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듯 낯선 미술 - 도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저자의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
글 입력 2022.08.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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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에세이스트인 저자 이소영이 미술사의 비밀이 가득 담긴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은 저자가 오랫동안 매료되어 있던 '아웃사이더 아트'와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의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미 미술계에서는 근래에 가장 주목받는 영역이다. 하나의 '주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볼 수 있다. 저자는 남성과 강대국 중심의 미술사에서 희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던 화가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보여준다.

 

친절한 미술 갤러리와도 같은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이름은 낯설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그림의 세계는 분명 우리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주목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이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들이고 고독을 버텨 그려낸 그림들은 빛이 난다. 서랍을 열고 나서야 그 반짝거림을 알게 되어 조금 아쉽지만 과거의 고독이 부재했다면 아름답고 우직한 미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아웃사이드 아티스트라고 하기엔 애매한 이들을 소개하고 싶다. 저자 이소영이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해 작가 한 명 한 명을 소개했듯이 나의 짧은 감상도 함께 담아보고자 한다.

 

 

 

자유를 그려낸 아이들: 수용소의 아이들과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



 

"현대인들의 삶이 각박해질수록 '미술치료''그림책 치료'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다. 너무나 쉽게 예술치료나 미술치료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 시대는 치료하려는 사람이 치료받으려는 사람보다 많은 듯하다. 그럴 때마다 진정한 미술치유의 힘을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의 삶에서 배운다. 미술의 진짜 힘은 가장 힘든 순간에도 자유를 싹 틔운다."

 

- [자유를 그려낸 아이들 : 수용소의 아이들과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 부분

 

 

미술 교육자이기도 한 저자는 위와 같이 말한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도 굴하지 않고 미술 교육을 펼치며 아이들에게 꿈을 꾸는 법을 가르친 디커브랜다이스에게서 예술의 위대한 힘을 느낀다. 그것은 고급스러우며 저 먼 곳에 있는 게 아닌 인간의 마음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알로이즈 코르바스


 

코르바스는 스위스의 중산층에서 태어난 명랑한 소녀였다. 어린 나이의 어머니를 여읜 가정 환경과 빌헬름 2세에 대한 열렬하지만 외로운 사랑과 전쟁에 대한 공포는 그녀로 하여금 망상으로 가득 찬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정신병원에 갇혀 그녀는 물감이 없을 때 제라늄 꽃잎을 사용해 풍부한 빨간색을 더하고, 하얀 부분에서는 치약을 바르는 등 재료를 거침없이 선택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그 도구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포장지 조각이나 봉투 편지를 실로 덧대 액자처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행복한 남녀 커플과 예쁜 소녀를 그렸다. 오페라를 좋아하던 그녀답게 오페라의 한 장면 같은 장식이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외롭고 슬픈 이야기지만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뤄내는 사람이 부럽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도처에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처럼 훗날 발견되지도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예술은 소통을 갈구하는 것인가, 단순히 억눌려온 무언가를 표출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들게 한다.

  

코르바스, 그녀의 삶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퍼즐 같은 사랑을 한 그녀가 존경스럽다. 저자는 '자신의 바람을 가공하지 않고 표현한 그녀의 작품은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가다가 지친 나에게 충고를 건넨다.'라는 말로 다시 한번 독자에게 그 의미를 전달한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코르바스의 삶에서 어쩌면 눈멂이 창작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파울라를 위한 레퀴엠: 파울라 모더존베커


 

오랜 역사가 여성 누드화는 남자 화가들의 인체탐구 대상의 영역이었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1900년까지 여성이 누드를 그리는 것은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비난도 허다했다.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누드 자화상을 그렸다. 여성 화가로서 '최초'의 타이틀을 가져간다.

 

심지어 그녀가 그린 누드화는 임신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다. 모델을 구하기에 어려움이 따랐던 것도 있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굳이 임신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인가다. 저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이 그림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를 털어놓는다. 삼십 대 여성으로서 일터에서 듣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질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임신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을 파울라도 함께 떠올리면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질문을 던져가며 그렸을지 모른다. 어머니로서의 삶이 주는 행복과 예술가로서의 충만한 삶을 저울질해가며 붓질을 멈추지 않았을 파울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림에서 어떤 고민이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문제에 대해. 물론 그녀는 어떤 여성 예술운동으로서의 의도가 아닌 오로지 창작자로서 그림을 그렸을 테지만 미술에는 특히 문외한인 내게 큰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뭔가가 될 거거든요. 얼마나 커질지 얼마나 작아질지 아직 말할 수 없지만 뭔가 완결된 걸 이룰 거예요. 목표를 향한 이런 흔들림 없는 돌진은 인생에서 가장 멋진 거예요. 여기 비길 건 아무것도 없어요."

 

-1906년 1월 파울라 모더존베커가 엄마에게 쓴 편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여성이라서, 당대에 유행하던 화풍을 따르지 않거나, 혹은 너무 앞섰거나,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던가 등의 이유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아웃사이더 아트는 애석하게도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처럼 흥미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저자가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듯이 말이다.

 

그동안 나와 미술의 세계는 어딘가 끊어진 것처럼 매끄럽게 연결돼 있지 않았다. 잘 모르는 세계이기도 하고 어려웠다. 책을 읽으면서 경계선 밖에 작품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처음으로 그림이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닮은 모습, 고민, 아픔을 가진 이들의 작품은 그런 것이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강열한 무언가가 그림 속에 숨어 있다. 그 서랍을 열어보게 되어 기쁘다. 위의 아티스트 외에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았다.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 이들이 더 와닿았지만 다음에는 또 다른 것을 찾아 서랍을 열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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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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