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라고 불리는 것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6.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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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 『긴긴밤』

 

내가 속해 있는 독서 모임에서 한 친구가 이 책을 우리의 다음 도서로 읽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모임을 하면 내가 관심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는 것에서 벗어나 나 혼자였으면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혼자 책을 읽는 것이었다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동화책을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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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은 펭귄이 태어나 자라기까지 전해진 수많은 동물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 그의 아내와 딸, 노든의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알려주던 앙가부, 수컷임에도 돌아가며 알을 품던 치쿠와 윔보. 치쿠가 떠난 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종의 아기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는 노든. 종이 다름에도, 신체적 결함이 있음에도, 그리고 성별이 다름에도 그들은 모두 자신의 곁에 있는 존재에게 사랑을 주었으며, 그 사랑을 다른 존재에게 전해줄 줄 알았다.

 

어릴 적 내가 알고 있던 동화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 팥쥐 이 세 가지 정도이다. 이 동화들은 모두 악역에 의해 시련을 겪지만 각각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결국은 백마 탄 왕자님과 같은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결말을 맞이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낭만적인”사랑을 기대하고 또 바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러한 것에 이상하게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보다는 스스로 구원을 찾아 떠나는, 혹은 누군가를 구원하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넘치는 감동을 주었고 최근 소위 ‘인류애가 없던’ 내가 원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를 상기하게 해줬다.

 

여러 이별을 겪은 노든은 과연 그 이별을 통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물론 그는 자신의 가족,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을 잃었지만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포용의 자세,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온 결심 -노든의 경우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노든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었기에 복수를 결심했지만 아기 펭귄이라는 또다른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그를 포기했다. 결국 사랑으로 자신과 그 아기 펭귄을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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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든과 아기 펭귄에게서는 그동안 노든이 겪은 모든 사랑들을 엿볼 수 있다.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치쿠에게 주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만큼의 헌신을 할 수 있는가? 마음을 다해 사랑한 나머지 나의 ‘삶에서 가장 눈부신 반짝임인’, ‘말을 아끼게 되는’ 그 존재를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단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거나, 내가 가진 모든 돈을 주는 것 따위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함께 걸을 때 차도 쪽에서 걷는 것, 문을 잡아주는 것, 무언가를 건넬 때 나보다 먼저 건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행동 외에도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것. 우리는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동화책이 나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이러한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요즈음 TV나 인터넷 기사, SNS 등을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안 좋은 사건을 듣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이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직접적으로 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통해, 혹은 밥을 먹거나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나 라디오 등을 통해 듣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살인, 횡령, 몰카, 동물학대, 환경파괴 등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환경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소식들을 듣다 보면 우울해지기 마련이고 어쩔 때에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환경을 위해 텀블러, 대나무 빨대 등을 사용하고 있는데 어느 공장에서 폐수를 그저 흘려보냈다는 기사를 볼 때에면 무력감이 들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은 바뀌지 않을 텐데 굳이 내가 계속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먼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굳이 존중해야 할까? 이 책은 그럼에도 굳이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그럼에도 굳이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사용해야 한다. 코끼리 고아원의 코끼리들이 코뿔소인 노든을 품은 것처럼, 치쿠와 윔보가 버려진 알을 품은 것처럼, 그들이 품은 알을 노든이 품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인류애가 없는’ 사회에서도 굳이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은 분명 다른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이 사랑을 다른 개체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것은 쉽게 퍼진다.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쉽기 때문이다. 자주 보면 익숙해진다. 우리가 이 사회는 절망적이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그러한 소식을 많이 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더디게 흘러간다. 내가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교통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은 화제가 되지 않지만, 내가 교통 약자에게 욕을 퍼붓는다면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이 SNS에 돌아다닐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주 느릿하고 말없는 사랑을 굳이 행해야 한다. 그것은 아주 묵직하고도 힘이 세서 결국에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으며, 사람을 위안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의외로 몸집을 부풀려 우리에게 돌아오기도 하니까 말이다. 남양유업은 지역 대리점 점주들에게 그리고 결혼이나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남양유업의 매출은 급감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불매 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동아제약이 여성 면접자에게 성차별적인 발언을 했음이 드러난 이후 수많은 여성들은 해당 면접자에 연대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현재 여성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여성들은 살아오며 겪은 비슷한 경험들을 통한 공감과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연대해주는 동료가 사회에 존재함을 깨달으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결국에는 사랑이 최고라는 거잖아, 교훈적인 이야기잖아. 때로는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가 가장 필요하다. 좋은 이야기만 있는 뻔한 이야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를, 나와 다른 존재를 포용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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