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흩어진 정체성을 마주하기 -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배제'를 배제할 수 있다면
글 입력 2022.03.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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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언제나 이방인이며 소수자로 살아가는 망명자들의 자화상을 마주하며, 어제의 폭력을 되새기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되묻는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은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의 정체성 혼란을 ‘기행’으로 풀어낸다. 연극의 출발점이 된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고 1980년대부터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다. <디아스포라 기행>도 동일하게 재일조선인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연극은 ‘디아스포라가 어떻게 흩어지게 되었는지’에서 출발해 ‘왜 그들 정체성은 뚜렷이 모이지 않고 흩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는 국가의 통제, 개인의 혼란이 뒤섞여 있다. 먼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획득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일제의 지배가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다. 한국 땅에 울릴 뻔한 우렁찬 아이 울음들은 일본 땅에 퍼졌고, 울음을 멈추고 일본어를 배웠다.

 

그들은 모어(母語)와 모국어(母國語)가 다르다. 자라면서 배운 말을 뜻하는 모어는 일본어이지만, 고국의 말인 모국어는 조선어다. 다시 말하면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는 조선이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는 일본인 것이다. 족보가 한 나라에서만 전개된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불일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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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조선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이다.

 

조선에서는 어눌한 조선어를 쓰고, 일본에서 태어났으므로 ‘일본인’에 가까웠고, 일본에서는 통행증 없이는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조선인(완전한 일본인은 아님)’이었다. 말 그대로 어느 한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재일조선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를 모어와 모국어가 다른 경우로 쉽게 정의할 수 있을까. 모어와 모국어가 동일한 경우, 혹은 그 외 문제를 다루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연극을 보는데 몇몇 영화가 떠올랐다. 먼저 <나이트 레이더스>. SF 영화 문법을 기대하고 본 사람들이 역작이라 분노했지만, 정성일 평론가는 <나이트 레이더스>를 ‘SF 영화의 탈을 쓴 정치적인 영화’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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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든 감독 다니스 고렛의 국적은 캐나다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캐나다인’이 아닌 ‘크리족’이라 밝힌 바 있는데, 이 부분이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라고도 했다.

 

크리족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캐나다가 차별 정책을 펼치는 대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독재 국가 에머슨이 미성년 아이들을 드론으로 적발해 데려가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다. 가족에게서 떨어진 아이들은 이름이 새롭게 바뀌고, 가족에게 총을 겨눌 만큼 강도 높은 사상 교육을 받는다.

 

현실에서 크리족도 인종 정책으로 차별받는다. 강력한 문화적 말살 정책을 사용한 캐나다에서는 선주민들을 대상으로 ‘통과 패스’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는 선주민이 사는 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선주민이 자유롭게 외부 지역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시스템이다. 재일조선인이 받은 차별과 유사하지 않는가. 20세기의 재일조선인이 발을 묶은 정책은 21세기 캐나다에서 반복되고 있다.

 

또 다른 영화는 제94회 아카데미상 국제 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이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난 ‘아민’이 홀로 덴마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담는다. 10대 소년 아민에게 전쟁은 느닷없었고, 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랬다. 징집되어 간 아버지는 소식을 알 수 없고, 어머니는 차츰 건강이 나빠지고, 가족과 함께 시도한 망명은 발각당해 좌절됐다. ‘모두 함께’는 가망이 없자 형은 더 비싼 브로커를 이용해 아민만 겨우 덴마크 땅을 밟게 한다.

 

덴마크 공항 난민 심사대에서 아민은 “자신은 가족이 없다”고 말한다. 브로커는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혼자 겨우 살아남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아민은 그가 꾸며준 이야기를 자신이 겪은 일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는 포탄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 가족의 존재를 부인해야 했다.

 

‘가족 없는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그동안의 세월은 어떤 마음으로 견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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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디아스포라 기행>은 다양한 방식으로 배제에 맞선다. 무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찍은 영상을 즉시 스크린으로 옮기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하며 시야에서 배제된 것들이 배제되지 않게 옮긴다.

 

수어 통역사를 스크린의 조그마한 부분에 담는 대신 발화자 옆에 세우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공연 팸플릿의 스태프 소개 글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각자의 개성대로 답이 적혀 있다.

 

공연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재일조선인 역할의 배우가 분노를 담아 내지르는 조금 어눌한 한국어가 무겁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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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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