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감독 이전의 팀 버튼을 만나다: 팀 버튼 특별전 [전시]

예술가의 창조정신에 흠뻑 젖을 수 있었던 전시
글 입력 2022.05.21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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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손(1990),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유령 신부(200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등을 제작한 판타지 영화의 거장, 팀 버튼의 전시가 DDP에서 2022년 9월 12일까지 개최된다. DDP 배움터 지하 2층 전체를 활용하는 큰 규모의 전시로, 처음 소개되는 150여 점의 작품을 포함해 팀 버튼의 50년을 담은 5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내부 촬영은 불가능하다.

 

천천히 전시를 구경하는 약 1시간 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팀 버튼’이라는 환상 세계에 푹 빠진 기분이 들었다. 총 10개의 전시 섹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큰 스토리텔링을 이루었고, 전시 동선과 구성이 몰입을 더했다. 전시의 입구부터 화려한 비주얼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마치 이곳이 현실과는 구분되는 팀 버튼의 환상 세계임을 알려주는 듯한 표식이었다. 1시간 반 동안 빠져들었던 환상 세계에서 나오면서, ‘참 좋은 전시였다’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만에 마음이 충만해지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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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섹션을 순서대로 감상하며, 영화감독 이전의 아티스트 팀 버튼을 만날 수 있었다. 캐릭터 하나를 제작하기까지의 고뇌, 오브제에 부여한 의미, 그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와 창조적인 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는 기억 조각을 중심으로,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느꼈던 그 충만함을 나눠보고자 한다.

 

 

Section 1. 인플루언스 Influ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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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어 구사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게 더 쉬웠어요.”

 

팀 버튼의 가장 초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의 유년 시절 필기했던 노트와 드로잉 원본을 살펴볼 수 있다. 그가 어린 시절 어떤 상상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괴물이 좋았고, 괴물 영화를 즐겨 봤다. 한 번도 그들이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다. 보통 아이들은 동화 속 예쁜 그림을 더 좋아하지만, 난 사람들이 괴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괴물들은 주위 인간들보다 훨씬 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팀 버튼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인상적인 외관을 지니고 있다. 지나치게 앙상한 팔다리와 창백한 피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눈과 과장된 속눈썹 등, 그의 영화를 상징하는 캐릭터의 독특한 생김새는 관객에게 각인된다. 언뜻 기괴한 괴물 같아 보이지만, 팀 버튼은 ‘괴물들은 주위 인간들보다 훨씬 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의 큰 모티프가 왜 괴물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ection 2. 특별한 홀리데이 Holi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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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해서 눈이 펑펑 오는 듯한 효과로 꾸며둔 섹션이었다. 팀 버튼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버뱅크는 작고 조용한 시골 동네였는데, 연말에 열리는 시끌벅적한 축제가 팀 버튼에게는 지루한 일상의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한다. 반짝이는 동네의 풍경은 팀 버튼의 초기 예술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veryday is Halloween, isn’t it? For some of us…”

 

그러나 팀 버튼의 홀리데이는 마냥 밝고 유쾌하지 않다. 물론 홀리데이 특유의 반짝이는 감성이 더해져 있으나, 팀 버튼의 홀리데이는 감성적이면서 동시에 풍자적인 암시가 섞인 모티프로 작용한다. 팀 버튼의 대표작,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떠올리면 그의 홀리데이 감성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와 핼러윈이 절반씩 섞인, 조금은 축축한 홀리데이가 팀 버튼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Section 3. 유머와 공포 Carnivales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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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팀 버튼 특유의 괴기한 분위기를 ‘카니발레스크’라고 이름 붙인다. 웃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팀 버튼 예술세계의 가장 상징적인 테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빙글빙글 꼬인 혓바닥, 밖으로 멀찍이 튀어나온 눈동자, 기괴한 피에로의 모습들은 유머와 공포라는 이중적인 테마를 잘 드러낸다.

 

전시에는 ‘이 작품은 어린 친구들이 보면 울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괴기한 작품이 많았다. 디테일을 찬찬히 뜯어보면 훨씬 더 무서워지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작품이 마냥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겉모습은 기괴하지만 그 안에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가 따뜻한 메시지이든, 풍자적인 메시지이든, 팀 버튼의 작품은 마냥 무서운 그림이 아닌 메시지를 품은 그림이었다.

 

 

Section 5. 오해받는 낙오자 Misunderstood Out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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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테마이다. "가위손",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의 잭 스켈링턴과 "프랑켄위니"(1984, 2012)의 스파키 같은 주인공 캐릭터가 대표적인 ‘오해받는 낙오자’이다. 이런 캐릭터들은 비현실적인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팀 버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을 상징하고 있다.

 

“아들아, 행복하니? 깊이 묻고 싶진 않구나. 하늘나라의 꿈을 꾸고 있는지, 죽고 싶은 적이 있었는지?”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1999, 팀 버튼)

 

특히 이 섹션에서는 1999년 출간된 팀 버튼의 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영관 안에 있던 사람들이 결말에 모두 흠칫 놀라 숨을 들이쉬었으니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한다.

 

바닷가 근처에 살던 부부는 바나 내음, 해초와 소금 냄새가 나는 굴 소년을 낳는다. 소년은 단단한 껍질로 쌓여있었고, 부부는 소년을 그냥 ‘샘’이라고 불렀다. 샘이 태어난 이후로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자 아내는 샘에게 원인을 돌리고, 부부 관계를 진단하던 의사는 남편에게 아들을 잡아먹으라고 권한다. 그날 밤, 샘의 아빠는 샘을 꿀꺽 삼켜버리고, 부부는 바닷가 모래밭에 아들의 무덤을 만든다. 새벽 3시, 집에 돌아온 부부는 침대에 누워 입맞춤하며 말한다. “이번에는 딸을 낳았으면…”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 섹션에서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굴 소년’을 주제로 다루는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은 단지 충격적이기만 한 작품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 비극적인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위로를 얻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굴 소년 샘의 처지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팀 버튼은 이런 ‘오해받는 낙오자’를 작품에 등장시킴으로써 관객의 마음속에 한층 더 깊이 다가간다.

 

 

Section 8. 세계 여행 Around the World

 

영화 촬영이나 홍보, 영화제 참석 등 팀버튼에게는 세계 여행이 일상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떠오르는 즉흥적인 영감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영감 노트’는 스케치북부터 호텔 메모지, 식당 냅킨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기록은 팀 버튼 특유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한 분야의 거장이 되기까지 그가 지속해온 노력을 단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섹션이었다.

 

 

Section 10. 팀 버튼 스튜디오 The Artist’s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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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섹션이다. 팀 버튼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창조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고독한 예술가이다. 실제로, 그는 작업실에서 대본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무대 디자인을 구상하며,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팀 버튼의 개인적인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그 공간에서, 팀 버튼의 삶과 예술가의 고뇌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다. 책상의 보드에는 신작의 탄생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벽면은 예술가의 고뇌가 가득 담긴 작품으로 빼곡했다. ‘창조의 샘’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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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을 너무도 다채롭게 활용했기에 완전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전시다. 팀 버튼 영화의 광팬이 아니었음에도, 전시를 모두 둘러보고 난 후에는 그의 영화를 당장이라도 모두 찾아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만큼 예술가의 창조 정신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라는 표지 이면의,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자유로운 거장의 창조 정신을 마음이 충만해질 만큼 가득 담아온 전시다. 팀 버튼의 광팬이라면 꼭 방문을 권하고, 그의 광팬이 아니더라도 진심을 담아 방문을 추천한다. 그의 예술관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 그의 말과 함께 글을 맺는다.

 

“풍선은 늘 무언가를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공허하게 늘어져 있다가 한 편으로 가득 차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아름다우면서 비극적이면서 슬프다가도, 활기차고 행복한 무언가가 동시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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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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