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마른 땅에 피어난 꽃 [영화]

글 입력 2022.08.30 17: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바그다드 카페4.jpeg

 

 

누군가 어긋난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형상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어딘가 불안정한 음들과 잘못 끼워진 단추, 맞지 않은 발걸음에 점점 벌어지는 상대방과의 간격 같은 것들이다.

 

생기 넘치는 숲보다는 메말라버린 개울이, 청명한 하늘보다는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 어울린다.

 


바그다드 카페 7.png

 

 

운전자의 미숙함 때문인지, 고장 난 기어 때문인지, 어떠한 연유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동차가 후진과 충돌을 반복하다 결국 혼잡한 기계 덩어리를 드러낼 때,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렇지 않아도 거친 발음의 독일어를 더 공격적으로 들리게 하는 고성이 오가고, 마침내 황량한 사막에 홀로 서 있는 여자를 지나쳐 자동차가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밟고 앞으로 달린다면. 그 후, 여자의 곁에는 짙은 녹색의 여행 가방과 날리는 흙먼지, 공중으로 흩어진 연기의 매캐한 냄새만이 남아있다.


자동차가 전진할 수 없었던 이유가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갈등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 순간의 적막이 두 사람이 함께할 미래는 더 이상 그려지지 않으리라고 선언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함께한, 지나치게 경쾌한 음악은 공간적 배경과 상황 그 어느 것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남자가 버리고 떠난 노란색 보온병처럼 모래바람 한 가운데 이질적으로 서 있는 여자의 존재를 역설할 뿐이다.

 


바그다드 카페 6.png

 

 

로젠하임(Rosenheim), 독일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도시. 아마도 이 물체가 본래 속했던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바그다드 카페’의 카운터에 놓여 있다. 고장 난 커피머신으로 인해 손님에게 커피를 팔지 못하고, 허가를 받지 못해 맥주를 팔지 못하는 어딘가 유별난 카페의 주인 브렌다는 이 장소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현실의 문제와 동떨어져 시종일관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편과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삐그덕거리고 있었다. 커피머신을 고치는 대신 그가 주워온 보온병은 도화선이 되어 간신히 이어지고 있었던 두 사람 사이의 연결을 끊어버린다.

 


바그다드 카페2.jpeg

 

 

그렇게 혼자 남겨진 브렌다의 앞에 여행 가방을 든 야스민이 나타난다. 숙박할 곳을 찾아 먼 길을 걸어온 야스민의 얼굴에 흐르는 땀과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 일에 대한 고됨으로 흐르는 브렌다의 눈물. 처음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에 그들은 각자의 땀과 눈물을 닦는다.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액체. 하나는 눈동자를 보호하고 다른 하나는 체온을 조절하는 등의 고유한 기능을 가지며 노력이나 슬픔 따위의 부산물로 여러 맥락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동시에 낯선 사람 앞에서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남편과 다투고 난 후, 혼자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를 대변하는 듯한 그 땀과 눈물을 급히 지워내는 찰나의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비슷한 경험과 상처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낯선 이를 향한 경계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사연을 공유하지 못하고 오로지 짐작만으로 상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질 때, 관계는 시작될 수 없다. 물기 없는 척박한 땅, 무언가를 피워낼 양분이 소멸한 땅에서 꽃이 필 수 없듯이.


일단, 야스민을 향한 브렌다의 판단은 이러했다. 유럽 어딘가로 추정되는 로젠하임에서 왔으며 발음할 수도 없는 ‘문치그슈테트너(Munchgstetner)’라는 성을 가진 사람. 머물고 있는 방에는 괴상한 물건들이 가득한 사람. 남자와 함께하지 않으면서 남자 옷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자기 옷은 없는데 평생 살 것처럼 구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다.


처음 각인된 이미지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야스민이 바그다드 카페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브렌다는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야스민이 브렌다의 딸에게 바이에른 포크 댄스와 독일의 의복 문화를 가르쳐주고 카페를 청소했던 그 모든 것들을 무용한 행동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결코 가까워지지 않을 것만 같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한순간에 전복된다. 야스민의 아픔을 알게 된 브렌다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야스민은 기다려왔던 그 문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선다.

 

그는 뒤바뀐 남편의 가방 안에 있던 마술 키트로 바그다드 카페의 명물이 되었고, 그가 브렌다는 물론 손님들에게까지 퍼트린 웃음은 입소문을 타고 바그다드 카페를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이 땅에서 경쾌한 음악은 그저 이질적인 존재에 불과했으며 생명력의 부재만을 견고히 다지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야스민과 브렌다 사이의 꽃이 피어난 지금, 그 어느 곳보다도 바그다드 카페는 음악이 어울리는 장소이다. 침체된 음악이 아닌, 모두가 위로와 치유를 받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음악이.

 


IMG_6894.jpg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사막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손꼽힌다. 갈라진 땅에 꽃이 피기란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례적으로 내린 비는 그동안 숨어있던 꽃씨들의 양분이 되어 사막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우연으로 시작된 꽃의 물결이다.


굳건한 벽을 가운데 두고 서 있었던 브렌다와 야스민도 그렇다.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이기에, 우연히 혼자가 되었고 우연히 서로를 만났다. 예상치 못한 계기로 마음의 벽이 무너졌고 그렇게 시작된 낯선 관계에서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바그다드 카페 8.jpeg

 

 

둘 사이의 감정을 우정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서는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선이 명백히 그어지지 않을 수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확실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 감정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동지애, 그럼에도 너무나 다른 서로에게 느낄 새로움과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동반자와 함께 바그다드 카페에서 삶을 키워나가는 행복과 보람까지. 그 밖의 서술할 수도 없는 많은 감정이 합쳐진 복합적인 덩어리를 지나치지 않고 기어코 꽃 피울 수 있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일까.


메마른 땅에서 피어난 꽃을 가지고 그들은 계속 삶을 이어 나갈 것이다. 아직은 한 송이의 작은 꽃일지 몰라도, 느닷없이 찾아온 행운을 소중히 여기며 더 넓은 곳으로 씨앗을 퍼트릴 것이다. 때때로 내리는 비를 맞고 꽃의 물결이 바그다드 카페를 넘어 넘어 온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김민서.jpg

 

 

[김민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