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유롭게 상상하며 거닐고 싶은 날,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에 가다

글 입력 2022.04.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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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평온한 일요일, 모처럼 나선 외출 발걸음이 가볍다. 설렘과 호기심을 가득 안고 조용한 전시장으로 들어선 순간, 유리 선반 위 컵에 담긴 물 한 잔이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저 컵에, 컵과 선반의 관계에, 하필 높이 배치한 두 물체에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궁금해진다.


전시장에서 당신이 이 작품을 마주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과연 이게 작품의 전체인지, 어디 옆에 있는 벽과 바닥 사이에 작품이 이어지고 있진 않은지 샅샅이 훑어보게 될까? 눈은 자연스레 작품의 제목을 찾아 움직이고, ‘참나무 (An Oak Tree 1973)’ 란 캡션을 발견한다. 대체 무슨 뜻일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시는 이렇게 문을 연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의 ‘참나무’는 개념미술의 시작이 된 역사적인 작품으로도 일컬어진다. 하지만 개념미술이란 말부터가 알 듯 말 듯 낯설다.

 

검색창에서 정의를 찾아보면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적 제작 태도’, ‘완성된 작품보다는 미술가의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미술’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이 설명을 듣고 나니 한층 더 알쏭달쏭 해진 느낌이다.

 

 

‘개념 미술’이라는 게 아직 잘 와닿지 않으시죠?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한 구절을 기억해 볼까요? 내가 그를 ‘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듯,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흔하고 친숙한 오브제를 선(Line)과 색(Color)으로 변화시키고 이 과정을 통해 사물 본래의 의미는 지워버리고, 새로운 작가적 의도를 부여합니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물체의 이름은 그저 교육과 사회화에 의해 약속된 언어일 뿐 보는 이의 기억, 경험, 창의력을 통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식의 개념 미술입니다.

 

- 전시 소개 中



예술의전당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개념미술도, 낯선 작품도 한 걸음 성큼 다가갈 수 있도록 등을 시원하게 밀어준다. 어려운 단어가 가득가득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 전시 소개 글과는 달랐다.

 

쉽지만 가볍지 않게,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들어설 수 있게 안내한다.

 

 

 

알파벳에 담긴 의미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참나무’를 지나면 색색의 도형과 문자가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자세히 보아야 어떤 단어인지 보이는 작품, ‘Desire’다. 커다란 캔버스 속 여러 알파벳이 겹쳐있어 순서대로 읽어내기 쉽지 않고, 중간중간 컵과 캔, 신발과 같은 사물의 형태가 뒤섞여 있다.

 

이렇게 다양한 대상이 가득한 작품 앞에서, 우린 정답이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단어인지 읽고자 미간을 찌푸리고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잠시 몇 걸음 떨어져 보라고 말을 건넨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에게 알파벳은 ‘언어가 아닌 오브제’라는 전시장 벽의 문구가 눈에 띈다. 일부러 서로 연관성이 없는 문자와 물체들을 작품 속 여기저기 배치하고, 알파벳이 만드는 단어와도 전혀 관련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정해진 답은 없으니 힘들여 찾지 말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각자의 답을 찾아가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점에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을 완성하는 건 작가가 아닌 관객 우리 자신이 된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서 긴장을 풀고 마음껏 헤매는 시간. 다양한 설명과 여러 사람들의 해석은 한편에 내려놓고, 가만히 나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색이 들려주는 이야기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알파벳이 가득한 섹션을 넘어가면 주위에서 많이 본 사물들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컵, 게임기, 노트북, 헤드폰, 흔하디흔한, 매일 보던 물건들이다. 그것들은 작품의 중앙에 있기도 하고, 크게 클로즈업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을 반긴다.


이렇듯 매일 보던 물건들인데,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든다.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물건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 이유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선택한 색에 있다. 그는 물건을 떠올렸을 때, 직관적으로 연상되지 않는 채도 높은 색감을 택한다.

 

그리고 물건을 이루는 작은 부분 부분, 배경까지 다양한 색을 교차시키면서 밝고 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평소에 자주 쓰지 않는 색들이 여러 겹 가득한데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이들이 만드는 묘한 조화 때문이다.

 

 

ⓒCassette, 200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Cassette, 200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카세트테이프가 담긴 이 작품을 살펴보면, 구도 또한 익숙지 않은 모습이다.

 

화면의 정중앙에 균형 있게 배치하지 않고, 사선으로, 캔버스에 끝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테이프를 그려냈다. 새로운 각도로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관객들 또한 늘 그렇듯 적당한 거리에서 진지한 마음으로 보기보다 요리조리 새로운 눈으로 탐험해 보길 권하는 이야기 같았다.


틀에 갇힌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며 거닐고 싶을 때 꼭 맞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展 이었다. 항상 정답을 찾아서, 세상이 바라는 모습대로 사는 하루하루에 지쳤을 때 이 그림들이 떠오를 것 같다.

 

이번 봄에는 다채로운 색감으로 넘실거리는 전시장으로 들어서 보길 추천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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