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한 것의 위대함,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일상의 사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현대미술의 거장
글 입력 2022.04.2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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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세수를 하고 사용한 수건의 색을 기억하는가? 혹은, 방안 책상 위 어떤 물건이 놓여있는지 정확히 떠올릴 수 있는가? 아마 잘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사물에 우리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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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부터 신발, 일회용 컵, 안경, 헤드폰, 연필깎이, 노트북까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 물건에 매료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이다.

 

그는 데미안 허스트와 줄리안 오피 등 영국 현대미술계를 주름잡는 젊은 예술가를 양성한 스승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제자 교육에 힘써왔기에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과감하고 독창적인 작품은 82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고 감각적이다.

 

그가 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평범한 물잔이 참나무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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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용 변기를 그대로 전시회에 출품하여 예술계를 뒤흔든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1917)'.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참나무(An Oak Tree, 1973)'는 뒤샹의 변기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물이 든 유리잔이 선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벽면엔 두 사람의 대화가 적혀 있다. 참나무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데 제목이 참나무인 게 잘 이해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물잔이 예술이라는 점도 처음엔 의아했다.

 

'참나무'는 개념미술계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됐다.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는 아이디어나 과정 자체를 예술로 여기는 새로운 태도를 뜻하는 개념미술. 마틴은 뒤샹을 뒤를 이은 1세대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해당 작품으로 영국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젊은 아티스트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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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에선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마틴은 정물화나 풍경화만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잔도 참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순간 참나무가 됐다. 작가가 의도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탄생했다.

 

그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발상을 제시하며 관객이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했고,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유리잔은 관객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이미 예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다.

 

 

 

어딘가 낯선 일상 속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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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속 사물은 어딘가 낯설다. 노란색이어야 할 감자튀김은 분홍색이고, 빨간색 소화기는 연두색이며 칙칙한 가죽 워커는 바다보다 새파랗다. 심지어 새하얀 변기마저도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하나같이 꼬까옷을 입은 듯 알록달록한 색감에 커다란 모습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뚜렷한 테두리와 강렬한 원색 덕에 작품은 언뜻 보면 팝아트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사물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마틴은 작가주의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물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내기 위해 검은색 테이프로 테두리 처리를 했고, 기존의 사물과 다른 색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이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보도록 만들었다. 사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게끔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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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은 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색채의 마술사다. 그에게도 15년간 흰색과 검은색만 고집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제작했던 화려한 색감의 설치미술이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후로는 원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장에 온 모든 이가 행복하게 미소 짓는 모습에 비로소 컬러의 힘을 깨달았다고. 그 덕에 그림 속 사물들은 본래의 칙칙함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난 듯 당당한 풍채를 뽐낸다.

 

 

 

정통주의 미술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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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에게 세상 모든 존재는 오브제다. 그것이 본래 어떤 용도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작품의 훌륭한 재료가 될 뿐. 알파벳도 예외는 아니다. 마틴의 작품 속 알파벳은 기존의 형체를 띄고 있지만, 어지럽게 겹쳐 있거나 각각 떨어져 있다. 본래의 의미를 잃고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알파벳이 등장하는 작품 대다수의 제목은 '무제(Untitled)'였는데, 이는 관객이 제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감상하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누가 감상하느냐에 따라 작품은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입체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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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은 기존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길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시장의 어느 작품은 빨간색 배경에 청록색 카세트테이프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테이프의 각 모서리는 캔버스 가장자리 끝과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전통적인 미술 규칙에 따르면 한 작품에 많은 색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사물을 가장자리에 치우치게 그려서도 안 된다. 하지만 마틴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모든 규칙을 부수고 기존 정통주의 미술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걸었다.

 

마틴은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할 때에도 세상엔 정답이 없음을 늘 강조했다. Be Yourself, 즉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것을 누누이 이야기했고 개개인의 성향을 발굴하는 데 힘썼다. 다른 교수들이 과하다고 이야기할 때 마틴은 'WHY NOT?'이라 물으며 학생들이 거침없이 자신을 펼쳐내도록 북돋웠다.

 

왜 그가 진보적인 아티스트인지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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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삶에는 안정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을 맞닥뜨려야 한다면 우리는 계속 불안감을 느끼고 이내 지칠 것이다. 일탈의 행복도 그저 잠깐이고, 여행조차 길어지면 결국 일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을 지탱하는 건 결국 평범한 물건들이다. 비록 그것이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공산품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단단한 기반이 되어 하루가 순탄히 흘러가도록 돕는다. 일상을 일상답게 만든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올 때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물들 덕분일 테다. 마틴은 작품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넌지시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일상적인 사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현대 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그의 원화 15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4월 8일부터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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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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