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의 인생은 갈매기, 하지만 나는 빛나 - 연극 '니나=빛나, 마이유니버스'

글 입력 2022.08.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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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니나=빛나, 마이유니버스>는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유진희 배우가 무대를 이끌어 가는 1인 스토리텔링 극이다. 이 작품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겪으며 터득한 개인의 삶, 변화된 환경, 새로운 세계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과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가 하나의 극이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티켓 창구에서 배우가 웃으면서 관객을 맞이한다. 보통 티켓을 찾을 때와는 다르게 따뜻함과 감사함 등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 어떤 극을 보여줄까 무척이나 기대하게 된다.

 

극이 끝나고 나서 "제10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극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이 말이 나오기 때문에 관객은 혼란스러워진다. 바로 그때, 배우가 객석의 문을 열어준다. 마치, 오늘의 공연은 끝났지만, 다른 공연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작품은 안톤 체홉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갈매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갈매기>에서 니나는 순수한 소녀로 여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유명한 작가와 결혼하여 도시로 오지만, 결국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배우라는 꿈을 놓지 않는다.

 

이런 니나의 모습이 빛나(유진희)와 닮아 있다. <갈매기>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희곡으로 뽑고, 그 대사를 수없이 되뇌는 빛나. 그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나가지만, 꿈을 향한 그녀의 발걸음은 제자리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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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매달려 있는 갈매기

 

 

체홉의 <갈매기>에서 니나는 “나는 갈매기예요”라는 말을 한다. 갈매기는 호수를 좋아하지만, 호수에서는 머물 수 없는 존재이다. 빛나도 말한다. “나는 갈매기”. 무대 한 쪽에 박제된 채 매달려 있는 갈매기의 모습이 마치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인 것처럼 다가온다.

 

배우를 열망했으나 (유명한) 배우가 되지 못한 채 무명인 상태로 남아있고,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상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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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전반

 

 

무대 크루, 각종 아르바이트, 오디션 낙방 등 그녀의 실제 인생이 무대에 펼쳐진다. 특히 아르바이트를 한 과거가 펼쳐질 때, 그녀는 아동극에서 맡았던 역할 요정 할머니와 커피 판매원으로 분하여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이에 관객이 마치 아동극을 보는 어린이, 커피를 시음해 보는 손님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과거 그녀의 시간과 같은 시간에 관객을 놓이게 한다.

 

이런 효과를 통해 그녀가 오디션 장에서 있었던 느낌이 더욱 관객에게 와닿게 된다. (예체능을 전공하지 않은)일반 관객은 오디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모른다. 그녀가 오디션 장에서 오디션을 보는 배우가 되고, 관객은 심사위원이 된다. 관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배우의 말을 통해, 상황은 진행된다. 그리고 매 순간 그녀가 얼마나 오디션에 진심이었는지, 그리고 매번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음으로써 자신감을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관객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진다.

 

배우라는 직업은 굉장히 불안정한 직업이라고 한다. 작품이 없으면 아무런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힘들다. 갑자기 공연이나 연습이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들은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매 순간 하늘 높이 공중에 매달린 외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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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222 전경

 

 

한성대역 근처 작은 공간인 공간 222에서 진행된 자전적 모노드라마. 정말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공연장 중에서 가장 협소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한 사람의 에너지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공연이 상연되고 있다.

 

<니나=빛나, 마이유니버스>, 이 공연에는 화려한 무대 세트도 분장도 조명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상쇄시키는 것이 있다. 바로 ‘진실성’이다. 대부분의 공연 작품은 허구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며,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사례도 있지만 결국은 타인의 삶을 기반으로 배우가 재현하고 창조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대에 서는 배우의 실제 삶을 연극적 화법으로 재구성하여 관객에게 선보인다.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자신의 어두운 면과 실패한 이야기를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빛나는 부분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진솔한 인생이 무대에 펼쳐지는 순간 그녀에게서는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극 중반에 무대 공간이 그녀의 자취방에서 우주로 바뀌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다며 투명한 가방을 변형하여 우주에서 사용하는 산소호흡기를 만들어 그것을 얼굴에 쓴다. 이 장면은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그럼에도 중간중간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그녀의 힘들었던 시간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꿋꿋하게, 그리고 절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꿈인 배우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이 무대를 끝냄과 동시에,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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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진희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가려고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길을 가는 사람에게서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빛이 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만을 위한 자신의 무대를 만들었다.

 

연출, 극작, 배우를 하나의 작품에서 동시에 하는 도전은 매우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의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고, 관객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진실성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어떤 공연에서도 얻을 수 없던 뜨거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극이 끝나고 단 한마디의 말을 전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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