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근자감이 필요해

누군가의 부당함에 함께 맞서 싸우고 싶다면
글 입력 2022.08.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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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마다 습관처럼 확인하는 게 있다.

 

바로 4호선에서 지하철 시위가 진행 중인지 아닌지 SNS를 살펴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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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고쳐 말하면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선전전이다. 사실 시위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데, 자꾸만 바로 잡게 된다.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장애인들의 시위'라는 언론의 프레이밍에 녹아들고 싶지 않아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나로서는 사실 장기간의 선전전이 반가울 리 없다. 어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정부, 지자체, 서울교통공사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이렇게나 반복적으로 목소리를 내는데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그들을 마구 흉봤다.

 

하지만 나의 흉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질 뿐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아버렸다. 내가 아무리 주위 사람들에게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현실을 늘어놓아도, 내가 마음속으로 전장연을 응원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여전히 그들은 적대적인 감정이 가득 찬 눈빛을 받으며 지하철 출입문에서 싸우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남의 일처럼 '언제쯤이면 끝나려나' 하는 생각만 잠깐 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내린다. 여전히 나라님들은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들은 단식 투쟁을 했다.

 

연차, 보건 휴가와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식사는 남은 빵들을 대충 뭉쳐놓은 것들로 먹어야 했다. 업무강도가 높아 임신한 제빵기사의 50%는 유산을 했고, 점주들의 폭언과 갑질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했다.

 

특정 SNS에서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이야기를 접한 나는 SPC 불매 운동에 함께했다. SPC 계열의 브랜드들을 검색하고 최대한 모든 곳을 안 가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보탬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단식 투쟁, 크나큰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이 사태를 알지 못했다. SPC라는 크나큰 대기업의 힘이었을까? 수많은 SPC 계열 업체의 프로모션 기사들은 빼곡했고, 아주 가끔 그들의 행태를 얘기하는 기사가 보였다.

  

불매 운동에 참여하고 화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그 사실을 잊어간다. 그리고 어느새,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다 아차 하는 나를 발견했다.

 

원래 세상은 불합리한 일로 가득하다지만, 그렇다고 입 꾹 다물고 그 부당함에 순응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건 나의 가치관에서는 다소 창피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다시금 바보 같은 짓을 좀 더 해본다. 서울메트로의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청원게시글에 서명을 한다. 단체들의 입장 표명 공지글을 열심히 공유하고, 응원의 댓글을 남긴다.

 

여전히 소극적인 응원일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열 명, 백 명이 모이면 달라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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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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