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산책하는 순간에 만난 순간적인 것들에 대하여 - 도서 '산책가의 노래'

글 입력 2022.06.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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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산책이란 무엇인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산책'의 의미는 대부분 '잠깐의 쉼'일 것이다. 산책을 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하거나 잠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여유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걷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도 눈길을 주기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


<산책가의 노래>는 이처럼 작가가 산책을 통해 얻은 위안을 서정적인 글과 감성을 자극하는 수채화로 엮은 에세이집이다. 작가는 자신이 산책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 자연물들에 대한 온전한 자신의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두 개의 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몸살이 나은 뒤

 

빨간 꽃이 탐스럽게 핀 명자나무 아래

분홍색 자전거가 쓰러져 있고,

라일락이 어느샌가 피었다가

희미한 자주빛 향기만 남긴 채 지고 있다.

 

 

'몸살이 나은 뒤'라는 시는 짧지만, 꽃과 색감을 통해 자연의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 보게 한다.

 

봄이 오면 가장 빨리 피고, 빨리 저무는 꽃은 벚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분홍색 자전거'는 분홍색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다음 땅에 떨어져 있는 그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벚꽃을 차례로, 다양한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데, 봄에 우리가 흔히 보는 명자나무와 라일락이 있다.

 

라일락은 5월에 피는 꽃으로 상대적으로 늦게 개화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라일락이 핀 순간에 빨간 꽃이 희미한 자줏빛 향기만 남기 채 지고 있다고 하는 듯하다. 제목과 내용을 보고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주 3회 정도 집 앞 개천에 자전거를 타러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3-4일 정도 바쁜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더니 그전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꽃들이 다 시들어져 있었다. 인간이 몸살을 앓는 시간은 인간의 시간에서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꽃에게는 그 시간이 자신의 생명력을 피우고, 지는 짧은 시간이다.

 

이 시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가 좋아, 강아지가 좋아?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고양이가 좋아, 강아지가 좋아?

엄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강아지.

아이가 다시 물었다. 

고양이는 왜?

 

아마도 아이는 고양이를 좋아했겠지.

엄마가 고양이라고 대답하기를 바랐던 거야. 

 

그때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둘은 그새 저만치 걸어가 버렸고, 

엄마가 고양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는 가볍게 넘어갔다.

 

하지만, 본 책을 보다 보면, 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에세이집인 만큼 마치 산책하고 있는 화자와 함께 그의 시선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느낌은 곧 개인적인 산책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타인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걷는 중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이지 않는 이상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여도 찰나의 순간 지나쳐 갈 수밖에 없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그 사람을 계속 따라가면 아마도 굉장히 어색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찰나의 순간은 내가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이렇듯 산책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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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듯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한 책의 전개와 따뜻한 색감과 잔잔하게 퍼지는 붓 터치로 그려진 수채화와 함께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함께 산책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소소한 것들의 매력까지 말이다.

 

삶의 여유가 없다고 느껴지거나, 삶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때 <산책가의 노래>를 읽는다면 잔잔한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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