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허락된 낭만적 타임머신 [음악]

음악
글 입력 2022.06.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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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4>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타코트 사건 이후로 잠잠하던 호킨스가 다시 시끄러워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호킨스 고등학교의 학생 크리시가 뼈 마디마디가 부러지고 두 눈이 뽑힌 채로 사망해있던 것. 마을 사람들은 이를 동창생 에디의 범행으로 보지만, 뒤집힌 세계 (Upside Down)의 존재를 아는 주인공들은 이것이 뒤집힌 세계 존재의 짓임을 단번에 눈치챈다. 에디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인공들이 그것에 ‘베크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베크나의 무자비한 살인은 계속된다.

 

문제는 주인공 ‘맥스’가 그 표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스타코트 사건으로 오빠 빌리를 잃은 (<기묘한 이야기3> 참고) 맥스는 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빌리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맥스는 애인 루카스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진심으로 걱정해오는 친구들에게 괜찮은 척 자리를 피한다. 베크나는 이렇게 일종의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이들을 노린다.

 

맥스는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호킨스 고등학교 학생들을 보며 다음은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직감하지만, 여전히 불안함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삭힌다. 하지만 그럴수록 맥스는 심리적으로 더욱 약해지고, 결국 베크나에 의해 뒤집힌 세계로 끌려들어 간다. 눈이 뒤집힌 채로 발작하는 맥스를 눈앞에 두고 소중한 친구 맥스를 잃을 순 없는 호킨스의 아이들은 극적으로 방법을 찾아낸다.

 

“음악은 언어가 닿지 않는 뇌의 영역을 건드린다고 했지. 어쩌면 그게 생명줄일지 몰라”

 

친구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Kate Bush의 'Running Up That Hill'을 들려준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음악으로 인해 뒤집힌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된 것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현실 세계에 가닿지 않은 채 출구 없이 온통 절망뿐이었던, 피와 죽음으로 가득한 뒤집힌 세계에 노래가 울려 퍼지자 허공에 현실 세계의 모습이 드러난다.

 

현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는 열렸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채로 죽어가던 맥스는 그 음악을 통해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 회상을 통해 의지할 곳과 돌아갈 곳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알 수 없이 솟구친 힘으로 맥스는 베크나를 밀쳐내고 친구들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맥스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두 세계를 연결한 것은 음악 그 자체지만, 맥스를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베크나에게서 벗어나 현실 세계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게 한 것은 그 음악 속에 숨 쉬고 있던 맥스 ‘자신’이다. 그저 그런 노래가 아닌 가장 좋아하는,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그 곡을 듣는 순간, 그 안에 저장되어 있던 과거의 맥스가 뿜어져 나와 스스로를 구한 것이다.

 

현실성이 전혀 없이 판타지로 가득한 이 장면에 깊게 공감한 것은 아마 나 또한 음악에게 구해진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모든 곡의 제목이 없는 앨범 7집을 발매한 이소라는 제목이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목이 없으면 들으시는 분들에게 ‘나’만의 노래가 될 수 있잖아요. 자기만의 제목을 떠올릴 수 있는 노래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음악이 온전히 듣는 이의 것이 되기를 원하는 그녀의 배려가 어쩐지 이해가 간다. 누구에게나 원제나 작곡가의 의도, 심지어는 가수의 목소리와도 전혀 상관없이 나만의 의미와 추억이 깃든 노래가 있기 마련이다. 자기만의 제목이 붙은 곡, 내 노래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곡.

 

그런 곡을 오랜만에 들었을 때 한순간에 해당 노래를 많이 듣던 시기로 돌아가는 경험을 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테다. 그 시기의 날씨나 하루 루틴, 입던 옷, 심지어는 했던 고민까지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이런 경험이 마음이 저리기도, 애틋하기도, 좋기도 슬프기도 해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조금 더 커서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넘어 활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진이나 동영상, 일기 같은 기록으로는 절대 겪을 수 없는, 듣자마자 추억들이 뿜어져 나오는 음악의 비밀. 그것을 알고 난 후로, 나는 노래에 순간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일상이나 여행에서 잊고 싶지 않은 풍경을 본다거나 눈물 나게 아름다운 상황이 생기면 평소 잘 듣지 않던 곡을 틀고 반복재생한다. 비어있는 폴더에 사진을 넣듯, 그 사진들에 하나하나 제목을 새로 붙이듯. 나중에 들었을 때 이 순간이 떠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순간이 꼭 노래에 저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듣는다.

 

이러한 방법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이소라의 'Track 3'를 들으면 2018년 여름의 우도로 돌아가고, Bruno Major의 'Regent's Park'를 들으면 2021년 가을의 프랑스 마을 프로뱅으로 돌아가며, 샤이니의 'In My Room'을 들으면 순식간에 MP3로 인터넷 소설을 읽던 중학생 소녀로 돌아가 교복을 입은 내가 되어 있다. 이소라의 인터뷰처럼, 나의 어느 한 시절이 저장된 음악은 자기만의 제목이 붙은 채로 ‘나’만의 곡이 된 것이다.

 

나만의 곡이 된 음악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그 안에 저장된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그 안에 저장된 나의 모습으로 바꿔놓는다. 그렇기에 음악은, 우리의 시대에 허락된 가장 낭만적인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이 있는 한, 우리는 ‘탈출구’가 보장된 삶을 살게 된다. 뒤집힌 세계로 끌려간 맥스가 음악을 듣고 삶의 어느 부분을 회상하며 정신을 차렸듯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끌려 들어간 우리를 음악이 구할 것이다. 그 음악에 저장된 어느 날의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스스로를 구원할 것이다.

 

 


김지은 (1).jpg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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