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마 난 다른 사랑이 받고 싶었나 봐 [드라마/예능]

정서경의 동화 <작은 아씨들>
글 입력 2022.09.1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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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오인주(김고은)와 오인경(남지현)이 어렵게 마련한 막내 오인혜(박지후)의 수학여행 비용을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에게 도둑맞았다. 생일선물로 주려고 등골이 휘도록 준비한 야심작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작은 아씨들'은 정서경 작가의 드라마 복귀작뿐만 아니라 류성희 미술감독의 첫 드라마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치밀한 서사에 몰입감을 더해주는 미장센은 세 자매의 현실적이지만 동화를 아름답게 빚어내고 있다. 첫째 오인주는 자신에게 검은 돈 20억을 남긴 진화영(추자현)의 죽음을 파헤치는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20억이 뚝 떨어진다면?(드라마의 경우 라커룸에 현금다발 20억이 들어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오인주는 무척 가난했다. 현금 다발을 손에 쥐었지만 비싼 아이스크림을 쓸어 담거나 동생들과 나눠 쓸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뿐이다. 평생 '돈'이 없어서 쩔쩔맸던 인생이었는데, 수중에 덥석 잡히니 김치냉장고 한편에 박아두는 것 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오인주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생각하며 아이스크림과 함께 곱씹었다.

확실한 것은, 돈이 있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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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인주의 동생 '오인선'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다. 어릴 적 죽은 동생이 있었고 그녀는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 이는 곧 오인주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 그러나 다시는 돈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겠다고.
 
 

사랑은 돈으로 하는 거야


오인혜의 재능을 팔아 유학 비용을 내주겠다는 감언 앞에 우리가 거지냐며 불같이 화를 냈던 오인주를 굴복하게 만든 것은 ‘돈’이었다. 20억의 주인이 박재상(엄기준)으로 밝혀짐과 동시에 오인혜의 유전성 희귀병이 발견된다. 오인선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무서운 병. 오인주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돈을 받는 조건으로 뺨까지 내놓는 결의를 보인다.

오인경은 이유를 막론하고 정직함을 버린 오인주를 비난했다. 가난했기에 깨우쳤고 행복했다는 말은 오인주에게 소 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었을 테다. 한 배에서 나온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생각하는 게 달랐다.
 
앞서 말했듯이 오인주에게 돈은 없으면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인경의 기저에는 고모할머니가 있었고 돈 앞에서 누구나 정직해야 한다고 믿었다. 보도국 기자라는 직업이 한몫했을 테고 이는 오인경의 가족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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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 사랑은 돈으로 하는 거야. 돈이 없으면 이 정도는 삼켜야지. 난 얼마든지 삼킬 수 있어. 그렇게 못하면 내가 우리 부모랑 뭐가 달라?


 

오인혜의 진심


오인혜는 수학여행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세 자매에게 돈은 있다가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곤 했으니까. 엄마는 새벽 내내 열심히 열무김치를 담그고 떠났다. 정작 열무김치를 먹지 못하는 오인혜에게 남겨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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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혜: 엄마 말은 사실이라 다 기분 안 나쁜데 언니들이 그렇게 애쓰는 게, 나 더 싫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학여행을 보내주고 말겠다는 다짐에 던진 진심. 엄마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 내용은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을 만큼 가난을 수용했다는 이야기가 될까.

오프닝 영상의 쏟아진 시뻘건 열무김치 국물이 마치 피를 흘리는 모습 같았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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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린: 넌 참 사랑을 당연하게 받더라? 나 같으면 훨씬 고마워했을 텐데.

인혜: 사랑이란 거, 주면 다 받아야 되는 거야?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니야?

 


드라마를 시청할 때 장녀인 오인주 보다 오인혜의 입장을 생각하곤 한다. 오인혜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갖지는 못했지만 가족이라는 결속 아래 희생을 강요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널 진짜 사랑하는 것 같다는 박효린의 말에 오인혜는 가끔 화가 난다고 대답했다. 물론 세 자매는 서로를 사랑했다. 그 사랑에 피와 땀, 눈물을 갈아 넣은 게 문제였다. 오인혜에게 돈은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이었다. 오인주와 오인경은 주지 못하는 것.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수학여행부터 유학 비용까지 박재상 재단의 돈을 선택한 것 또한 망설임이 없다. 오인혜의 재능을 이용하려는 박재상과 마찬가지로 오인혜 역시 그의 돈을 그저 어떠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자신의 그림을 팔았고 정직함을 져버린 지 오래였다.

상류층 문화를 접하게 해주며 다양한 예술세계와 식견을 넓혀주는 박재상의 돈이 필요했다. 단순히 돈을 얻기에 급급했다면 언니들이 구해주는 돈이면 됐다. 그러나 박재상의 가족은 오인혜를 이용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다. 단지 오인혜의 재능이 목적이었다면 그녀는 기꺼이 이용당해줄 의향이 있었다.
 
 

아마 난 다른 사랑이 받고 싶었나봐

 

 

인혜: 아마 난 다른 사랑이 받고 싶었나 봐. 그냥 동생이니까, 같이 컸으니까 사랑해 주는 거 말고.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괜찮은 아이라서. 머릿결이 좋아서. 승모가 있어서. 사랑해 주는 거.

 

 
이는 세 자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부모의 사랑이 어떠한 형태건 간에 세 자매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며 다른 사랑의 형태를 원하게 되었다.
 
오인혜는 가난을 등지고 꾹꾹 눌러온 예술에 대한 욕구, 자부심이었고 오인경은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랑은 돈으로 하는 거라던 오인주는 그저 부모와 다른 사랑을 동생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자매의 사랑은 유독 돈독해보인다. 언니나 여동생이 없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남자형제에게 털어 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연대할 수 있는 사이가 부러웠다. 지난 4회까지의 내용을 기점으로 오인혜의 희귀병과 진화영이 오인주에게 남긴 700억이 밝혀지며 세 자매는 다시 변곡점을 맞이했다.
 
자매를 이용하려는 자들과 그에 맞서 이용하려는 여자들의 이야기. 각자 다른 서사와 분위기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세 자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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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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