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 고흐 편지의 수신인이 되는 법 -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도서]

반 고흐의 작품은 그의 편지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글 입력 2022.09.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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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작품은 그의 편지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학창 시절, 나는 시 수업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시어는 어떻고 이 시상은 저렇고 하는 말들이 와닿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라는데, 실제로 작가가 의도한 게 맞는지, 작가가 직접 그렇게 말한 건지 괜히 심술이 났었다. 실제로 어느 시인이 '수능에 내 시가 출제 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고 인터뷰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으니까.

 

이 못된 심보는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도슨트를 들으면 ‘당신이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라는 못된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아마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작품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주제에...)

 

그런 의미에서 반 고흐는 명쾌한 화가다. 생전 주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다 들어있다. 그의 삶, 생각, 고난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전부 적혀있다. 의심할 필요가 없이 전부 그의 의도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고흐는 생전 그림을 잘 팔지도 못하던 화가였는데, 하필 편지를 많이 적었고, 하필 그 편지의 대부분이 잘 보관되어서, 죽은 후 유명해졌지만, 사람들이 그의 편지를 보고 작품을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신비롭다.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바로 이런 점이 잘 활용된 책이다. 반 고흐가 생전 보냈던 편지와 객관적인 그의 상황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또 편지와 함께 동봉한 그림까지 첨부하여, 반 고흐의 생애를 읽어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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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편지로만 이루어진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앞뒤 상황 설명이 없어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책이 친절하게 다가왔다.

 

SBS의 시사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본 적 있는가? 하나의 사건을 얘기하기 위해 패널들의 설명과 실제 주인공들의 인터뷰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 몰입력이 높은 프로그램인데, 책을 읽는 동안 책의 구성이 이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챕터의 시작마다 저자가 해당 시기 반 고흐의 상황을 설명한다. 경제 상황, 화가로서의 상황, 인간관계 등 한 장에서 두 장 정도의 객관적인 정보를 제시한다. 그 후로 고흐의 편지로 쭉 구성되어 있다. 이 흐름 덕분에 반 고흐가 해당 편지를 썼던 상황, 특정 그림을 그렸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반 고흐는 편지에 늘 그리고 있는 작품을 작게 스케치하여 보냈는데, 해당 작품과 그 스케치가 편지와 함께 첨부되어 있어 편지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다.

 

예를 들어 고흐가 편지에서

 

집 앞에 있는 공원도 세 점 그렸네. 이건 그 중 하나라네.

 

라고 적었다면 고흐가 그린 '세 점의 공원'과, ‘이건’에 해당하는 그림을 번호로 표기하여 바로 찾아볼 수 있게 해두었다. 이 구성 덕분에 독자는 편지의 수신인에 가까워질 수 있다. 어디선가 본 적만 있는 그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그 흐름을 캐치하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마치 집 앞 우편함에서 고흐의 편지를 꺼내온 듯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고흐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문장과 그림을 번갈아 가며 오랜 시간 페이지에 머물러 있게 되는데, 이는 작은 미술관에 온 기분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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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이 있다면 편지 전문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앞장에 ‘이 책에 실린 고흐의 편지 내용 중 중략된 부분은 원서의 형식을 따라 말줄임표로 표시하였다.’고 적혀있는 걸로 보아 원서를 따른 듯 보이지만, 말줄임표로 인해 오히려 그 중략된 부분이 궁금하고 아쉽다.

 

물론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가 주목한 고흐의 생애를 설명하기에는 수록된 부분만으로 충분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고흐가 궁금해지기 때문에 전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든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고흐의 편지’만 실렸다는 점이다. 고흐의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편지의 쌍방향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예를 들어 고흐가 동료 고갱과 싸우고 난 후의 편지에서 ‘편지 고맙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있는데, 여기서 고흐가 말하는 고갱의 편지는 따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둘의 싸움을 고갱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 저자의 설명이나 고흐의 편지 속 내용으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으나 고갱의 목소리로 듣지 못한 점은 역시나 조금 아쉽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친절한 책이다. 독자가 고흐를 알아가는 데에 최적의 길을 제시한다. 독자들이 그저 고흐 편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닌 '수신'하도록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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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라는 화가를 알면 알수록, ‘귀 자른 화가’, ‘가난하게 살다 자살한 화가’ 정도로만 알려지긴 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그의 생애는 치열했고 아름다웠으며, 반 고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다양한 면을 알고 싶다면, 130년 전 유럽대륙을 오가던 편지 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다면,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며 그의 수신인이 되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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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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