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정(詩情)을 담은 꿈의 미로 – 호안 미로: 여인, 새, 별 [전시]

여인은 새를 따르며, 새는 별에 이른다.
글 입력 2022.05.2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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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는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야수주의 경향의 작품으로 활동을 시작한 미로는 이후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를 차례로 흡수했다.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부르주아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 깊은 회의를 느낀 미로는 회화를 말살할 것을 선언하며 새로운 표현 수단을 발견하고 이를 확장했다. 순수한 색과 시적이고 상징적인 기호의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한 미로는 초현실주의에 속하면서도 독자적인 예술관을 가진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자리 잡았다.


미로는 여인, 새, 별 그리고 밤, 태양, 달과 사다리 등의 예술적 모티프를 구축하여 독특한 우주론을 표현했다. 그는 회화의 평면상에 형태를 엄격하게 통제하면서도 실제 사물과 거의 연관되지 않는 상징적인 기호를 밝고 선명한 색채와 함께 배치하여 원대하고 창의적인 자유를 그려냈다.

 

색채와 형태, 기호에 깃든 시적인 힘은 미로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의미해석의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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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여인, 새, 별>은 미로의 후반기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렷한 화풍의 발전 양상과 원숙한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구성은 미로 특유의 예술세계가 잘 드러나는 대표작품을 볼 수 있는 [Sec 1. 기호의 언어] / 그의 특징적인 기호들이 더욱 추상화된 [Sec 2. 해방된 기호] / 일상 사물에 대한 미로의 관심이 드러나는 [Sec 3. 오브제] / 인물의 형상이 응축되고 암시적인 형태를 띠는 [Sec 4. 검은 인물]로 되어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4월 29일부터 9월 12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미술관과 공동 주관하며, 교육 프로그램 디렉터 조르디 클라베르(Jordi J. Clavero)가 기획하였다.

 

호안 미로 미술관에서 엄선된 유화, 드로잉, 판화, 태피스트리, 조각 등 7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미로의 다양한 작품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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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의 언어라고 하는 측면에서 분명한 형태와 색채는 구성적인 구도로 이디어그램(Ideogram: 표의 문자)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미로의 특징적인 기호들은 변형, 혼합, 재창조되면서 추상적이고 암시적이며 직관적인 형태를 가진다. 새로운 시각언어로 나타낸 기호는 문장처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캔버스 위에 표현된 대단히 시적인 조형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의 객관적 우연과 오토마티즘(automatisme: 무의식적 자동기술법)으로 인해 즉흥적이지만 동시에 신중하게 구성된 미로의 표현 언어는 꿈의 세계가 특정되는 순간에 제공된 기호인 것이다.

 

특히 미로에게 여인, 새, 별과 사다리 등의 모티브는 그만의 기호 언어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미로는 독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기호 자체의 형태를 해체했는데, 객관적인 형상은 무시되고 그 자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세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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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인, 별>에서 여인은 검은 원형 두상과 물방울형 몸체, 양쪽으로 휘어진 다리를 가진다. 머리에는 검은색의 곡선이 모자처럼 씌워져 있으며, 그곳에서 튀어나온 3개의 선은 여인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킨다. 초기작에서 여인을 독자적인 기호로 창조해낼 때 사용하던 화염처럼 보이는 음모 대신 붉은 색면으로 몸체를 칠해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물은 반드시 겉을 열고 일부 도금된 내부를 보여서 항상 감추고 있었던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는 사물 그 자체의 본질, 즉 어두운 현재에서도 항상 푸른 하늘을 추구하는 본질인 것입니다.”

 


미로의 꿈의 색을 보여주는 파란 배경 속에서 동양의 서예처럼 그려진 검은 기호는 하나의 서체가 되어 무한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기호의 형상은 상형문자나 알파벳과 유사함을 보이며 칼리그래픽(calligraphic)하고 의미가 모호해지는 방향으로 나갔다. 따라서 미로 작품에서 보이는 기호의 형식적 탁월함은 상징성이 두드러지며 도상학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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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작품 속 ‘여인’은 우주 만물의 기원과 같은 자연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된다. 후기로 갈수록 여인의 존재 의미를 해석하고 상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미로는 여인에 대한 다양한 은유로 ‘새’를 자주 사용했다. 미로에게 새는 대지에서 대기로 이동 가능한 상징으로 운동과 비상을 보여주는 기호이며 초월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무한공간으로 이동하는 새의 은유는 곧 꿈의 세계를 이루는 밤과 태양, 달, 별과 이어진다. 여인은 새를 따라 꿈의 우주를 이루는 기본요소와 함께 자리를 찾음으로써 근본적인 우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생명의 창조자 혹은 죽음의 상징으로서 권위를 갖는다. 비행하는 듯한 동작,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 강렬한 색채 등 여인과 새가 서로 공유하는 특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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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새, 별처럼 미로의 작품 속 기호들은 그가 만든 견고한 우주론에서 작동하며 상징성을 부여 받는다. 시각적으로 표현된 시정이 독자적인 기호로 단순화되어 작품에 배치된다. 이때 미로는 배경을 먼저 칠하고 기하학 형태의 기호들을 유기적으로 그리며 작품을 이루는 시적 언어를 제목으로 구체화한다.


시와 회화의 벽을 허문 미로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제목이 시적 보조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인, 별>을 예로 들 수 있다. 제목 없이 작품만 보았을 때 극도로 단순화된 형상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떠한 상징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목을 생각하고 작품을 다시 바라본다면 미로가 상징으로써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로의 제목은 순수하게 추상적이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품과 함께 하며 색채와 형태, 공간의 의미를 확대한다. 관람자는 작품의 제목을 통해 미로가 구축한 세계로 진입하여 새로운 해석에 도달한다. 화면 전체의 형태와 색채를 통합하는 리듬은 시의 운율처럼 느껴지고 기호가 가진 시각적 시정과 상징은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제 기호는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은유적으로 다른 요소들과 결합되고 시에 도달하게 된다.


여인은 새를 따르며, 새는 별에 이르는 시정(詩情)을 담은 꿈의 미로를 부유하고 온 듯한 기분이었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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