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정감이 느껴지는 TRPP의 두 번째 도약, Here To Stay [음악]

글 입력 2022.09.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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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밴드 TRPP가 정규 2집 [Here To Stay]로 돌아왔다.

 

TRPP는 인디 음악 씬에서 유명한 것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꽤나 인기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결성한 밴드다. 싱글곡 Pause를 깜짝 발매하며 데뷔하고, 2021년 셀프 타이틀 앨범 [TRPP]를 발매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정규 2집 [Here To Stay]를 발매하면서 돌아왔다. 작년의 앨범이 참신한 시작 단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면, 본작은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신경을 썼다는 점이 돋보인다.


셀프 타이틀 앨범 [TRPP]가 여름밤의 정서와 어울린다면, [Here To Stay]는 겨울밤에 가까운 앨범이다. 가볍고 경쾌한 사운드가 묻어나는 전작에 비해, 본작은 일관된 구성과 톤으로 정석적인 슈게이징을 구현하고 있다.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를 정형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색이 진하게 나타난다.

 

슬로다이브 (Slowdive)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절묘하게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Here To Stay]는 슈게이징의 질감이 직접적으로 청각에 닿는 즐거움이 선명하던 전작과는 조금 다르다.

 

본작은 정교한 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귀의 피로감을 덜면서 노스탤지어한 감성을 확대하고, 앨범 자체의 완성도에 신경을 쓴 듯하다. 동일한 연주와 멜로디가 반복되는 단순한 개별 트랙 구성을 통해, 슈게이징 스타일의 연주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히려 밋밋하고 단조로운 구성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둔탁하고 파괴적인 연주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장르에 충실하고자 정형화된 기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TRPP의 자세이자 안그래도 열악한 슈게이징씬에서의 진귀한 도전이기에, '정통 슈게이징을 구현하는 앨범' 제작에 힘썼다는 점이 눈길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첫 곡 "Here To Stay"부터 노이즈로 점철되었으나 어딘가 나른한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Play"는 반복적인 악기 연주에 몽환적인 이펙터 효과음으로 슈게이징만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사운드를 쌓아올린다. 빠른 템포로 진행하는 "Clue"와 "Dodgy"같은 곡들은 앨범의 속도감을 높인다. 에너제틱하고 질주하는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곡이 전자에 배치되었다면, 아련한 사운드로 향수를 자극하는 곡은 후자에 배치되어 있다.

 

연주의 절정을 찍는 곡은 명상 (Meditation)이다. 지글거리는 연주 소리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층층이 쌓이며 압도한다. 펜타포트에서 선공개한 해당 곡은 공연이 끝나고 귀가 계속 몽롱했던 당시처럼 여운이 짙게 남는 곡이다. "Little boy / the darkest day", "Rainbow Spell", "Oblivion" 같은 곡들은 가사에 내재된 음울함을 사운드를 집약해낸 곡이다.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에 일조한다.

 

 

 

 

전작의 시야가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몇 발자국 떨어진 채로, 더욱 멀리서 인생 자체를 관찰하는 듯하다. 불안정하게 분산된 내면의 감정들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얽매이지 않는다.

 

가사는 더욱 모호하고 심오하다. '모든 건 변하기에 편안한 순간을 끌어안고, 편안하기에 소중한 내일이 떠나고, 떠나기에 새로운 마음이 통하고, 통하기에 모자란 마음이 변한다’는 Here To Stay의 첫 가사에서부터 알 수 있듯, 삶을 관통하는 순환적인 구조를 직시한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마지막 트랙 Circle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삶이 프랙탈 구조로 이뤄져 있다면, 사랑과 죽음의 모양은 어떤 것인가. 답을 알 수 없는 사실에 던지는 물음에서 전작보다 단단해진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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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는 생소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슈게이징 장르는 다소 난해하다.

 

이펙터 효과를 통해 만들어내는 기타의 폭발적인 노이즈는, 악기로 찍어내는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실로 파괴적이고 강도 높은 사운드로 인해, 귀가 금방 피로해질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도 하다. 슈게이징의 아름다운 굉음은 장르 자체가 뿜어내는 강력한 개성임과 동시에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국내에서 슈게이징을 향한 꿈틀거림과 그에 대한 환호는 미약하게 감지되긴 하지만, 심상치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곳곳에서 농담처럼 소비되는 ‘슈게이징 붐은 온다’라는 유행어가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끈끈한 신뢰감과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잠깐 반짝했던 과거를 재현해 내는 것은 실로 즐겁고 멋진 도전이다. 곳곳에 흩어져있던 비주류 음악에 열광하는 마니아 중의 마니아들을 한 데 모아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하자’는 자신들의 말에 대한 신뢰성을 입증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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