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랜덤 다이버시티 프래그넌스 [전시]

당신은 어떤 향기를 기억하나요?
글 입력 2022.05.02 08: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요즘 향, 향기, 향수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평소 향수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나’만의 ‘향기’를 내세울 수 있다면, 꽤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고유한 향, 그 고유한 향으로 설명되는 나.

 

그래서 가장 ‘나’를 잘 담아낼 수 있는, 나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향이 이 세상에 존재할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랜덤 다이버시티 – 프래그넌스 (2022.03.12. ~ 2022.06.26.)라는 향 추출 실험 전시를 알게 되었다.

 

이는 당연히, ‘나만의 향’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많은 날 예약이 차 있어서 부랴부랴 친구와 시간을 맞춰 예약했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20501_234754911.jpg

향수 구매와 함께 받은 소개문

 

 

경복궁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은 하늘이 파랬고, 햇살이 눈부셨다. 오전의 따스한 햇살에 이미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고즈넉한 동네에서 조용히 서 있는 전시회 안내판을 만났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20501_233239440_04.jpg

 

 

갤러리 이름이 œuf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평소 프랑스어를 아주 조금 알고 있어 이 단어가 달걀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계단을 올라가며 과연 향기와 달걀은 어떤 관련이 있을지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공간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그렇지만 냄새를 모티프로 하는 전시회답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좋은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창밖에 보이는 눈부신 하늘과 다소 어두운 내부의 푸른 분위기가 어우러진 느낌이 좋았다. 곳곳에 감각적인 조명들이 과하지 않게 있었다. 병에 담긴 액체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20501_233239440_03.jpg

 

 

그리고 여러 향을 맡으며 검사를 한다. 첫 번째로 맡은 향이 마치 살아있는 풀잎의 향을 맡는 것 같아 살짝 놀랐다. 취향이 아닌 향도 있었지만, 대체로 좋은 향이었다. 이 실험을 하며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많은 향을 맡는 동안 어떤 안내도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새로운 향을 맡아보라든가, 이제 향을 바꿔보겠다는 말이라도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이 없었기에, 언제 새로운 향이 코 가까이 다가올지 몰라 최대한 날숨을 짧게 뱉으며 가쁜 호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20501_233239440_01.jpg

 

 

자신이 강렬하게 반응한 향들로 향수를 직접 만들어보고, 그 향수에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경험은 새로웠다.

 

생각보다 내가 평소 선호하지 않는 향이 나와서 신기했다. 향수를 만든 후 옆의 전시 공간에서 여러 가지 향을 맡다가, 너무나 끌리는 향을 발견했다. 어디서도 맡아본 기억이 없는 향,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찾을 것만 같은 향이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향수를 구입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꽤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나만의 향’을 찾으러 갔다가, 직접적으로 나의 머릿속을 통해 구체화시켜 본 나만의 향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미 만들어진 기존의 향을 나의 향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나는 그 향을 기억을 통해 만들지도, 새로이 창조해 내지도 않았다. 그저 새롭게 그 향을 ‘인식’함으로써 그 향을 ‘나의 향’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향수 이름을 지은 과정도 재미있다. 실험을 통해 추출된 향에 붙일 이름은 고심한 끝에 'radieux'라고 아주 멋있게 지었으면서, 내가 구매한 향에는 숫자 '6'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름을 부여했다. 그저 그 향이 전시 진열장 왼쪽 위에부터 오른쪽 아래로 셀 때 6번째 칸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나는 대립항을 만들어냈다. 의도와 우연. 나만의 것과 내가 인식한 것. 고심과 즉흥. 일반적으로 우리는 전자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내 안에 들어왔다.

 

그것이 이 전시에서 나만이 개인적으로 겪은 체험이었고, 이 전시가 오직 나에게만 가져다주는 특별한 의미였다. 잠시 다른 길로 새자면, 우리는 때로 흔한 것으로부터 나만의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거의 모든 전시회는 우리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안내한다. 그리고 그 안내 속에서 제각각 조금씩 다른 경험, 기억, 느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당신에게는 전시 <랜덤 다이버시티 - 프래그넌스>, 그리고 다가올 수많은 다른 전시들이 또 어떤 고유한 의의를 선사할 것인가.

 

그렇게 나의 손에는 ‘Random Diversity’라고 적힌 두 개의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가 바로 random diversity였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들어낸 향보다 오히려 내가 인식한 향이 더욱 나와 가까운 향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졌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20501_233239440_07.jpg

 

 

좋고 나쁨을 떠나서 무엇이 가장 강렬했을까.

 

 

이 전시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무심코 싫다고 지나쳤던 것들, 나도 잘 모르는 내 안의 어떤 반응,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어떤 diversity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인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강렬함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현재와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 그 모든 시간과 감각과 찰나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선호를 잠시 내려놓고 본 나. 내가 강렬하게 반응한 향. 나의 일부분일 그 기억과 그 감각과 그 반응과 그 향.

 

전시 <랜덤 다이버시티 - 프래그넌스>는 바로 그 순간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아닐까.

 


[꾸미기][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20501_233239440_06.jpg

 

 

*갤러리의 ‘달걀’은 향을 머금는 방향제가 되어 전시회에 자리잡고 있었다. 

*‘fragrance’를 왜 ‘프래그런스’가 아닌 ‘프래그넌스’라고 표현했을까? 

 

 

[정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