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연히 들른 그곳에서 - ➁ [여행]

글 입력 2022.05.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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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부끄럽지만 그 상황에서도 말이야. 오래된 건물임을 알리듯 군데군데 크랙이 생긴 상아색 외벽과 달리 내부는 하얗고 깔끔했어. 입구에 담배를 피우던 여자가 나를 따라 들어오더니 안을 살펴볼 것인지 물었어. 이곳 박물관 주인인 모양이야.

 

그녀가 이곳은 실제 이별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별에 관련된 물품을 기증받아 만든 곳이라고 소개하는 동안, 나는 숙소에 가서 몸을 녹일 시간보다 지금의 따뜻함이 나는 더 간절해져서 그러겠다고 말했어. 내가 두르고 있던 진녹색 목도리를 푼 뒤 값을 치르려고 하니 이번엔 나더러 학생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나는 그렇다고 말했고, 그 뒤로 몇 번을 더 말을 주고받다가 그녀가 다시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야 나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하얀색의 벽마다 보라색으로 이별에 대한 짤막한 글들이 쓰여 있었는데, 그건 전시의 테마를 알려주는 것 같았어. 이별이라고 다 같은 이별이 아니라는 것처럼 연인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갑작스러운 이별, 배신까지 다 다루고 있는데, 과연 이별박물관이더라.

 

그 벽을 따라 걸으면 길이가 20cm 정도 돼 보이는 하얀색 정사각형 전시대 위에 물품들이 하나씩 늘어놓아 져 있는 걸 볼 수 있어. 내가 갔을 땐 파란색 어린이 자동차, 티셔츠와 교환 일기장, 밥 딜런의 타란툴라 책 등이 전시되어있었어. 아, 도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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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저마다 재미있는 사연이 적혀있었어. 파란색 자동차는 마흔이 된 딸이 엄마에게서 받은 거였대. 어릴 때는 사랑의 의미를 몰랐다가, 자신이 아이에게 나무 타는 법을 알려주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나. 그리고 딸이 어렸을 때 이 장난감 자동차를 받고 싶었던 걸 알게 된 어머니가 마흔 살이 된 딸에게 그제야 이걸 선물했대.

 

사실 난 이런 거, 별로야. 뒤늦게 사랑을 깨달았다거나 뒤늦게 후회를 한다거나 하는, 뒤늦은 그런 것들 말이야. 다른 전시대 위에는 자살한 어머니가 남긴 쪽지도 있었어. 암스테르담에서 보내온 이별물건인데, 거기엔 ‘사랑하는 H,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편지를 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구나. 너와 M, 그리고 M. 모든 행운이 너희와 함께하기를. 그리고 많은 사랑과 행복도. 너의 엄마가.’라고 적혀있었어. 저마다의 사연들을 곱씹어 보면 이 물건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러한 상황 속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한참 동안 그 박물관을 떠날 수 없었어.


나라면 이 이별박물관에 어떤 물건을 전시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 그러다 언젠가 네가 준 공이 생각났지. 그리고 그 옆에 뭐라고 써야 할지도 생각해봤어. 그런데 첫 문장부터 너와 나를 어떤 사이라고 밝혀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사실 우리는 서로를 잘 몰랐잖아. 우린 그저 고3 때 처음 만났고, 이름순대로 앞뒤 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 덕분에 몇 마디 나눈 게 다였지.

 

나는 그때, 새로운 반의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했어. 고3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이 아니더라도. 반면 너는 오랫동안 사귀어왔던 친구들과 함께였어. 나는 점심시간 같이 밥 먹을 친구도 마땅찮아 괜히 교실에서 공부하겠답시고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고, 그마저도 교실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볼까 두려워서 급하게 먹고 공부를 해야 했어. 공부가, 수능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였지만 사실 나는 그때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고3 때 학교에 다니면서 좋았던 날이라고는 모순적이게도 모의고사 날이었어. 그때는 모두가 도시락을 싸 왔거든. 나는 23번이고 너는 22번. 그러면 앞에 앉아있던 네가 뒤를 돌아 도시락을 내 책상으로 가져와 같이 밥을 먹는데, 사실 그때 이야깃거리라고는 시험 이야기, 수능이 끝나면 뭐할지, 어느 대학을 갈 건지 말하는 것이 다였지만 나는 그게 너무 좋았어. 그런데도 왜.

 

졸업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건 정말이지 내게도 갑작스러웠어. 그날부터 나는 정말 일주일간 너밖에 생각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특별히 너와 내가 친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누가 물어보면 친구라도 말할 수도 없는 사이잖아. 그러는 새, 네 부고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단톡방에는 끊임없이 알람이 울리더라.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한마디 할 수 없었어. 내가 해도 되는 건지 몰랐거든. 계속해서 알람은 울렸고 나는 확인도 못했지. 그렇다고 그 알람을 감히 끄지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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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박물관의 모든 전시품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커다란 책이 한 권 있어. 속지에 사람들의 방명록, 혹은 저마다의 이별 사연 같은 것들을 적어둔 책이었어. 다른 전시공간은 그렇지 않은데 그 책이 있던 공간에만 사각거리는 만년필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어.

 

그 소리를 듣자 왜인지 나도 쓰고 싶어져서 다가갔어. 적당한 빈 곳을 찾으려 여러 페이지를 넘기는데 누군가 ‘Time ruins and time heals. Look for good.’라 적어둔 글을 봤어. 그 옆에 조그맣게 ‘끝까지 네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어. 미안해.’라고 적었다가, 적당한 말이 아닌 것 같아 그 위를 새까맣게 덧칠했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또 한 번 결국 아무 말도 적지 못하고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꽤 오래 있었나 봐. 눈은 그친지 오래고 바닥의 눈까지 모두 녹아 돌만 반짝거리더라. 그래서 나는 힘들게 걸어 올라온 길을 계속해서 가는 대신,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 버스터미널로 향하기로 했어. 만약 버스 운행이 재개된다면 늦지 않게 비엔나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거든. 운행재개와 자신감은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야.


나는 여전히 버스 타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에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아주 우연히 오스트리아에 관련된 뉴스를 보게 됐어. 오스트리아에 캥거루가 나타났다는 뉴스였어. 그래, 호주 말고 호주에서 1만 4000km나 떨어진 그 오스트리아에서 말이야. 북부의 키르샤르크 숲 인근 목초지에서 캥거루가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오르더니 숲을 향해 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대.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걸 보고 캥거루 미스터리라고 부른다더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 왜 네가 생각났는지. 내게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길 바랐던 걸까? 이번에는 버스를 타러 오스트리아에 가야 할까 봐. 그곳에서 나도 캥거루를 보게 된다면 다시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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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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