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몽글몽글 솟아나는 동심을 찾아서.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전 [전시]

글 입력 2022.05.1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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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앤서니 브라운이야.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전시의 시작 부분의 글귀와 액자 속 그림들, 그리고 다정한 말투에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

 

전시를 보기 전, 나는 그간 긴장감을 가진 채 임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려 하거나 도슨트의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 또는 이어폰을 끼고 작품 하나에 깃든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목적은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편안한 상태로 전시를 향유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조금 달랐다. 어떤 큰 이해가 필요하지 않고 어렸을 적 찰흙 놀이를 하듯 쉽고, 상상력이 가득한 곳을 천천히 걸으며 웃음 지으면 되었다.

 

[크기변환]My Mum 2005 @ Anthony Browne .jpg

My Mum 2005 @ Anthony Browne

 

 

섹션2, 가족.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에서 자주 중요하게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에서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와 미묘한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빠는 최고이고 1등이었다.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엄마의 요리 실력을 따라 갈 수 있을까, 아빠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그 언젠가 알 수나 있을까.

 

전시관은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가득했다. 그림을 짚고 자녀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시고 말똥한 눈으로 집중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몸을 배배 꼬는 아이, 마음에 드는 사진 앞에서 엄마를 크게 부르는 아이, 한 편에서는 혼이 나고 있는 아이 등. 다양한 가족들의 분위기에서 나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아이들보다는 가족에 대해 더 많이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 풋내기 어린애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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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 the Dreamer 1997@ Anthony Browne

 

 

섹션 4,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 “어린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면서 부딪힐 수 있는 각종 어려움과 이와 관련한 미묘한 심리의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시각’으로 세계를 묘사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예민한 통찰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11년 작품의 ‘기분을 말해봐’ 부분은 색감이 예뻐 그 앞에 오래 머물렀다. 검은색 화, 행복한 노랑, 빨간색 부끄러움, 파란색 슬픔 등. 리뷰를 쓰는 지금의 나는 네 가지 색 전부를 쓰고 싶은 날이다.

 

낯가림이 어지간하면 옅어지지 않는 나는, 조금의 부끄러움을 안고 내가 속한 모임에서 식사를 하고 왔다. 맛있는 걸 먹어 행복했지만,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못한 나에게 약간 화가 나 조금 슬프다.


그 상황에서는 적당한 힘을 들여 편안히 나답게 행동하지만, 지나고 오는 길엔 항상 크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한다. 참 이상하다. 앤서니 브라운을 대표하는 캐릭터로서 작가의 유년기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온화하고 사려 깊은 침팬지 윌리가 그려진 ‘윌리와 구름 한 조각’ 작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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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_s Pictures 2000 @Anthony Browne

 

 

전시관 안쪽에는 큰 고릴라가 하늘에 매달려 있는 섹션 10, 앤서니 브라운의 빌리지가 있다. 그 벽 앞으로 아주 귀여운 그림 이야기를 발견했다.

 

1988년에 세상에 나온 ‘마술 연필을 가진 꼬마 곰’이다. 꼬마 곰이 마술 연필을 가지고 걸어가다가 악어에게는 트럼펫을, 사자에게는 왕관을, 고릴라에게는 작은 곰 인형을 선물해 주고, 밀렵꾼을 만나 탈출하는 간단한 그림 이야기이다.


동심에서 피어나는 상상력이 웃기기도 하면서 각 동물들과 잘 어울려, 아이들 틈에 껴 6페이지 남짓한 책을 들고 웃으면서 한 장씩 넘겨봤다. 소꿉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 맞은편으로 짧은 그림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성인들이 엉덩이를 겨우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묘한 조합처럼 느껴져 그 모습에도 웃었다.


모두가 어릴 적 유치하고 귀여운 상상을 하며 동심 안에서 놀았었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작고 잔잔한 감성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몽글몽글, 작고 소중한 어린 이야기에 단단하고 시니컬했던 마음이 녹아내려 기분이 좋다. 흰색 곰 인형을 품고 있는 고릴라 사진은 참 마음에 들어 엽서 한 장으로 사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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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 섹션엔 셰이프 게임(결과물을 예상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이어가는 놀이)을 할 수 있게 도안과 색연필이 놓아져 있었다. 아이들 틈에 껴 펜을 들고 그림 그리는 걸 눈치 보는 것도 잠시, 삐죽 튀어나와 있는 낙엽 모양 도안을 꺼내 들고 제일 처음 생각나는 걸 그렸다. 파전이었다.

 

어린 아이들의 상상력 사이에 튀어나온 어른 그림인 파전은, 셰이프 게임의 의의와는 살짝 동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이미 굳은 머리는 맛있는 파전만 생각해 냈다.


20년 전의 나였다면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초등학생 때 내가 만화형식으로 짧게 그렸던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머리에 주전자가 달린 캐릭터였다. 화가 나면 뚜껑이 열리고, 아닐 때는 잠잠했던 캐릭터였는데 어머니가 그 그림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느냐며 웃으셨던 게, 그때의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그런데 내 주변에 걸린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 마음을 살포시 이해하게 된다.


아이들의 상상력에 웃음 짓고, 그 동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른의 마음에도 살랑 봄바람을 불어주는 전시여서 보는 내내 그리고 전시를 보고 나오고 나서도 말랑해진 감성에 기분이 좋았다. 이 느낌을 많은 이들이 함께 느꼈으면 하는 전시였다. 시간 내어 맘껏 향유하고 오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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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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