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쾌락을 당당히 즐겨보자고 [문화 전반]

'쾌락의 원리' 이해하기
글 입력 2022.04.23 14: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무래도 OTT 플랫폼은 선택보다 아이쇼핑을 하게 된다. 이토록 압도적인 양의 선택지 앞에선 확신 없이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기 때문이다. 정작 시청하는 것은 한 달에 몇 번 되지 않는 터라 매 작품이 소중하게 다가오는데, 이번 달에 날 찾아와 준 작품은 <쾌락의 원리>다.

 

 

[크기변환]다운로드.jpg

 

 

난 성교육 강사를 꿈꾼 적도 있으며 성에 관심이 높다고 느낀다. 재미, 호기심, 두려움, 왠지 모를 죄책감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왕성하다. 이는 단순히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 그리고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근원적인 도구로서도 흥미가 높다. 성교육의 핵심은 '재미'와 '자신을 끝없이 탐구하며 적절한 존중을 하는 자기 결정권, 그렇기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상대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때 배웠던 성교육을 떠올리자면 내가 생각한 핵심과는 정반대다. 남녀 이분법적인 틀 안에서만 다뤄지는 개념, 생식 기능에만 집중된 몸의 구조 학습,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과 LGBTQ+와 관련해선 전무후무한 교육. 흥미와 다루는 폭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굉장히 제한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 결정권을 깊숙이 체화할 수 없어 다양성을 인식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된다.

 

사회가 허용하는 만큼만 나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우리의 몸이 사실은 굉장히 정치적임을 보여준다. 사회가 요구하는 범위는 지나치게 한정적이지만 당연하게도 개인의 몸은 각자 너무 다른 세계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안과 의심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와 사회가 불화한다는.


<쾌락의 원리>는 부조화의 폭풍 속에 갇혀 버린 우리에게 아주 유쾌하게 재미와 편안함을 선물한다. 특히 왜곡과 축소와 대상화로 가득한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말이다. 정치적인 몸에서 더 억압받는 건 항상 소수자였다. 그렇기에 여성 전문가와 여러 여성이 가감 없이 성, 쾌락, 자기 몸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풍부한 감정이 차오른다. 이는 내가 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해방의 카타르시스다.

 

한 시간씩 3부. 영상을 보는 단 세 시간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론 자칫 뻔해 보이는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뻔한 것에 대해선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이다. 진부한 결과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여정엔 어렴풋이 알지만 말로는 표현 못 한 애매한 것, 알면서도 포기했던 것,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즐비해있다. 이 과정은 낯섦과 호기심과 은은한 미소의 연속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성과 쾌락으로 자신을, 결국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력한 신념을 가진 이들을 마주하며 솔직한 본인을 바라보는 경험을 꼭 해보길 바란다. (그냥 영상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한다.)

 

 

 

우리의 몸


 

제목에서 당당히 표방하듯 영상은 잃어버린 쾌락을 찾아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절대 받지 못하는 교육 중 하나는 쾌락이다. 이런 현상은 몸이 생식을 위해 존재하고 쾌락은 그 과정에서 오는 부차적인 산물, 추구해서는 안 될 금기라는 암묵적인 전언을 내린다. 하지만 대부분은 쾌락을 분명 추구하기에 결국 그 호기심의 해소와 학습을 미디어를 통해 하게 된다.

 

영상은 미디어 속 고정된 이미지로 쾌락에 이르는 방법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섹스를 하는 과정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머리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 과정은 주로 이성애자 남성에게 맞춰져 있다. 일부가 이르는 쾌락의 과정이 '정답'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정답에 맞지 않는 나를 개선의 대상으로 의심하게 된다.

 

전문가는 단호히 말한다. 그런 허상을 좇기엔 우리는 다 다르다고.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방법이 단순히 자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아는 섹스의 틀은 '전형'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변형일 뿐이라고. 본인이 쾌락을 느끼면 어떤 형태든 그게 다 섹스라고. 결국 자기 몸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나만의 ‘정답’을 찾고 이를 긍정하는 것이 쾌락의 첫 단계라고.


이러한 과정은 비단 성과 쾌락뿐 아니라 전반적인 자기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그건 분명한 힘이 된다고 영상은 말한다. 특정한 입장에서 만들어 놓은 정교한 ‘정상성’을 부수고 수많은 자아가 표출되어 힘을 얻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성과 여성의 오르가슴 격차가 임금 격차보다 크다는 사실은 굉장히 전복적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근원이 ‘내’가 아니라 ‘오랜 관념’임을 인식하는 쾌락의 세계는 얼룩진 몸을 목욕재계하는 공간이다.

 

 

[크기변환]다운로드 (1).jpg

 

 

어느 사회에서든 쾌락은 감춰 마땅한 죄책감의 영역이고 특히 여성의 쾌락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남성 중심적 개념으로 인해 건강과 질병을 다루는 의학 지식마저도 남성 이성애자 중심으로 발달했다. 여성 건강을 알아야 할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니 실제 연구와 교육 과정에서도 가치 절하 되고, 부족한 연구는 부족한 인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전문가는 이토록 경시되는 쾌락이 우울과 무기력, 신체 능력 향상,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있어 중요한 해결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온전히 편안하게 즐기는 몸의 감각, 자신만의 쾌락을 긍정하고 수행하는 과정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한 불편함을 해소하는 체계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쾌락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중요성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관계


 

자기 쾌락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당연하게도 나의 쾌락이 가장 중요하니 이를 위해선 뭘 해도 괜찮다 따위의 말이 아님을 알 것이다. 내 몸에 부여된 이미지를 제거하여 쾌락을 발견하고 존중하기, 그런 나에 대한 존중을 타인에게까지 이어가는 것이 마침표다.


모든 전문가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마주하고 있는 대상과의 소통, 동의라고 말한다. 매력, 성적 취향, 쾌락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매 순간의 동의, 언제든 멈출 수 있는 합의가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위의 사실들은 그 대화로 향하기 위한 용기와 지식을 얻는 것과 같다. 물론 그들도 어렵다고 인정하지만 말이다.


아주 이상적이지만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다면 결국 타인의 자기 결정권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런 문화가 많은 사람에게 스며들어 있으면 대화의 길이 트일 수는 있을 것이다. 적절한 성교육이 필요한 지점이다. 성교육은 비단 성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적인 쾌락도 나를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다른 쾌락을 긍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와 타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성교육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쾌락을 즐길 수 있다. 뚱뚱해도,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 젠더 비순응자라도, 흑인, 원주민, 라틴계, 이사시아인, 85세 노인인라도.'


- 영상 속 성교육자 Dr. Emily Nagoski, PH.D.

 


적어도 타인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나의 욕망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과 절대적으로 불화하는 특성은 없고, 다만 그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이 부족할 뿐이라고 믿는다. 무조건으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누구고 어떤 몸을 가졌는지에 관계없이 말이다.

 

 

[정해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