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재론 이전의 사회학 [영화]

영화 <레벤느망>
글 입력 2022.06.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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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레벤느망>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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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다. 본인의 의도로 태어난 인간은 없다. 이 '피투성'은 한 사람의 삶이 출발하는 지점을 설명하는 가장 단호한 말이다. 그러나 <레벤느망>은 이 최초의 피투성, 그 이전을 사회적으로 짚어내려한다. <레벤느망>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에 던져지기 전, 먼저 여성의 몸속으로 던져진다. 영화는 '세상을 향해 던져진 인간'이 아니라 '던져진 인간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 주목하며, 존재론 이전의 사회학에 대해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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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느망>은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문학과에 재학중인 평범한 대학생 '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친구들과 파티에 놀러간 안은 한 남성과 관계를 맺게 되고, 이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미혼모에게 가해지는 시선의 폭력, 자신이 달성한 학문적 성취의 전복 등의 복합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안은 임신중절을 하기로 결심한다. <레벤느망>은 자신의 내부로 피투된, 사회적 죽음이라는 이름의 생명을 떼어내기 위해 안이 벌이는 사투를 담은 영화이다. 안에 따르면 임신은 '여자만 걸리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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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되었거나, 마땅히 웃으며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임신은 축복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불행히도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임신들도 있다. 의도가 없이 그저 여성의 몸속으로 피투된 생명들은 보다 심각한 딜레마를 가져올 수도 있다. <레벤느망>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의 프랑스는 임신중절이 불법인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딜레마의 강도가 더욱더 강화된다. 안의 경우도 그렇다. 임신을 한 순간부터 안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안이 아이를 낳을 경우 사회는 '미혼모'라는 정체성을 안에게 부여한다. 학과에서 제일 가는 수재로서, 온 학생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던 안은 순식간에 '미혼모'라는 사회적 멸시의 대상이 되어, 자신에게 따라붙는 시선의 폭력을 견뎌야 한다. 임신중절을 할 경우도 다르지 않다. 임신중절을 할 경우 '미혼모'라는 정체성은 생기지 않겠지만, 그대신에 범죄자가 된다. 감옥에서 일정기간을 살아야함과 동시에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미혼모'냐, '범죄자'냐. 무엇을 선택하든 안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죽음을 향해 가게 된다. 혹여 임신중절을 했음에도 법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의료 환경에서 임신중절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죽음을 담보 삼아 행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무엇을 선택하든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안은, 자신이 잉태한 것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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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뇌리에 박힌 장면이 있다면 단연 화장실 장면이다. 몇번의 시도를 거쳐 결국 임신중절이 된 날에, 안은 침대 위에서 한참을 끙끙 앓다가 결국 기숙사 화장실에서 죽은 태아를 몸밖으로 내보낸다. 안의 몸과 죽은 태아의 몸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안은 고통과 슬픔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울면서도, 자신이 걱정되어 따라온 친구에게 '도저히 탯줄을 자를 수 없다고, 대신 잘라달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줄곧 암시되어왔던 주제를 명확하게 관객들에게 내어놓는다. 안은 임신중절을 '선택'한 게 아니라 '강요'당한 것이다. 사회는 어느 길을 선택하던지 죽음과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놓고는, 안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안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살리고 자신의 삶을 잃는 것' 혹은 '자신을 살리고 아이의 삶을 잃는 것'이다. 죽음을 쥔 오른손과 죽음을 쥔 왼손을 내밀며 선택을 기다리는 것. 이것도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강요의 방식이다. 안은 '자신을 살리고 아이의 삶을 잃는 것'을 택한다. 그러나 안은 임신중절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의 죽음을 무의식의 깊은 구석으로 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몸속에 하나의 생명이 움트고 있음을 알지만, 사회는 잉태된 순간부터 아이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꿔버린다. 그리하여 안은 자신의 몸안에 있는 것이 자신의 죽음이라고 여기게 된다. 안이 죽음이라고 여기던 몸속의 아기는 본질적으로 생명이지만 안은 사회가 짜놓은 틀에 갇혀 자신이 살아남는 길을 강요당했다. 그렇게 몸속의 죽음을 꺼내서 마주한 순간, 먼 무의식으로부터 사회가 죽음이라고 규정해놓은 작은 생명의 본질이 튀어나온다. 사회가 죽음이라고 규정해놓았지만 아기는 결국 탯줄이라는 매개로 이어진 또 하나의 안이었고, 생명이었다. 안은 당연하게도 탯줄을 끊지 못한다. 생명을 생명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폭력성은 비로소 이 장면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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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온몸으로 죽음의 고통을 견뎌내며 임신중절의 과정을 마친다. 그러나 안의 운명은 의사의 말 한마디에 의해 결정된다. 의사가 임신중절이 의심된다고 말하는 순간, 안은 꼼짝없이 범죄자가 된다. 영화에서는 의사가 유산 판정을 내리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사회의 강요에 따라 임신중절을 하느라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견디고도, 범죄자가 된 이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 의해 재단된 소수자들, 그런 사람들의 삶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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