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웃음) 그림 사랑을 꼭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충족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으니, 제 그림 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정말 잘 찾은 거죠. 제가 사학과 전공인데 미술사와 연결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할 때도 있으니 전공과도 아주 크게 벗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른 인터뷰에서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그림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전공자가 아닌 많은 분들이 미술관에 가서 어떻게 관람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작가님의 팁이 있을까요?


저도 주변에서 그림 볼 줄 모르고 그림을 어떻게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오히려 뭔가를 알고 공부해 가면 그 아는 테두리 안에서만 그림을 보게 돼요. 자기만의 시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는 걸 확인하는 수준밖에 안 되는 거죠. 잘 모르더라도 진솔하게 그림을 보면서 자신만의 그림 보는 스타일을 기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책에도 언급했지만 15세기 그림을 모아둔 전시관에 가면 그림이 다 비슷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성모마리아나 성인, 예수 그림이 있는 걸 보면서 작가는 다른데 왜 다 비슷한 주제일까, 무엇이 이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그리게 했을까 혼자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대적 배경까지 생각하게 되고 이 그림이 나오기까지의 세계관도 탐구하게 돼요.

 

 

 

“사회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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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그림의 어떤 점에 매료되셔서 이렇게 긴 시간 그림에 대한 책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옷장을 열면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설정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림이 제게는 하나의 '마법의 옷장'이었던 것 같아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해주는, 다른 이야기로 가득한 공간이요. 저만의 마법의 옷장을 열고 열심히 탐구했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저만의 그림을 보는 시각이 생겼고, 그걸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책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 첫 책은 어떻게 쓰시게 된 건지 궁금해요.

 

첫 책은 제 남편과 함께 쓴 책이에요. 남편은 음악에 조예가 깊고, 저는 미술에 관심이 깊으니 서로 자유롭게 음악과 미술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었죠. 당시 신인을 우대하는 출판 지원사업이 있었는데, 거기 지원해서 운이 좋게도 선정이 되었어요. 또 감사하게도 그 첫 책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 동력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요. 지금 전업작가로 활동하는 게 제 실력만으로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책도 잘 안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 늘 겸허해져요.

 

 

단순한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이렇게 사회문제와 연관 지어 글을 쓰시다 보면 두려워지는 순간이 찾아오지는 않나요?


저는 그래서 권위자의 권위에 많이 기대요. (웃음) 참고자료를 많이 읽으려 노력하고요. 글을 내놓는 것 자체에서 오는 두려움은 이제 많이 상쇄됐어요. 악플은 안 보면 그만이고, 논쟁적인 글을 쓰면 늘 따라붙기 마련인 날벌레 같은 거라 생각해요. 제가 더 두려운 건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에요. 그저 그런 글을 쓰게 되면 어쩌지, 타성에 젖은 글만 쓰면 어쩌지 하면서요. 그러다가 슬럼프가 온 적도 있어요.

 

 

슬럼프에 대해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전작인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원고를 한겨레에 연재할 때였는데, 그때 마침 한겨레에서 제 글을 잘 봐주셔서 지면 한 면이 통째로 주어진 거예요. 다들 기대를 하시는데 저는 너무 불안했어요. 더 이상 글을 쓰며 내적으로 탄력이 안 붙는 느낌이어서 그만둬야겠다 싶었죠.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늘 우연히 떠오르는 어떤 연결 지점을 기반으로 글을 쓰는 편이라 그 우연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글을 못 쓸 것 같아서 불안하고 힘들었죠.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던 게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편집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지금껏 글을 써 왔던 건 작가님의 운이나 우연이 아니고 작가님만의 감각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좀 용기를 얻었어요. 그 고유의 감각은 제 자산이 맞으니까요. 또 원고를 쓰다가 베르트 모리조라는 프랑스 여성 작가를 알게 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어요. 이 사람도 자기만의 성취가 분명함에도 자신감이 떨어지는 화가였거든요. 심지어 스스로를 화가라고 한 적도 없고 자기 작업물을 막 버리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그걸 ‘가면 증후군’으로 보더라고요. 자신이 유능해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지 실은 무능하다는 불안감에 떠는 증상으로, 주로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해요. 돌아보니 제 슬럼프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슬럼프도 잘 지나오셨으니, 계속 글을 쓰시겠죠? 이번 책으로 한 단락이 마무리된 것 같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그림으로 더 쓰고픈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와 단기 프로젝트가 있어요. 단기 프로젝트는 지금 계약하고 쓰고 있는 책으로, 출산 후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을 위한 그림 에세이에요. 장기 프로젝트는 동양 미술과 우리의 옛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거에요. 학창시절 주로 봤던 그림은 서양화라서 우리는 서양화에 더 익숙하잖아요. 동양화에 대해 좀 더 젊은 시각으로, 대중적으로 풀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기울어진 미술관』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기울어진 판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놓으면 기울어진 쪽으로 차가 굴러가잖아요.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중립 기어를 박지 않았어요. 정말 완벽하게 사회적 을들의 편에 서서 쓴 글이에요. 지금까지 사회적 을들은 블러 처리가 되어 있어 잘 가시화되지 않았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들의 존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올 수 있었으면, 이 책이 우리가 사회를 볼 때 해상도를 높여주는 매개체가 된다면 작가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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