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 연극 '죽음 혹은 아님'

글 입력 2022.07.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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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듯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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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죽음은 삶과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죽는 순간, 인간의 삶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변화를 맞닥뜨린다. 가장 극적인 그 순간을 지난 이후는 어둠, 정적 뿐이다. 문장 그대로,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삶은 죽음과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분명 죽은 것 같은 삶도 있다. 죽음이 어둠과 정적, 흐르지 않는 시간이라면, 시간이 흐르지만 어둠과 정적이 이어질 뿐인 삶은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의 삶은 충분히 삶다운가? 연극 <죽음 혹은 아님>은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대인의 삶을 죽음으로 이끄는 게 무엇인지 파고든다.

 

삶과 죽음 같은 추상적인 소재를 다룰수록 연출이 중요해진다. 이번 작품에서는 빨간 문틀과 종이 박스로 된 소품을 활용했다. 우선, 문틀은 연극의 안과 바깥을 구분한다. 문틀을 통과해야만 착석이 가능하므로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보게 되는 것도 이 문틀이다. 이후 이야기가 진행될 때에도 계속 소품으로 쓰이며 무대 위 인물이 차지하는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종이 박스는 연극 속에서 침대도 되고 테이블도 된다. 여기저기 아무 표식도 없는 상자는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삶을 닮았다.

 

 

 

죽음이 '아님'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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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혹은 아님>은 특별히 인터미션이 있는 건 아니지만 크게 1,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여러 죽음을 다룬다. 무대 위에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주로 두 사람이 한 쌍으로 나와 대화를 이어간다. 유일하게 홀로 등장하는 여자의 경우에도 전화기를 붙들고 무언가를 계속 말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이야기할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대화할 상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소통에 실패하고 만다.


두 사람 간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외침에 가깝다. 유의미한 상호작용 대신 각자 응어리진 말을 비명처럼 뱉어낸다. 소리가 말이 되지 못하는 현장에서 인물들은 모두 죽음을 맞는다. 죽음의 모습은 허무하지만 매우 현실적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인물들이 각자 통신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마약중독자는 핸드폰, 병원의 환자는 간호사 호출기, 신입 경찰은 무전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화의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 통신기는 고철일 뿐이다.


전환은 1부와 2부 사이에 찾아온다. 살인청부업자가 한 사기꾼의 집을 찾는다. 사기꾼은 자신에게 비는 청부업자 앞에서 5분 내에 신이 자신을 막을 수 있다면, 살인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처음에 사기꾼은 자신의 불쌍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끝에 살해당한다. 하지만 잠깐의 암전 후 아직 살인이 일어나지 않은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사기꾼은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청부업자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이 행한 살인으로 고통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청부업자는 살인을 포기한다.


이후, 관련 없어 보이던 상황들이 모두 연결되면서 1부에서 죽었던 인물은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된다. 한 명이 구한 사람이 우연히 또 다른 사람을 구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각자의 위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던 인물들은 빨간 문틀을 넘나들고 서로의 영역으로 뛰어든다. 핸드폰과 간호사 호출기, 무전기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관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는 삶을 삶답게 만든다. 죽음을 "죽음이 아님"상태로 돌려놓는다.

 

 

 

연극에 다 담아낼 수 없는 삶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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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없어 보이던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우연에 의해 하나로 꿰어진다. 비극의 순간이 웃음과 안도감의 순간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이 연극은 이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독백이 아닌 대화를 시작할 때, 죽음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걸까.

 

평이하게 흘러가는 연극의 안정적인 구도를 허무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연극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작가와 그의 연인이다. 관객과 마찬가지로 빨간 문틀을 통과해 관객석에 앉은 작가와 연인이 대화를 하며 연극은 갑작스레 시작되고, 마찬가지로 여자가 빨간 문틀로 말없이 나가면서 연극이 끝난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썼다는 작가는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1부에서 죽었던 인물들이 2부에서는 모두 살아나는 와중에도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한 작가만은 여전히 죽는다. 혼자서만 두 번 죽는 것이다.

 

연극의 규칙을 깨고 구도를 허무는 존재가 다름 아닌 극작가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작가의 연인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라며 고 말했지만 그 말은 작가에게 닿지 못한다. 작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이 장면은 연극이 과도하게 계몽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걸 방지하고, 연극이라는 예술 자체의 한계를 폭로하는 듯하다. 원작자인 세르지 벨벨의 자기비판, 냉소주의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을 가르치려 하는 극, 연극으로 삶을 다 담을 수 있다는 작가의 오만함을 경계하는 태도는 아닐까.


익숙하게 교훈을 찾고 결론 내리려던 관객은 당황하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 속으로,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살기 위해 다시 빨간 문틀을 통과해 무대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어쩌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연극 속으로 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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