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만난 파페포포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4.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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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좋아하는 책이나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 가져오기. 알림장에 꾹꾹 눌러 적으며 나는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책을 책가방에 고이 챙겨 등교하면서 왠지 모를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부터 나는 틈만 나면 교실 뒤편에 놓인 작은 책꽂이를 뒤돌아보고 기웃거렸다. 친구들이 어떤 책을 가져왔는지, 읽을 만한 책이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은 부수적이었고, 주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가져온 책을 누가 읽고는 있는지, 그렇다면 읽은 친구의 반응은 어떠한지와 같은.

 

그 깜찍한(?) 염탐은 나의 소확행이었다. 읽고나서 흡족해하거나 다시 읽는 친구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퍽 흐뭇해하곤 했다. 그냥 좋았다. 누군가가 그 책이 주는 따뜻함과 포근함과 다정함을 짧게라도 느꼈다는 것이. 그러니까, 여덟 살의 내가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은 책 자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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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파페포포에 취해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파페포포 메모리즈』와 『파페포포 투게더』를 학급 도서로 공유하면서 표지에는 이름 스티커를 두 개씩 붙여놓고 첫 장에는 나름의 경고문도 적어 놓았다. 찢지 않기, 구기지 않기, 집에 가져가지 않기, 더럽히지 않기 등등. 그래서인지 책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모서리가 접혀있는 부분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이 있으면 모서리를 살짝 접어놓던 독서 습관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유년 시절 나의 감수성을 상당 부분 책임졌던 책답게, 모서리가 접힌 부분이 꽤 많았다. 파페포포 시리즈는 사랑, 사람, 관계, 배려를 알려주기도 하고 행복함, 그리움,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어린 날의 친구였다.

 

파페포포만의 고유한 감성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바래지 않았다. 아마도 그 감성에 내 어린 시절 추억까지 더해져서일 것이다. 오랜만에 그 친구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여덟 살의 나는 책 자체가 아닌 책이 가진 온도를, 감정을, 분위기를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음을.

 

그중에서도 유독 함께 나누고 싶었던, 그래서 읽고 또 읽으려고 모서리를 접어놓은, 그 일부분을 공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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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현, 『파페포포 메모리즈』 (홍익출판사, 2002) - 비가 내리면

 

 

아주 어렸을 때는 기다림이 싫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엄마나 아빠를 따라 한 명씩, 한 명씩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아이는 선생님과 놀게 된다. 나는 선생님과 자주 놀던 아이였다. 해가 저문 어린이집 마당에서 대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흘렀고, 어린아이가 느끼기에는 벅찰 만큼 고요했다. 그래서 어릴 적 나에게 기다림이란 보통 부모님으로 치환되곤 했다.

 

나름대로 꽤 자랐다고 생각했던 초등학생 때도 비슷한 감정이 이어졌다. 하교 시간까지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던 날, 친구들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함께 사라져갔다. 내 손에도 우산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 손을 잡고 웃으며 집에 가는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그랬는지, 하늘이 더 어두워 보였다. 벌써 캄캄한 밤이 된 것만 같았다.

 

엄마와 아빠가 일 때문에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분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문제는,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존재하는 간격에서 나온다. 그 간격의 넓이를 이 책에 실린 짧은 에피소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조금은 좁혔던 것도 같다.

 

'뛰어 보아도, 이리저리 숨어 보아도 집에 도착했을 때 비 맞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건 엄마가 나를 안아 줄 수 없기에 내리는 눈물이라고'  정말 그랬을까. 엄마도, 아빠도 와서 안아주고 싶었을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원망하기도 하셨을까. 아마 그랬을 거라고 짐작하던 어린 나를 떠올리며, 이제와 새삼스레 엄마에게 물었다. 언제나, 항상, 달려가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림 속 배경은 작가가 실제로 어렸을 때 살던 동네인데, 오랜만에 찾았을 때 우연히 본 꼬마의 뒷모습에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그 이름 모를 꼬마에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건넨 위로에, 되레 위로받은 어린 날의 내가 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 비가 단지 빗물인 것처럼 이 계단도 끝이 있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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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현, 『파페포포 투게더』 (홍익출판사, 2003) - 포포의 단점

 

 

더운 여름날 축구를 하고 있는 파페를 위해 미지근해진 음료수를 몇 번씩이나 시원한 음료수로 바꿔온 포포. 언제부터인가 포포가 기뻐하면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파페.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귀찮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그 사람이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게 되는 것, 그런 걸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게 사랑인 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여덟 살 먹은 어린애가 무얼 안다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지만, 그때도 자연스럽게 체득되던 것들이 있었다. 내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하던 가족들, 추운 겨울날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다 주기 위해 빙 돌아서 집에 오시던 부모님,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매일 내 알림장을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겨주던 오빠, 한 명이 웃으면 결국은 다 같이 웃게 되던 순간들이 그러했다.


급한 성격 때문에 잘 부딪히고 잘 넘어지는 포포, 그리고 그런 포포의 모습까지도 좋아하는 파페.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놀림거리가 된 자신의 모습을 미워하는 파페, 그리고 그런 파페의 모습까지 어루만져 주고 아껴주는 포포.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일지도 모르겠다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인 것 같다고.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문장도 보였다.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려면,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주어서 기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받는 게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랑이든, 마음이든, 선물이든, 뭐든. 아이가 아닌 어른이란 딱지가 붙은 지금은 주는 것의 기쁨을 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만큼 충분히 설레고 가슴 뛰는 일임을,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

 

*

 

다시 만난 파페포포는 여전히 다정했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받은 사람은 여덟 살의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어느새 위로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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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현, 『파페포포 메모리즈』 (홍익출판사, 2002) - 가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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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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