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며 풍부해지는 단어들 -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글 입력 2022.04.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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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상실을 겪는다. 누군가와 멀어진 경험이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등의 물질적인 상실을 포함해, 이전과는 다른 내 모습을 마주하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자각에서 오는 심리적인 상실 등을 말이다. 한 번 이러한 경험에 경도되면 안개에 갇힌 것처럼 까마득하고 막막하다. 돌연 휘청거리며 방향성을 잃기도 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믿음으로 굳건히 나아가는 일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어떤 변곡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로리 역시 마찬가지다. 로리는 지리학 교사였지만 탐험가를 꿈꾸었던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막막한 심정으로 방향성을 잃으며 잠시 주춤한다. 그러나 이내 아빠가 생전에 못 이뤘던 북극 여행이라는 꿈을 대신 이행해나가는 것으로 삶을 지속해간다. 연극은 이렇듯 낯설고 공허한 상황에 빠진 로리가 맞이하게 되는 역경과 연대의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삶의 궤도를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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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로리는 스발바르에 당도했을 때 빙하를 보며 ‘인간이 손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들로 가득한 것 같다’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자연의 불가항력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탐험가들은 북극으로 가고자 했으나 다양한 사고사와 질병으로 인해 돌연 사망했고, 아빠는 예고 없이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듯 말이다.

 

그러나 불가역적인 지점들을 좌우하진 못 하더라도, 그 점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갈 수는 있다. 북극 여행을 목표로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움직임을 이어나간 로리의 탐험이 그와 궤를 같이한다. 그 출발점에는 아빠의 죽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탐험은 표층적으로는 아빠의 죽음과 부재에 대한 애도의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심층적으로는 아빠의 죽음을 매개로 한 로리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서 로리가 이름은 본래 오로라지만, 스스로 로리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직접 택함으로써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때 로리는 대개 남자들이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스발바르에 가기 전 로리는 어떤 박물관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탐험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최초로 무언가를 개척하거나 발견한 이들 중에는 여자도 있었다. 로리는 그 사실을 마주하며 슬프다고 느낀다. 대개 위대한 업적을 쌓더라도 그 대상이 여자일 경우 영향력이 다소 낮게 평가되는 것은 물론, 남자애들의 성적인 발언으로 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로리는 지금껏 가부장제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사회에서는 남성이 기득권으로 존재하기에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동등하지 않을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여성의 업적이 최소화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해온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남성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택했다는 것은 사회의 불공평한 규격이 만들어낸 억압이나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반발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동시에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로도 읽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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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경유한 뒤에야 풍부해지는 단어들


 

권여선의 단편 소설 「전갱이의 맛」에서 ‘그’는 성대 낭종 수술을 한 이후 최대한 말을 아껴야만 하는 ‘상실의 상황’에 처했다. 그 이후 본래 독선적이었던 태도에서 벗어나게 됐고, 비로소 '나'의 말에 귀 기울이거나 부드러운 자세로 대하는 식으로 변화했다. ‘상실’을 통해서 비로소 세상을 섬세하게 감각하게 된 셈이다. 사람은 이렇게 어떤 변곡점이 되는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세상을 다르게 지각하게 된다. 이는 내면에 있는 단어들이 풍부하고 다채로워지는 경험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로리가 그러했다. 스발바르에 당도했을 때, 로리는 광활한 눈을 마주했다. 뒤이어 흰색의 광경을 보고 난 뒤 무한한 황홀감을 느끼며 ‘흰색’의 정의를 다시금 내린다. 이전에는 흰색을 빈 종이와 같은 무색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가득 차 있다고 말이다.

 

한편 로리는 어떤 누군가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읽어낸 바 있다. 엄마에게서는 '상실감'을, 남자에게선 '사랑'과 '유혹'을, 박사에게선 어떤 '용맹함'과 '미안함'을, 또 북극곰한테는 '위협'을 말이다. 이쯤에서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이라는 제목을 떠올려본다. 여기서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사람의 ‘눈’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하여 제목은 '삶은 어느 한 가지 축으로만 기울지 않고 다양하게 펼쳐진다'는 점을 시사함과 동시에, 어떤 것을 경유한 뒤에야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함의한다고 추측한다.

 

이렇게 로리는 언어가 다채로워졌으나 엄마는 언어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른 뒤, 로리를 쳐다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했으나 이내 관둔 데서 그랬다. 이는 상실의 경험 즉, ‘실연’이 곧 단어를 잃어버리는 ‘실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람은 수많은 이들에 대한 기억과 경험과 감정의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개인은 단어가 텅 비어 있는 상태일지 모른다. 연극에서는 이렇듯 어떤 경험과 기억들은 단어를 풍부하게 하지만, 상실은 단어를 앗아가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사실 역시 시사한다.

 

 


우리는 모두 둥근 별에 산다.


 

로리는 아빠의 모험가다운 면모와 도전 의식을 닮았다. 동시에 여성으로서 엄마와 비슷한 궤적을 밟아 왔다는 점에서 엄마와도 닮았다. 우리는 이렇듯 각기 개별성을 띠지만 이전의 계보를 잇는 식으로 연결되어 왔다. 로리가 안드레아스와 첫 경험을 한 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여성이 본인과 같은 경험을 하고, 얼마나 많은 여성이 본인처럼 침대에 작은 핏자국을 남겼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는 대목에서도 드러나듯 말이다.

 

이는 로리가 헬리콥터에서 아빠의 뼛가루를 뿌렸을 때 깨달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다. 로리는 아빠의 뼛가루가 북극에 안전하게 도착하지 못하고 자꾸만 하늘로 솟아올랐다는 점에 실망했으나, 곧 ‘하늘로 솟아오를 때 맞닿는 곳에도 북극이 있다’라고 한 것을 떠올리며 안도했다. 요컨대 어디로 가든 우리는 모두 순환적 흐름 속에 놓여 있기에 한 가지 지점에 당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연결돼 있다는 의식은 사람 간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로리는 처음 혼자 모험을 결심하고 타지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끝까지 혼자는 아니었다. 프리다와 헬리콥터를 조종한 여성과 엄마가 있었기에 집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연결돼 있기에 서로를 보듬을 수 있고, 함께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기서 허수경 시인이 쓴 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뒤로 가는 실험을 하는 것이 앞으로 가는 실험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을 수도 있다.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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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And


 

로리는 내내 여행이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죽은 아빠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엄마에게 ‘아빠가 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엄마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을 공유하기에 용기를 내어 죽음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북극으로 갈 힘을 얻은 것 역시, 두 인물 다 죽은 아빠를 애도하며 마지막을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다. 요컨대 둘은 아빠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마음으로 하나 됐다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연극의 끝 지점 로리가 아빠의 사진에서 발견한 문구를 떠올려본다. "사랑이란 삶의 눈과도 같다. 아픈 상처 위로 내려오는 사랑은 눈보다도 깊고 순수하다."

 

로리는 가장 소중한 아빠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것이 유일한 이별은 아닐지 모른다. 이별과 상실의 경험은 삶을 지속하는 동안 또다시 대상을 달리하며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점은, 인생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경험 역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아빠가 쓴 문구에 삶은 사랑의 기억들과 추억이 쌓이면서 치유되는 과정이라는 주장이 담겼듯 말이다. 더불어 로리가 '이번엔 따뜻한 곳으로 여행 가고 싶다'고 밝힌 데서, 추운 경험이 있으면 그 반대급부에 있는 따뜻한 경험도 존재하리란 사실을 보여주었듯 말이다.

 

그렇게 로리는 또다시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 아빠의 방도 정리해야 하리라 예상한 것처럼, 슬픔에서는 벗어나지 못 할지라도 마음 한쪽에 아빠에 대한 기억을 품고 추억하면서. 상실로 주춤했으나 엄마와 사랑으로 하나 되어 다시금 용기를 냈던 것처럼, 계속해서 단어의 의미를 확장해가면서. 로리는 그렇게 삶을 이행해나갈 것이다.

 

 

참고문헌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문학동네, 2020.02.14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허수경, 문학과지성사, 20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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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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