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그럼에도, 내일로 나아 가자 -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글 입력 2022.09.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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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안나,차이코프스키] 메인포스터.jpg

 

 

본 극은 오케스트라가 전형적인 낭만주의의 음악의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관객을 러시아의 낭만주의 시대로 초대하며 시작한다.

 

무대 위에 이야기는 푸시킨 동상 완공식으로 시작하며, 푸시킨이라는 이름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푸시킨은 본 작품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동경 대상이 되며, 이를 중심으로 하여 차이코프스키와 안나, 세자르, 알료사가 당대의 암울한 전제정치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도대체 푸시킨이 러시아사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이기에 극 중에서 중요한 하나의 모티프로 사용되는 것일까?

 

푸시킨은 러시아의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한 작가로서 역사적 시대-나폴레옹 전쟁-의 러시아 국민 문학의 창시자로서 입지를 굳힌 인물이다. 이에 러시아의 모든 계층의 생활과 역사적 사건, 또한 러시아의 소수민족과 서구의 동방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그의 높은 인간적인 사랑이며, 국민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국민성, 사상성 그리고 현실성을 꿰뚫는 문학을 창조했으며 전제정치를 위한 작품은 쓰지 않았다. 이런 그의 모습이 차이코프스키와 안나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음악인 ‘백조의 호수’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음악은 매우 서정적이고 섬세하며 낭만주의적 음악 특성을 띠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통적인 러시아의 민속적 선율에 항상 중요한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서구적 기법과 민족주의, 낭만주의 사상을 결합하였고, 러시아적이면서도 국제적일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이에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상황과 달리 그의 음악은 현실과 분리되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런 그의 모습을 러시아 민족음악의 대변자인 세자르-실제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군인이며 러시아 5인조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는 비판하며, 러시아의 군대를 위한 음악, 승리할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쓸 것을 차이코프스키에게 요구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를 거부한다. 극은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알료사, 안나가 예술을 탄압하려는 전제정치 시대에 저항하는 모습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로써 러시아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러시아의 민족성을 지켜냈는지, 이런 탄압의 시대에 예술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차이코프스키와 알료사의 관계,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고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극중극 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작품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오네긴>이 낭만 발레를 떠올리는 형식으로 재연된다. 특히, <오네긴>은 차이코프스키와 알료샤 사이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며 중심적인 모티프로서 기능한다.

 

본 극은 보통의 다른 뮤지컬 작품과 달리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인물이 행동함으로써 사건이 전개되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극의 구조는 러시아 문학의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 러시아의 문학은 푸시킨을 필두로 하여 체홉, 고골 등에서도 나타나듯 극적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그대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안톤 체홉 <갈매기>의 경우에도 특별한(비범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평범하고, 더 나아가는 하찮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인물인 니나, 트레플레프를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낭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천재성’이 극에서 드러나고 있지 않다.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받는 차이코프스키도, 편집장이자 러시아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를 쓰고 있는 안나도 한 명의 천재라기보다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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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무대 모습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무대 세트와 넘버들에 제도적, 계급적, 관습적 억압에 반발하는, 자연에 대한 숭배 등과 같은 낭만주의적 특징이 구현되어 있다. 전반적인 무대세트는 한눈에 극이 다루고자 하는 시대가 낭만주의임을 알려주며, 정중앙에 놓여있는 피아노는 차이코프스키의 천재성과 음악을 통한 체제 저항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알료샤가 죽고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서 지내는 차이코프스키의 모습이나, 등장인물의 여러 대사 그리고 넘버에서 작은 꽃과 같은 자연물이 등장하고, 이를 상징적인 의미체로 사용하는 것에서 자연을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으로 인식했던 당대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2층 창을 깨고 들어와 있는 나무(자연물)의 모습은 그들의 저항이 강압적인 사회 체제에 의해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내 사나운 폭풍이 내 몸을 흔들어도

내 안에 간절히 매달린 작은 꽃

어찌하여 그리도 약하고 약한 너는 내 마음을 떠나지 않나

 

- 넘버 <작은 꽃> 中

 


또한, 대부분의 넘버의 선율은 서정적이며, 긴장을 표현하는 넘버의 긴박한 멜로디 또한 크게는 서정적인 멜로디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다만, 극의 거의 모든 넘버가 낭만주의적 운율로서 구성되다 보니, 극이 조금은 평면적이고 단조롭게 보이기도 한다. 노래 자체도 뮤지컬 넘버라기보다는 오페라의 아리아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어 다가온다. 감정 전달보다는 기교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고, 하나의 넘버가 전개됨에 있어 인물의 감정이나 사건의 전개가 일어나기 보다는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감정과 장소가 일관되게 유지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보다 잘 구현하기 위해 대학로 뮤지컬 역사상 처음으로 7인조 오케스트라를 무대 위에 배치한 것, 그리고 사건 중심의 극이 아닌 서사를 강조하는 극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대학로 뮤지컬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 작품의 시의성이다. 물론, 작품의 제작과 상연 기간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고, 정치・사회적인 상황이 어떻게 될지 제작사는 예측할 수 없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 간의 전쟁, 그리고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예술가들의 힘들었던 삶을 무대 위에 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대 위에서 러시아의 국기를 흔들면서 러시아의 민족성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장면이 꼭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예술이 탄압받던 시기의 낭만주의적 성향을 지닌 예술가들의 삶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들과 등장인물 간의 괴리감을 최소화시킴으로써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또한, 낭만주의라는 하나의 시대적 사조를 중심으로 무대세트, 넘버, 대사 등을 구축함으로써 유기적 통일성을 구현하고 있다. 극 전반에도 나오고, 본 작품이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일부를 적으며 본 글을 맺고자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 지나니

 

-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中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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